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박상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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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2023년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젊은작가상 대상, 허균문학작가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 속 한국 문학의 자리를 넓혀온 주역인

데뷔 10년 차를 맞은 소설가 '박상영'

​

『믿음에 대하여』로부터 4년 만의 신작이며,

장편소설로는 『1차원이 되고 싶어』 이후 5년 만에

재벌 일가를 둘러싼 치정과 야욕을 다룬 미스터리소설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끌렸던 건

​

"이 소설의 사랑은 망해도 너무 망했다"

_심은경(배우)

​

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뜨거운 것일까...

아니면 너무 더러운 것일까...

그 사랑의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

"되갚는다고 해서

나쁜 일이 아닌 건 아니잖아."

​

"더러워져야만 비로소

붙잡을 수 있는 것들도 있어."

​

26년 만에 재가 되어 돌아온 여자

작은 상자에 담긴 뜨거운 진실 혹은 사랑의 기록

​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마츠노 하나 씨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지요?"

"얼른 시립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 마츠노 사치코 씨가 중태에 빠졌습니다." - page 11

​

평범한 회사원 '마츠노 하나'에게 어머니 '마츠노 사치코'가 화재로 인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수술실 앞에서 숯덩이가 된 어머니.

힘겹게 하나를 향해 손을 뻗고는 떨리는 입술로

​

"하…… 하나야."

"응 엄마, 나야."

"하나야…… 윤동주를…… 세일백화점의 운동주 회장을 찾아가……."

"어?"

"진실을…… 알아내. 이 모든 일을…… 되돌려." - page 13 ~ 14

​

이 말을 남긴 채 떠나간 어머니.

하나는 일본으로 이주하기 직전인 열 살 무렵에 서울에서 겪은 화재 사건을 상기하며 이번 일이 단순 사고나 혐오범죄가 아님을 직감하고

윤동주에 관련된 기사를 찾던 중 대학 시절 교환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친구가 된 기자 '맹준호'도 세일그룹과 관련해 취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

'갑작스럽게 이런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며칠 전 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유언은 세일백화점의 윤동주 회장을 찾아가서 모든 것을 들으라는 말이었고…….'

​

이 문장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주 작은 단서라도 좋으니 윤동주에게 닿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고

맹준호는 그녀를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

그의 도움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과거 세일백화점의 미인 대회 우승자였음을 알게 되고...

​

엄마와 윤동주는 도대체 무슨 사이였던 걸까. 기사에 따르면 하나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것이 분명한데 하나는 왜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걸까. 엄마는 도대체 왜 숨을 놓는 마지막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렸을까.

혹시 그녀가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일까? - page 47

​

하지만 사건을 파헤칠수록...

​

하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밝혀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일까? 시작은 단순했다. 그저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과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새로운 사건이 튀어나왔다. 엄마와 하나 자신이 굴지의 대기업가 얽혀 있다는 것, 그리고 총 세 차례의 화재가 벌어졌다는 것. 뭔가 알아냈다 싶으면 사건은 또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그때마다 예상치 못한 얼굴들과 마주하게 됐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시원에는 가닿지 못한 채 가장자리만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그러모으다 보면 결국 온전한 진실에 가닿게 될까? 진실을 알고 난 뒤에도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엄마는 왜 한국으로 건너가, 윤동주를 만나라 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얻기를 바란 걸까. - page 189 ~ 190

​

끝내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자신의 익숙한 삶으로 돌아갈 것인지 고민하다 끝내 안식을 얻지 못한 채 캐리어에 담겨 온 어머니의 유해에 시선이 머물게 되는데...

그러다 마주하게 된 빛바랜 양장 노트 몇 권.

'요코하마'라는 글자가 적힌 노트엔 재벌가의 성공 서사 뒤의 담합과 부패, 축적된 재화에 대한 장부였고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앞선 장부들과는 다르게 빼곡한 문장들이 있던 노트엔 엄마가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 있었는데...

