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력 - 부와 성공을 이끄는 새로운 패러다임
토니 베이츠.나탈리 페토프 지음, 이선애 옮김 / 동아엠앤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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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차세대의 기술이다 


이 책<공감력>의 두 저자, 토니 베이츠와 나탈리 페토프, 베이츠는 공감이 기술의 차세대 영역임을 확신한다. 기업의 사주와 산업 리더들의 정책과 전략이 제대로 세워져야 기업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차세대의 기술은 “공감”이다. 누구의 공감이 필요한 것인가, 공감은 공급자 시각에서 이용자, 일하는 자의 시각으로 변해야만 살아 숨 쉬는 기업, 즉 끊임없이 소통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은이들은 “공감”을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현장실천을 어떻게 하는지를 10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기술발달과 산업변화와 함께 높아지는 세상의 공감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고객, 직원 중심의 비즈니스모델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공감 실천 수레바퀴”라 부르며 이 비즈니스 전략(2, 3장)에서, 공감리더십(9, 10장), 신뢰 기반 조직 모델 및 문화(6장, 8장), 공감기술(4장, 5장, 7장) 등을 역사, 신경과학, 심리학, 관리이론, 기술 발전 등 다양한 영역의 이론과 원리를 종합해서 얻은 모델들이다. 


고객, 직원 존중 운동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


다시 공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공감”의 근원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사물을 보는 능력에 있다. 이는 당신의 관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그들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는 의식적인 결정이다. 기업의 경우라면 고객과 직원의 관점이며, 이론보다는 실제로 이들을 우선해야 수익성도 개선된다는 의미다. 이 책은 기업사회는 유기체다. 제조현장 등의 물적 시설과 이해관계당사자인 주주, 이사 경영진 중심에서 직원과 고객 중심으로 그 중심이 옮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업의 주체로 전통적인 주주와 경영진에 더해 고객과 직원을 같은 위계에 놓고 공감 실천 공식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기업의 중심적 경험 핵심은 효율성과 효과성이며 이는 비용 절감이다(이를 비즈니스 중심, B 중심). 공식은 비용 절감 대신에 고객과 직원의 충성도(이는 단골과 피고용자=노동자, C&E 중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지은이들 이전의 사람들도 주장했었는데 이것이 바로 공감 비즈니스다. 


기업의 이미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기업의 이익보다는 고객과 직원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는 것인데, 단지 내세우는 선전에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체화, 실천을 통해서 기업 철학의 단계로까지 끌어올리게 됐을 때, 이 기업은 이미 유기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아마도 과거 일본의 몇몇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도요타는 회사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에서 그의 눈으로 상품(자동차)을 보라고, 공급자의 사고에서 소비자 이용자의 사고법으로의 전환을. 저자들의 주장과 다른 점은 고객 중심에 그친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여전히 공급자 시각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업적 관점에서 공감을 이렇게 설명한다. “회사가 고객과 직원의 입장이 되어(역지사지) 의사 결정을 내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을 재정립함으로써 놀라운 고객, 직원 중심 경험을 창출하는 행위”라고, 


이 책의 전체를 통과하는 열쇳말 “공감”과 비즈니스는 고객과 직원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적어도 비즈니스를 넘어 노사(계급갈등)상호존중의 규칙까지 진전될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지만, 적어도 주주와 경영진의 이익을 위해 고객과 직원이 복무해야 한다는 전통적 체제의 붕괴는 기업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선택일 수밖에,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업종에 따라서는 약간씩 사정이 다르기에.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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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산들 문학인 산문선 5
이즈미 세이이치 지음, 김영수 옮김 / 소명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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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편력, 등산에서 탐험으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향하는 시선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을 보낸 특이한 시대적 상황이 이 책의 지은이 이즈미 세이이치라는 “조선과 일본의” 문화인류학자는 수식어를 달게 해주었다.

