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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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마냥 도시에서 사는 것이 좋았는데...

요즘 들어 가끔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합니다.

복잡하고도 힘겨운 도시에서의 삶.

시골이라고 편하고 여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안락함이랄까...

거기에 마냥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입니다.

 

여기 서울에 살던 평범한 가족이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 시골로 떠난 이들이 있었습니다.

110년된 집에서 밀을 갈고 빵을 구워 먹으며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일상을 찾은 이들이 전할 이야기가 무엇일지 기대를 하며 책장을 펼쳤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기 버거워진 순간

나의 월든을 찾아 삶의 실험을 시작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정말 지금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있는 힘껏 달리면서도 그 마음에는 희망이 아니라 체념이 자리잡는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이런 이상한 포기 상태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붉은 여왕은 말한다. "이곳에서 어디로 가려면, 최선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조금씩 더 빨리 달릴 방법을 찾는다. 잠을 줄여보고, 점심시간을 쪼개보고, 출퇴근 시간도 활용한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 것과 의미 있게 사는 것은 다르다. - page  5

 

그저 열심히만 살면서 그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 착각했기에 밤마다 공허함이 찾아왔나 봅니다.

그래서 저자 역시도 시골에서의 삶을 택했던 것이었습니다.

 

나도 내 삶의 골수를 맛보고 싶었다. 나만의 의미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나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꽤나 공이 드는 작업이다. 그런 삶의 독특성, 의미, 재미를 주목하고 찾아낼 사람은 우주에 나 한 사람밖에 없다. 섬세하고 주의 깊게, 너그럽게 천천히 들여다봐야만 보인다. 내게 시골은 이런 생각에 마음껏 빠져 있을 만한 넉넉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적은 생활비를 의미했다. - page 6

 

처음 책을 보았을 때 왜 숲속의 자본주의자일까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7년, 아직 괜찮다. 그렇다고 나나 우리 가족이 자본주의에서 독립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취하며 살고 있다. 평범한 개인이 아무리 덜 쓴다 한들 삶을 충만하게 하는 일만으로 채워진 일상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인류역사상 자본주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이 있다. 책 읽고, 글 쓰고, 가족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당장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성이 무르익기 전, 단지 굶지 않고 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했던 시대에는 소수의 귀족에게나 허락되었던 것이다. - page 19

 

그래서 '숲속의 자본주의자'로서의 삶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이토록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복잡하다. 나는 이 복잡함 그 자체를 삶의 경이로움이자 삶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심고 따 먹고, 도시의 편리가 제공해주는 삶의 여유와 시간과 몸의 편안함도 적절히 골고루 다 즐기기로 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삶을 그 자체의 복잡성으로 즐기지 못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 page 64 ~ 65

 

책 속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저에게 사유하게끔 하였습니다.

특히 '집'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아!'란 감탄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집다운 집을 짓겠다거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겠다는 욕망이 사라진다. 사슴처럼 나도 자연스러운 상태로 살겠다는 마음이 된다. 어딘가를 내 땅, 나의 집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진다. 내가 식물이 아니고 동물인데, 왜 뿌리를 내리려고 했을까? 낸가 사는 동안은 내가 사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고 그게 아니라면 어디로든 갈 것이다. 그러려면 아름다운 집이 짐이 된다. - page 34

 

무엇보다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어쩌면 헛된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대하는 태도도 배울 점이었습니다.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집 또한 부동산 가치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같은 가치로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 page 147 ~ 148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나 역시도 나만을 생각해 아이를 판단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기에...

아이를 바라볼 때 나와 닮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저자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나만의 월든'을 발견하고자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내 삶의 주인은 나인데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 반성 또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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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
김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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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연구자의 현실을,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분야가 기초과학임을 일깨워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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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
김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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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도 '과학'을 전공으로 연구도 하고 직업으로도 했기에(지금은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분야.

그래서 과학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곤 합니다.

심도 있는 과학 이야기에는 주저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은 '과학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끌렸습니다.

나의 예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란 막연한 기대와 함께...

