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eBook] [BL] 여름 정원의 기사
꿀패치 / 체셔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밌어요! 이거시 후회공의 맛이로군요 ㅎㅎ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 덕에 짧고 간결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수국이 핀 여름 정원에 대한 묘사가 에드먼드 캐릭터와 어우러져서 넘 좋았구요, 작품 초반의 살짝 우울하고 피폐하고도 서정적인 분위기가 제 취향이었습니다. 그래도 해피엔딩이라 굳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BL] 봄날의 고양이 [BL] 봄날의 고양이 1
꿀패치 / 브랜디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작품입니다 ㅈㅇㄹ에서도 재밌게 보았어요~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의 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달에는 좋은 책이 많이 온 것 같다.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그렇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곤 했었던 <침묵의 봄>을 이번 기회에 읽게 된 것이다.

 

침묵의 봄이 뜻하는 바는 이 책의 맨 처음에 있는 '내일은 위한 우화'와 가장 큰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저자가 우화에서 실감나게 묘사한 것처럼, 지금처럼 경각심 없이 환경을 파괴한다면 생명이 피어나지 않는 황량한 봄, 즉 '침묵의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이 다른 생태학 저서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니고 있는 명성에 비해, 이 책은 우리에게 지금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을 이야기해서 몰입도도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고, 우리가 이 책을 기억해야만 하고 읽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시대의 맥락context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금 보기에는 너무 당연한 과학적 진실이지만, 그 시대에는 산업 자본(DDT에 한정한다면 특히 화학 산업)의 힘에 눌려 그 누구도 말하기 꺼려했던 진실을 카슨이 용감하게 대중을 향해 고발한 것이다. 카슨이 이 책을 통해 이뤄낸 것은 마치 '달걀을 세우기 위해 달걀 밑을 깨는 발상(콜럼버스의 일화)'과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인류는 환경 보호를 위한 돌파구breakthrough를 만들 수 있었다. 마치 조곤조곤 옆에서 과학적 지식을 쉽게 설명해 주는 것과 같은 이 책은 그래서 특별한 게 아닐까.

 

이 책이 50주년을 맞았다고 해서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 책의 메세지를 잠깐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이전보다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그것이 충분하다고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누군가는 어쨌든 환경 운동을 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하는 그런 막연한 안도감. 요즘은 그런 불감증이 파다해져 있는 것만 같다.

 

50년 전에 비해 현재 달라진 것은, 몇몇 과학 기술이 지닌 파괴력이 단순히 특정 지역의 봄을 침묵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를 침묵시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은 '침묵의 세계'를 막기 위해서 다시 한번 정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인 과학기술학STS가 강조하는 '과학이 사회를 향하는 파괴적인 무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과 사회는 상호작용 해야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분노하지 않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을 겪고 나서 정치적 회의에 빠진 적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노력하여도 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싸우고 있지만, 정작 권력이 버티기만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아니한다. 이런 것을 진실이라 믿은 적이 있었다.

 

  요즘 되어 생각이 약간씩 바뀌고 있다. 아무리 수많은 기득권들이 이득을 유지하려 버틴다고 해도, 우리 또한 계속 버티어서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어쩔건가? 완전히 한번에 모든 것이 바뀌는 혁명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어도, 약간씩 나아지는 무언가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온갖 테러와 전쟁 기아가 득실거리지만 불과 몇십년 전과 비교한다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겉으로는 참 많이 나아졌지만 정작 중요한 '속'은 그다지 바뀌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국지적인 인권이나 환경 운동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2048 프로젝트>는 그 거대한 메커니즘에 제약을 '인권'이라는 목적을 통해 제어하려는 시도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꿈꿨지만 모두 함께 꿈꾸기 위해 힘을 하나로 모으지는 못했던, 그러한 일이다.