​

그 모든 세월의 뒤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었다. 무대 위에선 나를 처음 발견해준 사람, 나와 같은 종류의 어둠을 지녔다고 고백한 사람, 나에게 복수라는 이름의 미래를 건네주고, 동시에 내가 쌓아 올린 잔혹한 성의 주인이 되어준 사람. 내 가장 찬란한 순간과 가장 추악한 순간, 그 모든 장면을 함께 했던 바로 그, 사람.

...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미움이라고 부를 수도, 종국엔 증오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 그 시간들을. 자꾸만 되뇌게 된다.

그 모든 죄와 사랑의 한중간에 함께했던 그 이름을,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을 당신의 이름을 조용히,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불러본다.

동주. - page 302

​

아버지 윤창국에 대한 증오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고자 했던, 그리하여 결국 왕관을 썼던 동주.

하지만 이 왕관은 지푸라기와도 같았고...

​

내 머리 위에 얹힌 왕관이, 세상에서 가장 호화롭다 믿었던 그 왕관이, 실은 지푸라기로 엮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손을 대기만 해도 바스러질 만큼 허술하게 꿴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어. - page 337

​

이제 이 왕관은...

​

"지푸라기로 만든 왕관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

"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간절하고 애달픈, 더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엮여서 만들어진 왕관이라고. 아주 가볍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매우 질기고 단단한, 그런 왕관."

"지푸라기 왕관이라……." - page 345

​

이 세상에 소외된 이들에게 삶의 불씨가 되어주는데...!

​

우리의 현대사의 민낯과 함께 그려졌던 여자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

간절함이 누군가에겐 구원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었던...

그렇게 허상을 쫓아 살아가다 재가 되어버린 이들...

가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당연한 결과였다고 여겨야 하는 걸까...

또다시 이들의 이야기는 저에게도 한 줌의 재가 되어 흔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

읽고 난 뒤...

타고 난 뒤의 재는...

누구의 몫이 되는 걸까...

아직 저는 그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마지막 장을 차마 덮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 책을 덮어줄 것인가......

그 사람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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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 도깨비 편의점 4 ㅣ 특서 어린이문학 21
김용세.김병섭 지음, 글시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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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음속 깊은 고민을 가진 어린이 앞에 떨어진 한 장의 황금 카드.

카드를 줍는 순간,

도깨비의 시간이 시작되고 25시 도깨비 편의점 문이 열리는데...!

​

전권에서는

25시 도깨비 편의점과 비형·길달을 둘러싼 비밀,

어둠 속에서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 '어둑서니'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25시 도깨비 편의점의 네 번재 문이 열렸습니다.

​

어린이를 노리는 어둑서니의 본격적인 음모가 시작된다!

비형과 길달은 어린이의 마음을 지켜 내고

세상을 뒤덮는 어둠을 막을 수 있을까?

​

『25시 도깨비 편의점 4』

"드디어 새로운 점장이 왔군."

​

어린 비형에게 건넨 '백호 할아버지'의 말.

백두산 호랑이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백호라고 불렀다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가 벽장에서 검은 상자를 꺼내며 비형에게 건넸고 비형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니...

칠흑같이 검은 구슬

​

"이건 천년 구슬이란다."

"천년 구슬이요?"

"네가 여우 녀석을 되찾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거지. 어둑서니 때문에 검게 변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천년 구슬을 되살려야 한다."

​

아직 자신의 정체도, 능력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어린 비형.

그런 비형에게 한 손에는 검게 변한 천년 구슬을, 다른 한 손에는 황금 카드를 건네준 할아버지.

황금 카드는 황금 모래시계로 변하게 되었고

모래시계를 뒤집으니 깊은 어둠 속에 공포로 사로잡힌 기묘한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마주하게 된 '연이'라는 소녀.

피부가 마치 불에 탄 재처럼 검게 변한 저주와 함께 마을의 저주를 풀기 위한 제물로 바쳐지게 되는데...

과연 연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어둑서니를 막을 수 없었어요."

백호 할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네가 끝까지 그 아이의 빛을 지켜 내지 않았니? 인간은 나약하지 않단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끝까지 지키는 존재란다."

