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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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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무진장 짜증났다. 이 책의 저자는 교수기도 하고 오랜시간 공부를 한만큼 학문에 대해서 나보다 쌓은 것은 많은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너무나도 '권위적'이라 읽는 내내 그 불쾌한 소절에 내내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신봉자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역사를 조망하는 것만이 가장 합리적이고 옳아 보인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역사학자들을 서슴없이 (거의 인격적으로) 깎아내려간다. 저자는 이렇게 언급한다. "역사학자들이 소재주의에 포획되어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고 있다. 그들은 다른 영역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다른 질문을 던질 의욕도 없다.(p.117-118)" 이 글만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매우 침체되어있고 소극적이며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만이 제대로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유명 대학에서 연구하는 교수라고 해서 역사학자들이 그르다 어리석다 이런얘기를 할 수 있는건가?" 만약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런 것은 겉멋든 권위에서 연유한 '다른 학문 까기' 정도밖에 안된다. 저자는 한편 서양사적 흐름에 한국사를 맞추려는 역사가들의 행위를 어리석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는 있어도, 저자 그 자신도 서양산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숭배하고 거기다가 조선사를 끼워맞추려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아이러니다. 저자 자신은 '역사학자들의 방법론에 따른 성과도 인정한다'라고 체면을 차리지만 바로 이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라고 말함으로서 결국 자신의 오만함을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 자신의 소양 부족일지는 몰라도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이었다. 주석도 뒤로가서 뒤적거려야 했고, 저자의 문체 자체도 지나치게 현학적이라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 자주 나와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실어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쓰지도 않는 한자가 남발되어있는 왕의 말을 해석없이 그대로 보여주어 이것이 근거라고 하는데 왜 근거인지 알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다수 대중을 위한 책은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역사학자도 막 까고 그럴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간학문(間學文)'의 시대라고는 해도 절대적으로 가장 올바른 학문적 방법론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역사학자들의 방법론도, 사회과학자들의 방법론도,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어느것이 특히 더 옳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근대성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근대 만들기'라는 식으로 비판하는데, 나는 저자의 연구도 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가 이 책에서 해내려고 한 것은 조선시대의 여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모습으로부터 서양의 사회과학이 만들어낸 여러 용어들을 붙이고 체계화하려고 한 것인데, 이것도 일종의 '사회과학적 근대 만들기' 아닐까. 물론 그런 용어 붙이기도 충분히 학계에 지대한 도움이 되는 의의있는 새로운 시도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보다 자신의 연구가 가장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 만들기' 즉,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민족이 '제조'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당시 상황에 대한 고려가 들어갔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탈민족이 더 합리적이다' 비스끄무리한 주장에서 특정 역사학파의 주장을 떠올렸다면, 그건 내가 너무 민감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역사학도라서 그런지 역사학자들을 깎아내리는 말에 지나치게 방어적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의견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만큼 저자의 의견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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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점점 어려워져서인지, 리뷰를 제시간에 내는 일이 거의 없네요. 저번 책 2권도 지금 손에 들고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 리뷰를 제대로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책이 와버렸어요. 이번 주말에 어떻게든 읽어서 리뷰를 써야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또 자기성찰적인 글로 추천을 시작합니다. 제 이번 목표는 늦게라도 받는 책에 대한 리뷰를 다 쓰는 것이랍니다. 흑흑.

 

 

 

<아메리카노>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대해 알고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본 책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눈에 띈게 라틴아메리카사를 다뤘다는 이 책. 특히 근대사 쪽의 라틴아메리카 독립혁명 등 혁명사를 활발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이 가는 책이다.

