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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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아고라

 

이야기는 간단명료, 토사구팽의 노령인구, 이들에게 나눠 줄 게 없다는 세상, 이에 반기를 든 노인들의 저항과 시위, 왕년에 학생시위 주동자로 구속되기도 했던 노인, 장갑차 앞에서 서서, 진압을 막는데(천안문사건이 생각날 정도로), 극적으로 장갑차는 서고, 이후 인구 절반이 노인인 이 공화국에서 노인들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는데.

 

이런 일련의 흐름을 만드는 계기가 된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곁들여 흥미롭게 전개한다. 무인 편의점에 들어가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에 소주 한 병까지 계산도 하지 않고 들고나와서 먹고 마신다. 그것도 모자라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챙겨나온 죄로 육 개월 생활비에 맞먹는 벌금을 물어야 할 왕년의 증권사 직원, 주말과 일요일 쉬지도 못하고 달려 달려온 그는 업황을 이유로 정리해고되어, 노년에 고물이나 폐지수집을 하면서 공공근로 노인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아 이런 게 아닌데, 사회복지란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는 자세여야 하는데.

 

2056년 공화국에서 분리 독립된 노인들의 나라가 탄생, 국호는 “광장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작가 정성문의 사회파 소설은 이렇게 23년 후, 대한민국은 젊은 너희들의 나라(여의국)와 노인들의 나라(노의국)로, 하지만, 목욕탕 정상회담을 통해,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했던 구 공화국 대통령 이동현과 진보 진영이 한때 국정을 담당했던 시절, 이른바 386세대였을까, 학생운동을 거쳐 국가공무원이 되고, 나중에 사회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낸 김한섭, “호모사피엔스 아고라”를 외치던 그가 노인 나라의 대통령으로.

 

목욕탕 정상회담

 

둘 중, 누가 물속에서 오래 있나 내기를 해서 이긴 사람의 의견을 들어주기라는 걸 했다. 그래서 목욕탕 정상회담이라 한다. 이 소설에서 ‘목욕탕’ 가림이 없이, 터놓자는 상징이기도 한 듯. 아무튼 첫째, 두 공화국은 영구평화,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둘째, 양 국민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국적 이동을 제한하지 않으며, 셋째, 기업의 자유로운 교역을 보장하는 경제공동체로 이 땅의 번영을 약속, 넷째, 두 공화국은 상대국 국민을 자국민처럼 존중하고 보호한다. 다섯째 외세 침략에 공동대응하며, 여섯째 두 공화국은 국민 갈등과 세대 갈등을 불식하고 항구적인 평화 공존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인간 존중 사상을 헌법 전문에 수록, 경로효친 사상을 각급 학교의 정규 교과에서 넣는다.

 

이 꿈 같은 6개의 공동선언을 한다. 2050년 문제, 아직 한국에서는 절실한 인구절벽을 담론의 화두로 삼은 적은 없다. 이제 서서히 “인구절벽”을 논하는 책 따위가 눈에 띈다. 의료과학 기술발달도 100세 시대를 넘어, 한계를 극복하는 중에. 생길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과 초고령사회는 넘어 노인들의 나라로 이행될 수도 있다는 상상, 아니 현실일 수도,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아니라, 새로운 길의 모색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작가는 한국 사회의 87년 6·10 이후로 설정됐을 법한 대학생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열망과 거리로 뛰쳐 나와, 구호를 외치던 그 시절과 이들이 사회인으로 한때 노동운동이냐, 밥벌이냐를 고민했던 시대를 통과하며, 김한섭의 입을 빌어 “열렬히 싸우는 노동운동보다, 착한 경영자”가 되는 길도 있다는 말,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경계선에서 선 인물들처럼

 

공동선언은 마치 남, 북의 평화선언과도 같다. 아마 노인의 나라 대신에 북을 대치시키면 얼추 들어맞을 듯하다. 지금 북의 태도가 남북, 북남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동시 유엔가입 때의 국호 대한민국이라고 부른다고, 적으로 규정한다고 해도, 한반도 모순 그 자체는 민족분단이다. 이념과 체제의 갈등, 마치 2050년대 사회의 세대 사이의 갈등과 본질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혼인 정년제, 결혼 30주년이 넘으면 단 1번만 혼인 정년을 이유로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 노인 문제를 다룬 이 소설, 주거와 성생활, 그리고 그들이 현재 사회에서 뭘 어떻게 하면서 정년 이후의 삶을 꾸려나가는지, “인간다운 생활”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이제는 그 고민을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 안에는 80~90년 초반에 걸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변모,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치변동 흐름을 등장인물 김한섭을 통해서, 공무원들의 외국 파견 혹은 유학, 그 자녀들의 동반 유학, 특례입학 등의 이슈와 정당의 직업정치인들이 낮에는 서로 죽일 듯 다투다가, 밤이면 학맥, 인맥, 지맥으로 끼리끼리 뭉쳐 호형호제하면서 쇼를 하는 모습도 아주 가볍게 스케치, 한국 사회의 60년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아무튼 몰입도가 좋다. 구 공화국 대통령 이동현은 누구를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다. 아니 여러 명의 특징이 녹아있기도 한다. 읽는 이들의 경험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지만, 아무튼 유쾌한 반란이다. 자, 노인 일자리를 만들면 청년들이 일할 곳이 줄어든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워라벨을 하든 뭘 하든, 삶 자체가 피곤한데 둘이 살기도 귀찮은 데로 시작된 선택들이 한 세대, 두 세대 후의 우리 사회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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