 

작고 하찮아 보이는 현미경 속 생명체에서

인류를 구원할 유용함을 발견해내는 경이로움에 관하여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거야』

 

 

나 역시도 '과학'을 전공으로 하게 된 계기는 '하얀 가운'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하얀 가운에 가슴 부근엔 펜을 꽂고 실험기구 속 부글거리는 액체를 이리저리 섞으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

너무나도 멋졌기에 어릴 때 어른들이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을 때 망설임 없이 '과학자'라고 얘기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과학자에겐 이런 로망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화학을 전공한 저에게 실험실은 언제나 위험한 물질이 가득한 곳이었고 자칫하다가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그래서 항상 조심하며 실험을 해야 했고 실험의 결과는 내가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기에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정말 치열하고도 처절했었습니다.

 

역시나...

그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화를 연구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현미경 너머로 우아하게 꿈틀거리는 나의 예쁜꼬마선충들은 별 인기가 없고, 진화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이나 인기가 없다. 질병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 결과가 나온다 한들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요즘 세상에 세금으로 이런 벌레나 연구한다고 비아냥을 듣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과학자로 먹고사는 일은 적잖이 고된 일이다.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4시간을 연구실에서 일하는 게 보통인데, 그러고 있다 보면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자고 한국에서 알아주지도 않는 연구를 하느라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page 8

 

이 마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 스스로 '별수 없는 연구 노예'라고 자조하지만 실은 매우 전도유망한 젊은 과학자인 생명과학 박사 '김준' 의 본격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그가 연구하는 건 선충, 그중에서도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

 

음...

왜 예쁘다는 건지...

조금씩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됩니다.

 

작은 몸뚱이로 우아하게 꿈틀거린다고 하여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녀석들이 생물학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를 따져보면 '예쁜 꼬마'보다는 '우아한 거인'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 page 31

 

이 예쁜꼬마선충을 몰랐다면 책의 제목처럼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겼을 텐데 절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연구 가치가 있는, 당연히 연구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쁜꼬마선충 유전자의 70 ~ 80퍼센트가 사람의 유전자와 꽤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대상으로는 할 수 없는 실험을, 이 작은 선충들을 가지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인간을 연구할 수 있는 실마리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브레너 영감님이 예쁜꼬마선충을 가지고 온갖 돌연변이를 만들어보며 발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예쁜꼬마선충은 인간 유전체 지도가 완성된 뒤로도 인간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풀기 위한 유용한 연습 문제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 page 39

 

책을 읽으면서도 느끼지만...

우리나라의 '과학'분야에 대한 투자가... 그것도 '자연과학'분야에 대해서 너무나도 미약하다는 것을 저도 연구생 시절일 때 느꼈지만 지금까지도 그 한결같음에 씁쓸하였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 같은 인식과 경험이 부족하다. 한국에서 아직 해본 적 없는 연구에 대하여 "몇억만 씁시다!"하고 요청해봐야 "그런 연구를 할 자격이 되시나요?" "그런 연구를 할 능력은 있으신가요?" "그런 연구에 그 큰돈을 써서 뭘 얻을 수 있나요?" 요런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다.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 연구가 충분히 가능하고 돈을 쓸 가치가 있다는 게 납득이 될 텐데, 보통은 그렇지가 않으니 일단 설득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설득하는 데 몇 년을 보내고 나면, 그 사이에 다른 나라에서 먼저 좋은 연구 성과를 내버린다. 그걸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뒤늦게 "이게 되네?" 하고 연구에 투자하려고 할 때쯤이면 그 연구는 이제 가치를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경쟁이 보통 치열한 게 아니다. - page 63

 

그 무엇보다 그의 이야기 중에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연구들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다. 하지만 연구비가 만만찮은 주제들이라 한국에서는 참 보기가 어렵다. 논문 한 편에 몇 억은 써야 하는 일이니 "그럴 돈 있으면 암이나 연구해!" 소리 듣기 딱 좋지 않겠어?

하지만 인생도 그렇듯 해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치류 연구들은 짧게 보면 다른 의생명 연구와는 결이 너무나 다르고 상업성이 훨씬 떨어져 보인다. 그렇지만 이처럼 비록 지금은 쓸모없다고 손가락질 받는 것들이 어쩌면 지식의 한계를 부술 결정적인 연구가 될 수도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그토록 애타게 찾던 정답은 아마도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저 너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age 113

 

그 무엇도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은 오히려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학'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대학교 들어갈 땐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점점 세상으로 나오게 될 때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이 현실.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우선 우리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라 여겨집니다.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그 질문에서 얻은 답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질문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특히 생물학은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생물이라는 자연 현상을 탐구한다. 산과 들에서 느껴봤을 그 웅장한 자연은 물론이거니와 식탁에 놓여 있는 다양한 식재료까지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생물학은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바꿔내고 있다. 일단 한번 경험해보면 누구든 그 즐거움을 느끼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 page 209 ~ 210

 

한때는 화학에 빠져 살았던 그때를 기억하며, 다시 과학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이번 주말엔 아이들을 데리고 주변 산이 가서 자연을 몸소 느끼게 해 주어야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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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 영화로 보는 인문학 여행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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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꼭 내 마음을 후벼파는 명대사들이 있곤 합니다.