 

 

 

 

 

 

 

 

<기억하라>

 

이번 이명박 '씨'의 정권은 유난히도 기억할 거리가 많은 정권이었다. 4대강 사업, 용산 참사, FTA 날치기 체결, 디도스 사건, BBK 등등. 이런 수많은 사건들을 친절하게 정리해준 책을 원하고 있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참 눈에 띈다. 게다가 시사만화로 엮었다니 보기에도 엄청 편해 가독성이 좋아보인다는 점에서 더 끌린다. 이 시사만화가들의 말대로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의혹을 팝니다>

 

과학을 흔히 '그들만의 영역', '우리는 건드리지 않아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고전 시대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과학 또한 자본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런 생각은 케케묵은 생각이다. 이 책은 자본의 힘으로 인해 과학적 사실마저 부정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과학이 제대로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회는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올 수 있을까?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충격적인 감동을 먹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본 웹툰 <신과 함께>의 이승편을 보고 용산 참사가 생각났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불법이다. 왜 배려해야 하느냐'고 말하지만 실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법이 그렇게 원망스러워질 수가 없다. 이러한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묶었다. 전에 읽었던 십시일反이 생각난다.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FTA 날치기 체결 사건 이후로 한동안 멍했었다. 이놈의 정치인들은 도대체 언제 그렇게 쑥덕쑥덕 모의해서 순식간에 자기 이익에 맞추어 일들을 이뤄내버리는건지. 그들은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있는 건지. DDos사건에 대해서도 그들은 할 말이 없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은 알고, 우리만 모르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는 음모론을 싫어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음모론조차도 현실이 된다는 것이 정말로 아이러니하다. 이 책도 그러한 아이러니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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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경제적 성장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박정희라는 독재자를 전부 나쁘게만 보기엔 불공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세대의 일부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채, '경제 성장'을 그를 위한 면죄부로 삼는다. 그를 '인간'이라며 무작정 미화한다. 누가 벌써부터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백번 양보하여 용서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그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면모 또한 알게 된 후일 것이다.

 

 

 

 

 

 

<장미와 에델바이스>

 

 심지어 한창 어린 10대라는 나이에도 나치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반대하여 거리로 나선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결코 전쟁의 시대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도 사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역사가 아닐까 한다.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침묵의 봄>

 

세계 환경운동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꾼 책.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책에서 일부 발췌된 내용만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기회에 개정판을 꼭 읽을 수 있으면.

 

 

 

 

 

 

 

<나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10월 26일에 시장 보궐선거에서 발생한 Ddos공격이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시민들은 국가에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김정일 사망으로 이 중요한 사안은 심지어 묻혀버리고 말았다. 알 권리, 특히 국가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권리'는 부정한 권력의 유지에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그렇기에 시민들은 '알아야 한다'. 이런 저런 핑계로 알아야만 하는 것도 보여주려 하지 않는 국가에, 일침이 될 만한 책으로 기대한다. 저자가 국가 행정이 가장 투명한 나라 중 하나라는 싱가폴에서 공부했다는 것도 참고할 만한 사항일 것 같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

 

  이 책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세계인권선언이 1948년에 합의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 후 6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왜 세계 곳곳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들이 일어나는가. 이 책은 인권이 형편이 되면 지키는 <옵션>같은 게 아니라 응당 지켜져야만 할 <의무>임을 이야기한다. 인권운동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계가 큰 것이 사실이다. 그 돌파구를 이 책이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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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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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의 개>를 그렇게나 혹평했지만, <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라는 이 책은 참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내가 발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아주 밀접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때 인권 변호사를 꿈꾼 적이 있어서 그런지(완전히 그 꿈을 접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이력에도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는 점도 크다.

 

  해외에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 말로 미국 사회와 유럽 사회의 모습을 어렴풋이 전해듣거나 저자가 매번 비꼬는 <이코노미스트>나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식(우리나라의 조X일보나 중X일보라거나)으로 해외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있었다. '유럽이 정말로 살기 좋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환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우러러보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는 식으로 나름 '중립적'으로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 편견을 깨버렸다. 저자는 실제 현실은 어떤지에 대해 두리뭉실하지 않고 수치와 통계를 들이밀며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를 통해서 유럽과 미국의 진짜 현실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요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유럽은 사회민주주의국가고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이다. 아무리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이라 하더라도, 유럽이 훨씬 더 살기 좋은 것이다. 그것만은 인정해야한다. 그러한 이유는 이러이러하다... 라는 것이 저자의 주요 관점이며, 나는 대체적으로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혹자는 '이 사람은 노동변호사잖아. 약간 편향된 관점에서 미국을 더 안좋게 묘사했을지도 몰라'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묘사한 미국 사회의 모습과 한국 사회의 모습이 굉장히 유사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단순한 편견이라 치부할 수도 없다.