 

  <2048 프로젝트>에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누가 테러와 전쟁과 배고픔을 바라겠는가. 우리 삶에서 너무 당연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는 운동이기에, 이 운동은 허구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은 '허구가 아니어야만 한다', 즉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말 이 책 중간에 나오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을 구하는 구급차보다, 절벽에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낫다'는 일화는 내 평소의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라 인상깊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너무 무리라면서 굳이 더 많은 비용을 소모하는 구급차를 준비하려고만 한다. 저자가 말하듯 울타리를 세우는 것은 사회주의라 폄하되고 우려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저자말이 딱 맞다. 국가가 도로를 만든다고, 경찰이 치안을 유지한다고, 보건소가 있다고 해서 사회주의는 결코 아닌 것이다. 2048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도로, 경찰, 보건소 같이 '응당 누려야만 할 것'의 지평을 조금 더 인간적인 범위로 넓히려는 시도일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권에 관심이 많고, 진로를 인권운동 쪽으로 생각해 본 적도 있어 이 책은 참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다. 어쩌면 단순한 '선동서'일지도 모르지만, 선동이라고 다 나쁜가. 좋은 게 있고, 그것을 알리고 참여를 북돋는 것은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치부될 것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인류 전체가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환경에 대한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2048년에 상상할 수 있는 인류의 모습은 우리의 행동 하나로 크게 엇갈릴 지도 모른다. 하나는 그저 인류의 문제에 더 무관심해지기만 해서 더 헤어나올 수 없는 환경오염과 전쟁 기아라는 비극의 쳇바퀴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 하나는 2048 프로젝트가 바라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민의 탄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무진장 짜증났다. 이 책의 저자는 교수기도 하고 오랜시간 공부를 한만큼 학문에 대해서 나보다 쌓은 것은 많은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너무나도 '권위적'이라 읽는 내내 그 불쾌한 소절에 내내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신봉자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역사를 조망하는 것만이 가장 합리적이고 옳아 보인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역사학자들을 서슴없이 (거의 인격적으로) 깎아내려간다. 저자는 이렇게 언급한다. "역사학자들이 소재주의에 포획되어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고 있다. 그들은 다른 영역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다른 질문을 던질 의욕도 없다.(p.117-118)" 이 글만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매우 침체되어있고 소극적이며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만이 제대로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유명 대학에서 연구하는 교수라고 해서 역사학자들이 그르다 어리석다 이런얘기를 할 수 있는건가?" 만약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런 것은 겉멋든 권위에서 연유한 '다른 학문 까기' 정도밖에 안된다. 저자는 한편 서양사적 흐름에 한국사를 맞추려는 역사가들의 행위를 어리석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어느정도 인정할 수는 있어도, 저자 그 자신도 서양산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숭배하고 거기다가 조선사를 끼워맞추려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아이러니다. 저자 자신은 '역사학자들의 방법론에 따른 성과도 인정한다'라고 체면을 차리지만 바로 이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라고 말함으로서 결국 자신의 오만함을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 자신의 소양 부족일지는 몰라도 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에게 불친절한 책이었다. 주석도 뒤로가서 뒤적거려야 했고, 저자의 문체 자체도 지나치게 현학적이라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 자주 나와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실어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쓰지도 않는 한자가 남발되어있는 왕의 말을 해석없이 그대로 보여주어 이것이 근거라고 하는데 왜 근거인지 알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다수 대중을 위한 책은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역사학자도 막 까고 그럴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간학문(間學文)'의 시대라고는 해도 절대적으로 가장 올바른 학문적 방법론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역사학자들의 방법론도, 사회과학자들의 방법론도,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어느것이 특히 더 옳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근대성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근대 만들기'라는 식으로 비판하는데, 나는 저자의 연구도 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가 이 책에서 해내려고 한 것은 조선시대의 여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모습으로부터 서양의 사회과학이 만들어낸 여러 용어들을 붙이고 체계화하려고 한 것인데, 이것도 일종의 '사회과학적 근대 만들기' 아닐까. 물론 그런 용어 붙이기도 충분히 학계에 지대한 도움이 되는 의의있는 새로운 시도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보다 자신의 연구가 가장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 만들기' 즉,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민족이 '제조'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당시 상황에 대한 고려가 들어갔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탈민족이 더 합리적이다' 비스끄무리한 주장에서 특정 역사학파의 주장을 떠올렸다면, 그건 내가 너무 민감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역사학도라서 그런지 역사학자들을 깎아내리는 말에 지나치게 방어적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의견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만큼 저자의 의견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