한·중,일을 일컬어 동북아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만주도 몽골도 당연히 들어간다. 고산준령을 타고 넘으며,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 청년의 가슴에는 어떤 미래희망을 키웠을까 하는 궁금함이 일기도 한다. 1945년 이후 그는 도쿄대학으로 옮겨가는데 경성제대, 아무리 제국대학이라도 내지의 도쿄제국대학에서는 그저 변방 식민지출산일뿐이었다. 그의 사고는 ‘조선’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압박이 오히려 학문적으로 자유를 찾아 훨훨 안데스를 찾기도, 땅을 파고, 미지의 동굴 속으로 드나들 때의 긴장감과 호기심이 해방을 가져다주었는지도. 그가 남긴 사진 중 가장 편안하게 웃는 모습은 양주의 무당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1935년 제주에서 무당의 굿판을 본 후, 그는 전공이었던 국문학에서 사회학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그의 학문적 흔적은 제주도를 지나, 브라질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브라질은 가난한 일본 농민들의 농업이민의 고단한 흔적을 찾는다. 그 자신도 조선이 편한 일본의 이방인이었고, 고향을 떠난 브라질의 일본인도 이방인이었다.

이 책 <머나먼 산들>은 1967년 8월부터 1970년 6월까지 산악잡지 <알프>에 연재된 것이다. 이 작업이 끝난 후 50대 중반으로 나이로 죽었다. 산과 산의 연장으로서 탐험을 축으로 하여 하나의 인생을 살았다. 산을 좋아하는 지은이의 ‘산’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의 인생 내력을 보면 이 책은 그 내면세계의 머나먼 산 즉, 희망의 봉우리들을 이야기한다. 왜 그는 산을 찾았을까, 권력과 차별도 통하지 않는 곳, 누구에게나 열린 산, 하지만 누구나 다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 자신을 돌아보고, 참고 견뎌내는 힘의 원천은 산을 오르면서 길렀던 그의 내공이다.

책의 흐름은 산과 알게 되다를 시작으로 스포츠 알피니즘의 싹틀, 북조선의 산들, 제주도와 남조선의 산들, 그리고 등산에서 탐험으로, 중국을 헤매며 조사연구를 하고,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 서뉴기니 탐험을, 일본에서 6년, 남미의 일본인 연구 이른바 니케이진(일본계)를 대상으로 했다, 안데스, 또다시 일본에서 2년,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회귀.

지은이는 등산에서 탐험으로,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그는 제2의 고향인 조선과 한국, 그리고 졸업논문 “제주도” 조사연구를 다시 손질해 <한국으로의 “무도회의 수첩”>이란 책을 썼다고. 그의 탐험 여정을 들여다보면, 피압박민족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 문화인류학적 관심의 초점은 그곳에 가 있다. 제주를 찾고, 그곳에서 무당을 만나 사회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조선의 산들 속에 행간에서 그는 무엇을 읽어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특히, 1920~30년대 브라질 농업이민자들의 후예들의 삶 속에서 일본어, 일본문화와 풍습은 어떻게 변형되고, 이들의 사고체계는 또 어떻게 변했는가, 자못 흥미로운 대목이다. 세월이 흘러 1990년 초, 중반 일본 사회는 불황에 3D업종 기피, 니트족 등 다양한 사회문화의 변화와 함께 이른바 모자란 일손을 남미 농업이민의 후손들로 채웠다. 니케이진(일본계)정주자로, 결국 이들 역시 이방인이요, 일본 사회의 차별 그리고 토사구팽을 경험한다. 마치 지은이 자신이 경험했던 식민지 경성 출신의 차별감을.

이 책은 산에 관한 이야기에서 탐험으로 이어지는 지은이의 편력사이기도 하지만, 이주, 국경 너머 일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해를 위해서는 그의 생각과 눈이 필요한 시대다. 읽다 보니 아주 귀중한 정보가 들어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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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EBS CLASS ⓔ
고미숙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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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은 “죽음”을 자연스런 것으로 관념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쓴 이 책은 꽤 흥미롭다. 서양철학의 시발점이라 일컫는 소크라테스에서 장자, 붓다(석가모니)와 그의 수제자 사리뿟따,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간디와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죽음”에 관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지은이는 죽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사는 법을 알게 되리라고…. 죽음은 포르노보다 더 ‘센 터부’다 이른바 산 사람 앞에서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을 금기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혹은 해탈(윤회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남을 의미)로, 이와는 정반대로 죽음을 해석한 근대 권력은 눈앞에서 ‘죽음’을 치워버린다. 자살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 미디어에서는 ‘죽음’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무지개다리’로 가족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은밀한 ‘개인 정보’로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라, 죽음에 오만가지 부정적인 색깔을 덧칠하는데….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이란 죽음의 연습

