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메신저로, 문자로 짧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얼굴은 본건 일년 반만인가...

2.두시간정도 걸려서 이곳에 왔다가 채 한시간이 되지 못하는 시간 얼굴을 보고. 다시 두시간을 걸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3. 그를 만나면서 무슨 옷을 입을까. 했던 고민은 기우였다. 그는 내 얼굴을 보느라, 내 눈을 보느라, 내 웃음을 보느라, 옷차림에는 신경도 쓰지 못했으니까. 유독 짧아진 머리카락도 모르는가 싶었는데 헤어질때가 되서야 머리카락을 스치며 이렇게 말한다. 

"이건, 이대로 또 좋아." 

4. "어쩔 수가 없었어." 라는 내 변명에 그는 그저 "응" 이라고 대답했다.  

5. 여전히 야구모자를 눌러썻고, 청바지를 입었고 계절보다 조금 이른 반팔티를 입고 나왔다. 변하지 않은것 같다라는 내 말에 그는 "그건 아무도 모르지." 라고 말했다. 그가 좀 변했다 하더라도. 그건, 그대로 또 좋을 것 이다.  

6. 남은 피자는 포장되어 그의 손에 들려갔다. 돌아가는 길에 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더니 저녁에 데워먹겠다고 했다. "그럼 저녁까지는 최소한 내 생각이 나겠네" 라고 농담을 던졌을 때 그는 또 그저 "응" 이라고 대답했다.  

7. 누군가와 연애를 했었고 그것은 또 그저 흘러가는 인연이 되었단다. 뭐 그런 수다를 떨었다. 결혼생활에 대한 자랑도 좀 했고. 프리랜서(나쁘게 말하면 반 백수) 로 일하는 그에게 염장을 좀 긁히기도 했다. 일상 이야기다. 그저 별 일 없이 살고 있다는 말을 쓸대 없이 길게 나눴다.   

8. 스마트 폰이 대세고 010 번호가 아닌 사람 찾기가 어려운 이때에 그는 여전히 011을 쓰고 그 핸드폰 기종은 내가 오래 전에 선물했던 그것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그 기계가 고장나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아무것도 아닌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태도나 말에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는 법을 알고 있기도 한다. 한마디로 좀.. "나쁜 남자"에 속한다.   

9. 다음에 보자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당연히 어쩔 수 없어지면 자기를 부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은 피자를 데워 먹겠다고 했고, 고장나지 않는 한 그 핸드폰을 계속 쓰겠다고 했다. 멀리서 왔으니 밥값은 니가 내라고 했다. 하지만 안다. "커피 마실 시간이 없네." 라는 짜증 섞인 말은 다음에 볼 땐 좀 더 여유있는 시간에 보자는 말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10. 이 글의 배후에는 그분이 계신다.  

11. 하필 또 새벽 세시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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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이라는 책 읽어봤어요? 거기에 이런 글이 나와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절대 그 사람의 손을 놓아서는 안 되네. 놓는 순간, 그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멀어지니까."

이 페이퍼 읽는데 자꾸만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생각났어요.

따라쟁이 2011-04-28 16:40   좋아요 0 | URL
그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따옴표 안의 말은 맞는 말이에요.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그리워 하게 되죠.

루쉰P 2011-04-2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좀 '나쁜남자'에 속하는 그 분은 뭐가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지, 왜 저는 이 글 속에서 그 분이 멋지다고 느껴지는 것일까요?

사랑이 무서운 것은 헤어짐 때문에 망설여 지는 것 같아요. 시작해서 같이 간다면 너무 좋지만 헤어져서 서로를 잊은 채 어떤 순간 생각나고 또 생각난다는 것, 전 그게 너무 두려워요.

따라쟁이 2011-04-28 16:48   좋아요 0 | URL
나쁜남자들은 일단 멋져야 해요. 마찬가지로 먹다버리 찐빵처럼 생긴 남자가 혼자 나쁜남자인척 하면 뒷통수를 후려 갈기겠죠. 사람은 무조건 미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루쉰P 2011-05-13 13:46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저는 뒷통수를 후려 맞지 않을려면 거의 득도의 수준으로 제 인격을 상승해야 겠다는 결심을 해요. 예수나 부처, 공자의 수준으로 인격을 업 그레이드를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미모에요. 미모. 하아~ 봄이 우울하네요....

pjy 2011-04-2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또 새벽 세시....
전 그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이제 새벽3시엔 누구를 꼭 만나거나 생각해야될듯 싶어요^^;

따라쟁이 2011-04-28 16:50   좋아요 0 | URL
새벽3시에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요. 그건 멋지고 나쁜남자로 해요.

무스탕 2011-04-2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 있고 없고는 읽는 내가 정한다. (이거 어느 대사 패러디 한건다 어디에 나온 대산지는 생각이 안나요;;; ...는 내가 정한다. 뭐 이런 느낌인데.. --a)

두시간 달려가서 한시간 기다렸다 30분 보고 다시 두시간 달려오고.. 이거 제가 전공인데.. ( ")

따라쟁이 2011-04-28 16:51   좋아요 0 | URL
으흠.. 무스탕님의 터프한 대사 뒤에 남은건 이제 담벼락으로 저를 밀어 붙이는 일만.. (응?)

양철나무꾼 2011-04-2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 바람이 부네요' 원제가 '북풍을 거슬러' 정도가 아니었던가요?
전 북풍을 거스를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지 않은고로...
님의 '재미없는 이야기'로 대리만족하고 가렵니다~^^

따라쟁이 2011-04-28 16:51   좋아요 0 | URL
저는 북풍을 거슬러 오를 열정은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제가 북풍을 거스르길 원하지 않아요. ㅠㅠ

비로그인 2011-04-2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재미있는 댓글들이라니.

가끔 드는 생각인데 따라님의 글은 재미있는 댓글들 낳는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도 낳으시면 꽤 유쾌하고 재밌을 것 같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세트로 하고 갑니다. ㅎ

따라쟁이 2011-04-28 16:59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게요. 글보다 재밌는 댓글에도 추천할 수 잇는 제도를 마련해야 해요.

아이는.. -ㅁ-;;;;

감은빛 2011-04-29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저도 세벽 세 시가 조금 넘어서 이 글을 읽었네요.
여러가지 이유로 절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되는 글이예요.

문득 배후에 계신 그 분이 누굴까 궁금해졌지만,
굳이 묻지는 않을래요.
그냥 충분히 흐뭇한 기분을 만끽했으니까요. ^^

따라쟁이 2011-04-29 16:4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도 나쁜 남자에 속하시는겁니까? 아이를 데려오고, 씻겨주고, 놀아주고, 밥도 해주고, 밥도 먹이고 재워도 주지만.. 나쁜남자라.. 그거.. 괜찮은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