  민영화 문제나, 터무니없이 비싼 교육비와 대학 등록금 문제, 규모를 무작정 넓히고 값을 높이기에만 급급하는 도시 계획, 평균 소득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내집 마련,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복지와 무한 경쟁을 숭배하는 분위기. 이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그렇게 훌륭한 '롤 모델(role model)'로서 숭배하는 초강대국 미국에서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국 사회는 일명 '리틀 아메리카'일지도 모르겠다. 더 씁쓸한 사실은 우리나라는 이 골치아픈 아메리카보다 심지어 더 못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덜 못나지겠다고' 미국을 따라 신자유주의를 무작정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무조건 미국을 나쁘게 말하는 거 아니냐고 혹자는 질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도 비슷한 말을 했듯이 이것은 사회민주주의라는 한 사상을 숭배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과 통계의 비교를 통한 일종의 '상식'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롤스도 <정의론>에서 말했듯이 자신이 사회적으로 어떤 계층에 놓여있는가도 알 수 없는 '무지의 베일'을 쓰고서 미국과 유럽 둘 중에서 택하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둘 중 어디가 좀 더 '정의롭다'라고 판단할까?

 

  이 책이 약간 거슬렸다면, 저자가 종종 미국에 대한 강력한 애국심을 표현한 부분이라거나 자신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변명하는 부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원래 미국 독자들을 위해 쓰여졌을 것이라고 예측해본다면, 그의 이런 태도도 이해는 간다. 일종의 '자기 검열'일지도 모르고, 매커시즘에 의해 '낙인'찍혀 자신의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상황에 대해 우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모 판사가 한미 FTA의 급격한 체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때 첫 문장이 '나는 진보 성향이 아니다'였던 것을 떠올리면 이런 점까지 한국과 미국은 닮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의 사회와 너무 비슷한 나머지 감정이입까지 되는 미국 사회와 이와는 대조되게 편안한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있는 유럽 사회. 한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되돌릴 수 없는 거센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타버렸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안타까움과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 계속 수렁으로만 빠지지 않을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은 점점 대기업의 위력이 민중에게까지 침투하고, 미국처럼 제조업을 소홀히 하면서도 돈놀이(부동산 투기나 한방을 바라는 주식 투자)에 집중하는 모습이 점점 강해지고만 있다.

 

  이런 한국이 짊어나갈 앞으로의 운명이 얼마나 밝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전히 한국의 많은 정치가들이 이미 증명된 미국의 실패를 '성공'이라고 떠들어대며 무작정 미국을 따라하려고만 한다. 마치 어리석은 광대같은 모습이다. 미국이 정말로 성공한 케이스이고, 그래서 따라하는 것이면 몰라도 말이다... 그에 비해서 물론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유럽인들은 기회 비용과 편익을 생각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효율성을 사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도 결코 바보는 아니기에.

 

  저자는 이 많은 이야기들을 상당히 문학적 표현들과 실제 경험의 묘사를 이용하여 훌륭하게 글로 구현해내고 있다. <루소의 개>보다 읽기가 상당히 용이했다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일명 '유럽식 자본주의'가 탄생한 장소라 일컬어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느낀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사회과학서를 뛰어넘은 감성적 아우라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표현적, 내용적 측면 등 다양한 관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면서 또다시 생각해본다. 오늘 드디어 2012년을 맞이했다. 2012년은 총선도, 대선도 걸려 있는 중요한 해다. 그 두번의 기회로 한국 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는 빅뱅은 없겠지만, 이 '리틀 아메리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 책이 약간 답을 준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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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루소의 개 - 18세기 계몽주의 살롱의 은밀한 스캔들
데이비드 에드먼즈 & 존 에이디노 지음, 임현경 옮김 / 난장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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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다 읽지는 않았다. 친한 친구가 '역사책은 사실만을 줄줄 늘어놓은 걸 읽어야 하는 거라서 지루한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 책이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역사책에 지다니 이건 내 능력부족을 탓해야할지 아니면 책과 스타일이 안 맞았던 것이라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결국 300페이지 가량만 읽고서 책을 덮어버렸는데, 그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먼저 이 책의 좋았던 점에 대해서 조금 이야깃거리를 풀어놓고 싶다.