 

죽음의 변론이라는 유명이야기, ‘악법도 법이다.’라는 가짜뉴스는 “다른 사람에게서 해악을 입었다고 해서 그것을 갚아 주려고 해서도 안 된다.”라는 말의 와전이다. 마치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구절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전해지듯.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소멸 혹은 옮겨감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윤회설, 이 힘든 세상에서 죽음만큼 평온함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철학이란 죽음을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이렇다. 철학자는 영혼만을 탐구하고 영혼만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한데 죽음은 영혼을 괴롭히는 몸의 결박에서 해방하는 것으로 온전히 지혜만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니, 이를 기뻐하며 맞이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그가 최후에 남긴 말, 의사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진 빚, 수탉 한 마리를 갚아 달라고.

 

장자는 아내가 죽자 장구를 치고 즐거워한다

 

장자에게 죽음은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다.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몰래 웃는다는 시쳇말이 있듯, 당대에도 그랬을까, 장자는 생각은 전혀 다르다. 아내의 죽음은 슬프다. 하지만 인간, 그리고 삶이란 본디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던 것이 저절로 혼합되어 기로, 형제로, 생명으로 됐다가 다시 본래대로 돌아간 거야. 그래 아내는 생의 고단한 여행을 마치고 천지라는 큰 집에서 푹 쉬게 되니 이 어찌 기뻐지 않을 것인가, 

 

생로병사는 생명의 순환이다. 봄에서 겨울까지의 변화처럼, 생리와 심리, 물리의 화합이다. 당연한 질서를 왜 애써 외면하려는 것인지라 생각하면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 “자연은 나에게 몸을 주어 태어나게 하고 삶을 주어 애쓰며 살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라는 말로, 자, 이 대목 역시, 하루 새벽에 깨어나 아침에 활동을 시작하고 오후에 잠시 쉬고 저녁에 잠들다. 여기서 오후의 일정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힘들어 몸져눕거나,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거나, 여전히 활기차게 활동하거나, 그러나 잠(죽음)시간은 꼭 찾아오니, 그래서 하루를 1년처럼 살자는 말도 나오는 게 아닌가, 현자들의 생각은 접근법과 주장점은 조금씩 달라도 결론은 하나다.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간디와 아인슈타인과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그저 그럼, 평범함이었다. 불안에 떨지도, 삶에 집착하려는 흔적도 없다. 그저 돌아오는 저녁을 맞이하듯, 그렇게.

 

간디, 사티하그라하는 “비폭력투쟁” 혹은 “불복종”으로 불리나 “진실을 찾는 길”이라 해석한 [박홍규 <간디 평전>(들녘, 2024)에서는 그의 죽음에 관한 태도를 엿 볼 수 있다. 그의 일생은 순탄한 삶이 아니었다. 영국이 벌인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했고, 인도에서는 그저 그런 삼류변호사로, 남아프리카에서 그는 인도인의 차별 현장을 목격, 인권을 위한 투쟁, 그는 늘 죽음과 함께하는 나날이었다. 1948년 총격에 쓰러졌을 때, 비로소 평온함을 찾았다. 나는 우아하게 떠나겠다는 아인슈타인, 죽음은 곳곳에 있다는 연암 박지원, 역사는 알리라는 다산 정약용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지은이는 인생의 또 다른 면을 현대인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이 가치에 대한 해석은 탁월하다. 자주 등장하는 동의보감, 역시 조미료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못내 하지 못한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물신과 돈으로 상징되는 것들에 관한 것, 의료과학 기술발달이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만큼이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불평등하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의료조력사망(MAiD), 심폐소생술거부(DNR)역시, “죽음” 평범한 일상이라 생각할 만큼 간격을 좁히고 있다. 존엄하게, 품위 있게, 우아하게 죽음의 맞이할 방법과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우리 시대 “죽음”이란 화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시의적절한 담론제안이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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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효과
댄 토마술로 지음, 윤영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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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극복을 위한 긍정의 힘 기르기 내 안에 잠자는 “HERO”깨우기

