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일 년 만에 글을 쓴다. 혹 그동안 엄청나게 바빴다거나 신변에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아 늘 읽었지만, 글은 하루 이틀 안 쓰다 보니 내성(?)이 생겨 이 지경까지 왔다. 한마디로 귀찮아서 안 썼다는 말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긴 하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딜레마다. 아니 글쓰기를 하는 순간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글은 자아를 좀 더 분명히 드러낸다.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적든,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이나 주장을 담든 그 글은 나를 선명히 부각시킨다. 본 것, 들은 것, 느끼고 생각한 것, 행위를 한 것 등 나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경험한 모든 일을 풀어쓰는 것이 글쓰기다.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자아감에 더 도취해 살아간다. 때로는 거기서 어떤 위로를 얻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존재의 이유를 구하거나 구원까지 얻기도 한다. 사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쉽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반대로 자아를 흐릿하게 하여 진정으로 나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음을 증득하고 싶다. 그래서 글쓰기를 딜레마라고 한 것이다.
거창하고 쓸데없는 변명을 길게도 썼지만, 거짓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아를 흐리게 하는 글쓰기도 있을까? 글쎄, 계속 고민 중이다.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연기의 관점에서 글쓰기를 바라보면 또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언어의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또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무슨 개소리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틈틈이 글을 쓰면서 고민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