"누군가를 지킬 힘을 갖고 싶어요."

자신의 생일에도 야근해야 하는 엄마에게 크게 실망한 '다은이'

고양이 키키와 단둘이 쓸쓸한 밤을 보내던 중 '황금 카드'를 발견하게 되고 25시 도깨비 편의점에 가게 됩니다.

진열대 위의 물건 중 유일하게 따뜻한 빛을 내는 '붉은 방울'에 시선이 멈추게 되고

​

"이걸로 할게요."

"좋아! 붉은 방울을 동물의 목에 달아 주면 신기한 소리가 들릴 거야. 대신 기회는 한 번뿐이야. 방울이 깨지거나 떨어지면 영원히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테니 주의하렴."

​

덕분에 키키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다은이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의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데...

​

"다은아, 이 붉은 방울이 왜 이렇게 빛나는 줄 알아?"

...

"고양이 눈은 속일 수 없어. 붉은빛이 맴도는 건, 엄마가 널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뜻이야."

과연 붉은 방울에 감춰진 진짜 힘은 무엇일까?

미처 전해지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은 다은이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

과거 무대에서의 실수로 춤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서하'

​

'겨우 센터 자리 놓친 거 가지고, 바보같이……'

​

그런 서하 앞에 길달이 나타나고 25시 도깨비 편의점에 가게 되는데...

춤추는 황금 신발에 시선이 멈춘 서하.

​

"그건 춤을 출 때 어떤 문제가 생겨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출 수 있게 도와주는 신발이야."

...

"이 신발, 잘 사용해야 해. 생각보다 기운이 강한 신발이거든."

"기운이 강하다고요?"

"너무 오래, 자주 착용하지 말고, 꼭 필요한 상황에만 신으렴."

​

하지만 황금 신발을 신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춤을 출 수 있게 되었고,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더 잘하고 싶고, 더 빛나고 싶은 마음에 서하는 황금 신발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럴수록 황금 신발의 검은 점도 같이 늘어났고 결국...!

​

'완전히 검게 변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더 이상 신발은 벗겨지지 않았고

마음속에서 낯선 음울한 선율이 흘러나왔고

그 음악에 발가락들은 신발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두려움에 떨게 된 서하... 이젠 어떻게 될까...?

​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요?

사랑하는 마음은 애써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저절로 전해질까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칫 지나쳐 욕심으로 변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

이번엔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 작가님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

사랑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고 서로에게 건너가야 비로소 나타나는 마음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응원이나 관심, 작은 친절에 기대기보단 내 안의 힘을 믿어볼 것을,

​

다은이와 서하로부터 일깨워 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것...

특히 다은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하곤 하였는데...

저도 제 마음이 품고 있는 것을 조금씩 펼쳐 보이도록 해야겠습니다.

​

25시 도깨비 편의점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고...

어둑서니의 본격적인 계략과 술수가 시작된 가운데...

과연 다음 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비형과 길달은 어둑서니로부터 25시 도깨비 편의점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저와 제 아이는 마음속 빛을 잃지 않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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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블라블라 ㅣ 득수 청소년
김강 지음, 윤은경 그림 / 득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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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득수 출판사에서 청소년들이 문학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단편소설에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더한 새로운 소설 읽기

<득수 청소년> 시리즈

를 마련했고 그 첫 번째가 이 책이었습니다.

​

책 제목을 보고는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표지에 그려진 그림으로도...

한 소년이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가 그려졌을지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던 이 책.

읽고 난 뒤...

먹먹함이 있었던...

그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 보려 합니다.

​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면 '안녕'

잎 두 개는 '고마워'

새로 익힌 말.

잎 세 개는 '미안해'

​

『블라블라블라』

아이가 그것의 어딘가를 만졌어.

​

그것은 눈을 떴지.


5월의 어느 일요일, 한 아이가 형과 아빠와 함께 아파트 작은 운동장에서 야구를 했습니다.

아빠가 던지고 형이 공을 치거나 형이 공을 던지고 아빠가 치면 아이는 공을 따라다녔는데

그러다 아이의 가랑이 사이로 공이 빠져나가면서 공이 그것에 부딪혀 멈춰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

"안녕"

​

……

​

"고마워."