소설 속 명문장이 있듯이...

그런 명대사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기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명작 영화 속 명언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통찰하는 힐링 인문학 여행서이다

 

『스크린의 기억, 시네마명언 1000』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몇 백 년이 지난 고전 소설이 여전히 읽히듯,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는 만들어진 시기와 상관없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가 역사, 철학, 문학을 다룬 인문학 도서 못지않게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감상자의 통찰력을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얻은 감동과 통찰들은 수만 권의 독서를 통해 쌓은 세상에 대한 지식에 비기는 수준입니다. 저의 주변의 뛰어난 삶의 통찰과 감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독서광 못지않게 영화광인 사람이 많습니다. - page 4 ~ 5

 

돌이켜보니 영화도 '고전'처럼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작품들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시네마 천국>이라든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작품이 저와 함께 인생을 거닐며 위안을 받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게 되는 영화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주옥같은 대사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감동과 통찰을 줄 수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임을 일러주었습니다.

 

200편의 영화.

그리고 1000개의 문장.

접해보지 않았던 영화도 있었지만 그 속에 담겨있던 대사만으로도 그 영화의 진가를 엿볼 수 있었고 보아야 할 영화 목록이 추가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미 접했던 영화를 만났을 땐 대사를 통해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더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무한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제가 좋아하는,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죽은 시인의 사회>가 첫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영화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이 대사.

 

카르페 디엠. 매 순간 즐기며 살아라. 너희만의 특별한 삶을 살아라.

Carpe Diem. Seize the day.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우리의 '키팅 선생님'의 학생들에게 전해주고팠던 '참된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또다시 그가 그리워졌습니다.

오늘 밤에 다시 이 영화를 꺼내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또 반가웠던 <라라랜드> 영화의 명대사도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인 라라랜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저에게도 울림을 주었기에 이 대사가, 이때의 장면이 고스란히 떠올라 잠시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리곤 하였습니다.

 

200편의 영화 중 우리의 영화도 간간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올드보이>,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던 <기생충>.

​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가감 없이 드러낸 이 작품은 솔직히 처음 접했을 땐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보면서 조금씩 이해하곤 하였는데...

다시 대사를 접하고 보니 이제는 머리로 이해했던 것이 가슴으로 와닿았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소개된 영화 중 봤던 영화도 있었는데 '어? 이런 대사가 있었나?'할 때도 많았습니다.

신경 쓰지 않고 무심코 지나쳤던 거겠지요...

그래서 이 책이 참으로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진정 영화의 의미를, 그리고 나아가 우리에게 깊은 사색과 통찰에 잠기게 해 주었기에 단순히 한 번만 읽고 덮을 책은 아니었습니다.

책 속에 소개된 영화를 찾아 보면서, 명대사를 찾아가면서, 나만의 영화 감상문 겸 인생책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의 생활이 많아진 요즘.

영화와 함께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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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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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라는 주제만 보면 무조건적으로 '읽어야겠다!'란 마음이 드는 난...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여느 책과 달리 이 책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예술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그려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반 고흐'와 '폴 고갱'의 관계.

서로의 작품을 인정하고 격려하지만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린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위까지 벌이게 되는데...

이런 참극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니 그 후로도 그들이 그렸던 작품들에 영향을 주며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남아있기에 서로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도 해 줍니다.

 

이 책 속에서는 여덟 명의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누구와 누구의 '관계'가 그려질지 기대하며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여덟 명의 천재가 절망과 혼돈을 넘어

시대를 바꾼 예술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장 인간적인 미술사'

 

『관계의 미술사』

 

 

에두아르 마네와 에드가 드가,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잭슨 폴록과 윌렘 드쿠닝, 루치안 프로이트와 프랜시스 베이컨.

