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탄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무진장 짜증났다. 이 책의 저자는 교수기도 하고 오랜시간 공부를 한만큼 학문에 대해서 나보다 쌓은 것은 많은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너무나도 '권위적'이라 읽는 내내 그 불쾌한 소절에 내내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신봉자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역사를 조망하는 것만이 가장 합리적이고 옳아 보인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역사학자들을 서슴없이 (거의 인격적으로) 깎아내려간다. 저자는 이렇게 언급한다. "역사학자들이 소재주의에 포획되어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고 있다. 그들은 다른 영역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다른 질문을 던질 의욕도 없다.(p.117-118)" 이 글만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매우 침체되어있고 소극적이며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만이 제대로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유명 대학에서 연구하는 교수라고 해서 역사학자들이 그르다 어리석다 이런얘기를 할 수 있는건가?" 만약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런 것은 겉멋든 권위에서 연유한 '다른 학문 까기' 정도밖에 안된다. 저자는 한편 서양사적 흐름에 한국사를 맞추려는 역사가들의 행위를 어리석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는 있어도, 저자 그 자신도 서양산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숭배하고 거기다가 조선사를 끼워맞추려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아이러니다. 저자 자신은 '역사학자들의 방법론에 따른 성과도 인정한다'라고 체면을 차리지만 바로 이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라고 말함으로서 결국 자신의 오만함을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 자신의 소양 부족일지는 몰라도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이었다. 주석도 뒤로가서 뒤적거려야 했고, 저자의 문체 자체도 지나치게 현학적이라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 자주 나와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실어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쓰지도 않는 한자가 남발되어있는 왕의 말을 해석없이 그대로 보여주어 이것이 근거라고 하는데 왜 근거인지 알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다수 대중을 위한 책은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역사학자도 막 까고 그럴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간학문(間學文)'의 시대라고는 해도 절대적으로 가장 올바른 학문적 방법론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역사학자들의 방법론도, 사회과학자들의 방법론도,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어느것이 특히 더 옳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근대성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근대 만들기'라는 식으로 비판하는데, 나는 저자의 연구도 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가 이 책에서 해내려고 한 것은 조선시대의 여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모습으로부터 서양의 사회과학이 만들어낸 여러 용어들을 붙이고 체계화하려고 한 것인데, 이것도 일종의 '사회과학적 근대 만들기' 아닐까. 물론 그런 용어 붙이기도 충분히 학계에 지대한 도움이 되는 의의있는 새로운 시도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보다 자신의 연구가 가장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 만들기' 즉,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민족이 '제조'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당시 상황에 대한 고려가 들어갔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탈민족이 더 합리적이다' 비스끄무리한 주장에서 특정 역사학파의 주장을 떠올렸다면, 그건 내가 너무 민감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역사학도라서 그런지 역사학자들을 깎아내리는 말에 지나치게 방어적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의견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만큼 저자의 의견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