 

 

지은이 댄 토마술로는 긍정심리학자다. “긍정 효과”는 자기 조절력(절제 등)과 중요성을 알려준다. 눈 앞에 펼쳐진 삶은 헬조선일수도, 미약하지만, 틈새로 비친 희망을 발견할 수도, 이른바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주인공의 신념과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서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성곽 쇼생크교도소를 멋지게 탈출한다. 몇십 년에 걸친 굴 뚫기 작업은 집념도 그러하지만, 해낼 수 있다는 “긍정마인드”없이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람 안에 잠들어 있는 긍정마인드의 스위치를 어떻게 켤 것인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연습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이 책, 그래서 추천서에 넘쳐나는 공통된 찬사가 “방법”, “실용”일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챕터 7 체제로, 우선 스트레스와 불안의 부정성은 챕터 2~5의 희망(Hope), 유능감(Empowerment), 회복 탄력성(Resilence), 낙관주의(Optimism) 등 이 네 가지, 이른바 긍정 사고(HERO=영웅)를 의식적으로 기르는 방법을 찾고, 실천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조언한다. 유능감은 자신감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는 듯하지만, 다소 결이 다르다. 자존감의 대척점은 외부의 평가라는 약점이 존재하기에 “자중자애” 나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회복 탄력성은 내 안의 생각틀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도록 도전하고 또 용기를 갖는 것인데, 이는 비교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챕터 6, 긍정 효과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세 가지 방법이 제시했다. 첫째는 장애물 대처 기술을 통해 자기 조절 능력을 배우고, 두 번째는 외상 후 성장(PTG)하는 법을 배운다. 셋째로 적응적이고 조화로운 형태의 열정이 웰빙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알려준다.

 

지은이는 내면의 잠자는 HERO를 깨우라고 한다. 스스로 미래를 통제하고 믿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과거의 성공을 이용하여 자신감 갖기, 현재의 유연한 사고방식을 키워 준비성과 용기 기르기,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방식을 전환하여 균형감과 확신 얻기.

 

또 하나, 지은이는 유능감(임파워먼트)이란 개념을 들고 있는데, E의 자리에 들어가야 할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대신에 유능감이란 단어를 쓴다. 이는 자기 효능감에 앞서는 개념으로 자기 효능감의 원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대는 스트레스 사회다. 군중 속의 고독한 개인이다. 이들은 늘 자신만 고립된 듯한 느낌으로 살아간다. 이유는 많고도 많다. 하지만, 이런 부정성은 하나둘 과학으로 밝혀진다. 우리 뇌는 부정적인 생각의 뫼비우스띠를 올라타면 미래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방법을 찾을 여유나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악순환을 하게 돼, 더 많은 고민, 불안, 걱정, 절망감을…. 이 책을 통해서 하나씩 되짚어 나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북코스모스 도서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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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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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아고라

 

이야기는 간단명료, 토사구팽의 노령인구, 이들에게 나눠 줄 게 없다는 세상, 이에 반기를 든 노인들의 저항과 시위, 왕년에 학생시위 주동자로 구속되기도 했던 노인, 장갑차 앞에서 서서, 진압을 막는데(천안문사건이 생각날 정도로), 극적으로 장갑차는 서고, 이후 인구 절반이 노인인 이 공화국에서 노인들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는데.

 

이런 일련의 흐름을 만드는 계기가 된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곁들여 흥미롭게 전개한다. 무인 편의점에 들어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에 소주 한 병까지 계산도 하지 않고 들고나와서 먹고 마신다. 그것도 모자라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챙겨나온 죄로 육 개월 생활비에 맞먹는 벌금을 물어야 할 왕년의 증권사 직원, 주말과 일요일 쉬지도 못하고 달려 달려온 그는 업황을 이유로 정리해고되어, 노년에 고물이나 폐지수집을 하면서 공공근로 노인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아 이런 게 아닌데, 사회복지란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는 자세여야 하는데.