 

  루소나 흄은 고등학교 윤리 정도를 배웠다면 누구나 익히 보고 들었을 거장 철학자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윤리 시간에는 철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이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루소의 개>와 같은 책은 그 철학자들이 왜 그런 이론을 내세우게 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저술한 것이 그 사람이 악인이라서가 아니라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정세와 큰 연관이 있었던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상당히 신선했다. 철학도 아닌 것이, 역사도 아닌 것이. 루소와 흄 각자의 일상 에피소드나 저 두 철학자가 연관되면서 발생한 각종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의 이론적 토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확장해나가는 저자의 필력은 상당히 괜찮았다고 본다. 실제로 100페이지 정도는 정말 재미있었다. 무려 <에밀>을 쓴 루소가 자기 자식들을 갖다 버렸다는 경악스러운 행동을 이 책을 읽기 이전에도 들은 적은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이유(루소가 상상 이상의 편집광적 괴짜라는 사실)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 기분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루소와 흄 두 인물뿐만이 아니라 18세기 계몽주의 살롱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주목했다기보다는 그 흐름을 구성하던 작은 요소에 주목하여 자세히 보여주는 미시적 접근에 근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역사 수업에서 귀로만 들었던 살롱을 뚜렷한 이미지로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이 책의 강점은 '철학자' 인간이 아니라 '인간' 철학자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책이 끝까지 읽히기 어려운 치명적인 이유는 그 '보여줌'이 너무 과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적당히 그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읽다가 보면 상당히 비슷한 패턴의 에피소드들(루소가 망언을 함->루소가 망명함->누가 루소를 거둬들여줌->루소는 그 누군가에게 또 망언을 해서 결별함... 무한반복...!)에 질리게 된다. 너무 많은 인물들이 책 속에서 난무하고 이름도 다 외우기 전에 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하다고 삼국지처럼 독자들을 확 사로잡는 스토리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살롱의 은밀한 스캔들'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비슷한 내용을 계속 읽다 보면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고는 하나 이런 '촌극'도 한 두번으로 족하지 계속 반복되는 것은 별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들을 서술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약간 요약과 생략의 미(美)를 살림이 어떠하였을까. 예를 들어, <뺨 세 대>만 확 살린다던가...!

 

  이 정도의 글을 써낼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책을 마구 비판하고 있으니 내 모습이 상당히 우습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 자체는 철학자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철학을 결부시켜 보여주려는 시도와 18세기 살롱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도를 살려냈다고 본다. 그렇지만 너무 자세히 보여주려는 나머지 '질리게' 만든다는 게 단점이다. 내가 300페이지에서 책을 덮었던 이유도 '나머지 100페이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구나'라며 질려버렸던 점이 컸다. 그래서 연대기적으로 한 인물의 일거수 일투족을 소개하는 것보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인물에 대한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 몇 가지를 중점으로 보여주었다면 이 책을 읽기가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책을 다 안 읽게 된 것은 '꼰대' 루소가 비슷한 '찌질한' 짓을 계속해서 저지르는 것에 대한 짜증도 상당히 큰 이유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꼰대'의 이론이 흄의 말보다 나에게 훨씬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는 점일 것이다. 학문과 인간은 함께 이해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점에서 가끔 학문과 인간 사이의 단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쉽게쉽게 '인간 철학자'가 아니라 '인간' 철학자인 이유이다. 어쨌거나 내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루소(저번 학기 레포트의 주제가 루소였던 적도 있다)의 됨됨이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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