​

……

​

이 모습을 보던 아빠는 아이에게 다가왔고 서로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것은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됩니다.

​

자신이 벚나무라는 것, 아이가 내년에는 초딩이라는 것이 된다는 것, 아이의 말은 들리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는 것.

​

수요일 오후, 아이가 다시 찾아옵니다.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 나간 아빠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서 잠시 그것의 옆 등나무 벤치에 앉게 되는데...

​

"... 이 나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외국인처럼 '블라 블라 블라'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잘 보면 머리도 비슷해요. 파마머리."

(그것 참 재밌네. 블라 블라 블라. 입에 잘 붙는구나.)

​

그것은 이제부터 자신의 이름을 '블라블라블라'라고 칭합니다.

아이의 인사에 대답도 하고 싶고 고맙다 말해주려 했지만 할 수 없었던 블라블라블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을 건네게 됩니다.

​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면 '안녕',

잎 두 개는 '고마워'

​

아이는 블라블라블라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고

블라블라블라는 이 순간들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

하지만...

아이가 그를 깨운 이후로 잠이 들지 않았던 블라블라블라.

그러다 잠이 들지 않아서 아이를 볼 수 있는 건지, 아이가 와서 잠이 들지 않는 것인지, 언제 다시 그런 일이 생길지 조금씩 불안해졌고

아이도 저금씩 찾아오지 않는 날이 늘기 시작합니다.

​

"아빠, 블라블라블라 잎이 다른 나무에 비해서 좀 빨리 시드는 것 같지 않아요? 다른 나무는 아직 초록이 남아 있는데, 블라블라블라의 잎은 벌써 갈색이에요."

(그렇네. 이제 곧 가을이니까. 블라블라블라는 계절을 조금 빨리 느끼나 보다.)

'너 때문이란다. 네가 오지 않을까? 내일은 올까? 말을 걸지 않을까? 또다시 잠이 들까? 하루하루가 불안하단다. 뿌리에서 물을 끌어 올려도 가지 끝까지, 잎사귀 끝까지 올라가지를 않아. 가슴이 뜨겁고 목이 타서 가지 끝까지 가기 전에 다 마셔버리고 말아. 모두 말라버리고 말아.'

...

"... 꽃. 지난봄에는 블라블라블라를 잘 알지 못해서 꽃이 어떻게 피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내년 봄에는 꼭 볼 거예요. 사진도 찍고. 그리고 블라블라블라가 뿌려주는 꽃비도 맞고 싶어요. 떨어지는 꽃잎을 손으로 잡아보기도 하고."

(그러자.)

'내년 봄. 내년에도 나는 여기 서 있을 거야. 꽃도 피우겠지. 너만, 너만 변하지 않으면. 너의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다면, 네가 지금까지 본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꽃을 보여줄 거야. 약속할 게.

​

너는, 너는 약속할 수 있겠니?'

​

블라블라블라는 이 약속을 가슴에 새긴 채 또 하나의 말을 건네는데...

겨울이 지나...

또다시 5월...

​

"안녕."

​

책을 덮는 순간 눈물이 났던 건 왜일까...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

그 순수함에...

그 묵묵함에...

잠시 잊혔던 제 안의 감정이 움틀거렸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

아이도 이 책을 읽고는...

선뜻 말을 건네지 않았었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

​

"엄마, 소중함에 대해 배우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무가 많이 불쌍하지 않다고 생각돼요."

​

아...!

어느새 아이는 또 성장을 하였나 봅니다.

​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렇게 서로의 관계가, 존재가 새겨진다는 것을...

덕분에 제 시선이 조금 확장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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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미술관 - 명화로 읽는 나의 인생
김지영 지음 / 지식여행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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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에서...

그냥 끌렸다고 할까...