 

2056년 공화국에서 분리 독립된 노인들의 나라가 탄생, 국호는 “광장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작가 정성문의 사회파 소설은 이렇게 23년 후, 대한민국은 젊은 너희들의 나라(여의국)와 노인들의 나라(노의국)로, 하지만, 목욕탕 정상회담을 통해,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했던 구 공화국 대통령 이동현과 진보 진영이 한때 국정을 담당했던 시절, 이른바 386세대였을까, 학생운동을 거쳐 국가공무원이 되고, 나중에 사회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낸 김한섭, “호모사피엔스 아고라”를 외치던 그가 노인 나라의 대통령으로.

 

목욕탕 정상회담

 

둘 중, 누가 물속에서 오래 있나 내기를 해서 이긴 사람의 의견을 들어주기라는 걸 했다. 그래서 목욕탕 정상회담이라 한다. 이 소설에서 ‘목욕탕’ 가림이 없이, 터놓자는 상징이기도 한 듯. 아무튼 첫째, 두 공화국은 영구평화,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둘째, 양 국민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국적 이동을 제한하지 않으며, 셋째, 기업의 자유로운 교역을 보장하는 경제공동체로 이 땅의 번영을 약속, 넷째, 두 공화국은 상대국 국민을 자국민처럼 존중하고 보호한다. 다섯째 외세 침략에 공동대응하며, 여섯째 두 공화국은 국민 갈등과 세대 갈등을 불식하고 항구적인 평화 공존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인간 존중 사상을 헌법 전문에 수록, 경로효친 사상을 각급 학교의 정규 교과에서 넣는다.

 

이 꿈 같은 6개의 공동선언을 한다. 2050년 문제, 아직 한국에서는 절실한 인구절벽을 담론의 화두로 삼은 적은 없다. 이제 서서히 “인구절벽”을 논하는 책 따위가 눈에 띈다. 의료과학 기술발달도 100세 시대를 넘어, 한계를 극복하는 중에. 생길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과 초고령사회는 넘어 노인들의 나라로 이행될 수도 있다는 상상, 아니 현실일 수도,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아니라, 새로운 길의 모색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작가는 한국 사회의 87년 6·10 이후로 설정됐을 법한 대학생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열망과 거리로 뛰쳐 나와, 구호를 외치던 그 시절과 이들이 사회인으로 한때 노동운동이냐, 밥벌이냐를 고민했던 시대를 통과하며, 김한섭의 입을 빌어 “열렬히 싸우는 노동운동보다, 착한 경영자”가 되는 길도 있다는 말,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경계선에서 선 인물들처럼

 

공동선언은 마치 남, 북의 평화선언과도 같다. 아마 노인의 나라 대신에 북을 대치시키면 얼추 들어맞을 듯하다. 지금 북의 태도가 남북, 북남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동시 유엔가입 때의 국호 대한민국이라고 부른다고, 적으로 규정한다고 해도, 한반도 모순 그 자체는 민족분단이다. 이념과 체제의 갈등, 마치 2050년대 사회의 세대 사이의 갈등과 본질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혼인 정년제, 결혼 30주년이 넘으면 단 1번만 혼인 정년을 이유로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 노인 문제를 다룬 이 소설, 주거와 성생활, 그리고 그들이 현재 사회에서 뭘 어떻게 하면서 정년 이후의 삶을 꾸려나가는지, “인간다운 생활”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이제는 그 고민을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 안에는 80~90년 초반에 걸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변모,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치변동 흐름을 등장인물 김한섭을 통해서, 공무원들의 외국 파견 혹은 유학, 그 자녀들의 동반 유학, 특례입학 등의 이슈와 정당의 직업정치인들이 낮에는 서로 죽일 듯 다투다가, 밤이면 학맥, 인맥, 지맥으로 끼리끼리 뭉쳐 호형호제하면서 쇼를 하는 모습도 아주 가볍게 스케치, 한국 사회의 60년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아무튼 몰입도가 좋다. 구 공화국 대통령 이동현은 누구를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다. 아니 여러 명의 특징이 녹아있기도 한다. 읽는 이들의 경험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지만, 아무튼 유쾌한 반란이다. 자, 노인 일자리를 만들면 청년들이 일할 곳이 줄어든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워라벨을 하든 뭘 하든, 삶 자체가 피곤한데 둘이 살기도 귀찮은 데로 시작된 선택들이 한 세대, 두 세대 후의 우리 사회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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