생각해 보면 저도 '어른'이 되어서

'미술관'을 찾아다니게 되었고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고

명화들을 볼 때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그렇게 내 삶과 명화들이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런 느낌인 걸까...?!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저자 '김지영'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키가 작고 소심했던 어린 시절, 용기와 꿈을 심어준 것은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 힘을 아이들과 나누는 동안, 함께 그림으로 생각하고 놀던 아이들이 저마다 꿈꾸던 모습의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며 그림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거듭 확인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일수록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고 믿는다. 그 마음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마주하도록 돕는 예술 콘텐츠를 만들어 왔으며, 이제 그 시선을 어른들에게도 전하고자 한다.

​

이제부터 저자가 건넨 시선...

같이 머물러보고자 합니다.

​

그림 속에는 화가의 인생이,

그림 앞에는 당신의 인생이

있습니다.

​

『어른의 미술관』

여기,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오신 당신을 위해 안방미술관에 작은 의자를 하나 마련해 두었습니다. 문장이 멈추는 곳에서 그림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 가시길 바랍니다. 눈부신 색채 속에서 내 삶의 흔적을 품위 있게 쓰다듬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명화라는 거울에 지나온 삶을 비추어보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하면 더 품격 있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page 6 ~ 7

​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

열두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 다시 시작하는 용기, 여전히 설레는 마음, 그리고 아직 남은 배고픔까지...

방마다 두 점의 그림이 걸려있고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삶을 들려주며

앞에 선 이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백...

펜을 들었지만 선뜻 답을 써 내려가지 못하는 저를 발견하면서...

무엇이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기에

오랫동안 묵묵히...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결국 어른의 미술관은

'나'라는 미술관에서

'내'가 관람객이 되어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 끝나는 이야기였습니다.

​

솔직히 책의 크기를 보고 놀랐습니다.

책을 펼치니 글씨 크기 또한 커서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질문들이 있었고 답을 쓸 공간이 생각보다 넓어서 놀랐습니다.

아마도 크기만큼의, 넓이만큼의 기다림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바라보게 되었고

끝없는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책을 받았을 때 제 시선을 사로잡았던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단순히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 아니라 명상과 영혼의 교감이라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감동을 주는 화가로 남아 있는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건넨 이야기

​

일렁이는 자욱한 안개는 우리가 지나왔거나 어쩌면 앞으로 마주할 인생의 막막함을 닮았습니다. 그 막막한 풍경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 마주하고 서 있습니다. 타인의 온기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나침반 삼아 정상까지 올라선 이의 뒷모습에서 의연함과 존엄이 느껴집니다. - page 21


그림 속 굽이치는 안개 바다는 사실 당신이 평생을 몸으로 받아낸 거친 파도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위해, 삶을 위해 매일같이 마주해야 했던 막막한 순간들, 그 치열했던 파도들이 이제는 부드러운 안개가 되어 당신 발아래 머물러 있습니다. 거친 숨을 고르고 풍경을 내려다볼 여유도 생겼습니다. 누구도 아닌 오직 당신 자신으로만 서 계셔도 좋겠습니다. 당신이 일궈온 세월은 풍경보다 벅차고 숭고합니다. '나'라는 풍경을 이제 마주하는 당신의 뒷모습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page 21

​

저는 아직 다 오르지 못했기에 이 공간은 남겨두었습니다.

오늘은 이 그림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이중섭'의 <서귀포의 환상>.

생계조차 잇지 못하게 되어 제주도로 옮겼던 이중섭과 그의 가족.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처가로 보내게 되고,

홀로 힘겹게 살아가던 그.

하지만 이 그림에선...

​

<서귀포의 환상>은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선택하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면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손바닥만 한 은박지와 못 하나, 주린 배 채울 삶은 게 몇 마리, 캔버스 대신 판자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숨 쉬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충분한 삶이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더 깊이 누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비밀임을 보여줍니다. - page 203 ~ 204

내 삶은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혼자 있게 된 이 시간.

커피 한 잔과 함께 <서귀포의 환상>을 보고 또 들여다보며 오늘 하루를 지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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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미술관 - 명화로 읽는 나의 인생
김지영 지음 / 지식여행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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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만큼이나 기다림을 주며 명화 속 나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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