이 여덟 명의 예술가들이 우정과 경외, 질투와 욕망, 야망과 절망의 감정을 느끼면서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하며 읽게 되고 한 편 한 편 아껴가며 읽게 되었습니다.

​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술가들의 작품이 본문에 앞서 소개되기에 글을 읽다가 다시 앞의 도판을 찾아보게 된다는 점에서 조금은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롭기에 금방 몰입하면서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첫 문을 열어준 '마네와 드가'.

이 둘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마네에게 진실이란 파악하기 힘들고 복합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사회적 상호작용, 유희, 위트로 이루어진 피상적 놀이를 즐겼다. 자기 그림의 모델에게 늘 화려한 의상을 입혔고, 개개인의 정체성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다양한 가면 아래 감추고 있는 것을 본질적으로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드가의 경향-서둘러 자신의 특징적인 인장으로 삼고자 이제 막 강화해가기 시작했던-은 그와 정반대였다. 드가는 축제의 베일을 걷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진실을 꿰뚫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빛아래로 드러나게 마련인 숨은 진실을 집요하게 의식하며 다녔다. 만약 마네가 이것으로 위협을 느낀다면, 그건 틀림없이 그가 의도적으로 어두운 곳에 꽁꽁 감추어둔 것들이 사적인 삶 속에 너무 많기 때문일 터였다. -  page 80 ~ 81

 

그렇기에 드가가 그린 <에두아르 마네와 그의 아내>란 작품에 마네는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랐습니다.

'앙리 마티스'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이 둘이 경쟁자가 되기까지...

하지만 이 둘의 모습은 서로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져 있었기에 그토록 멋진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마티스가 기꺼이, 아니 어쩌면 간절했다고 할 정도로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했다는 점이다. 그는 피카소를 단 한 번도 혹평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뒤로 숨거나 피카소의 영향력을 차단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그는 입체주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다른 길을 걸어갔다. 마찬가지로 피카소 역시 마티스로부터 무엇이든 기꺼이 배우려 했다.

굴복하고, 방향을 틀고, 극복하고, 다시 더 굴복하는 이 유명한 패턴은 마치 두 예술가가 예술이라는 무대에서 일련의 교묘한 책략을 펼치며 무술 대결을 벌이는 모습처럼도 보인다. 이 패턴은 1954년 마티스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었다. 이들의 관계는 수많은 책과 주요 전시회에서 다루어졌다. 학자들은 이들의 회화와 소묘, 조각을 한 점 한 점 연구해 영향력과 도전, 오마주와 저항으로 이어진 패턴을 추적해냈다. 어느 때는 피카소가 마티스를 더 눈여겨보았고, 또 어느 때는 마티스가 피카소를 주목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상대를 머리에서 완전히 지운 적은 없었다. - page 217 ~ 218

 

이번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폴록과 드쿠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닮은 듯 다른 이 둘의 작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폴록과 드쿠닝은 평론가들 및 당대 사람들이 이미 규정한 자신들의 역할, 즉 개척자, 선도자, 그리고 라이벌이라는 불가피한 역할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서로를 경계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을지 몰라도 그들은 이내 털털하게 지내며 동지애와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했다. - page 282

 

그래서 폴록의 사후 드쿠닝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애잔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폴록의 사후 드쿠닝은 화가로서 일관되게 대담한 진전을 이루거나 당대의 유행과 분위기를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표현적이며 의욕에 찬 작풍을 선보이지 못했다. 또 불행히도 그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과도한 음주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물론 폴락의 사후가 아닌 생전에도 두 사람 사이엔 무언가가 있었다. 드쿠닝은 폴록에 대해 너무나 많은 부채의식을 가졌고, 동시에 동경심과 경쟁심에서 헤어나지 못했기에 단 한 순간도 폴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폴록을 향한 드쿠닝의 감정은 대체로 애증에 찬 복합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는 폴록에 의해 규정되거나 폴록이 관여한 삶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클리그먼과 연인이 되었던 사실이나 1963년 폴록이 잠들어 있는 스프링스 묘지의 맞은편 집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저세상으로 간 친구이자 라이벌과의 연결고리를 잃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page 326 ~ 327

 

결국 여덟 명의 모습은 많이도 닮아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경쟁하고, 그래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나아가는 개척자이자 선도자가 된 그들.

이렇게 서로가 win-win할 수 있는 상대가 있음으로써 좋은 synergy를 만든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서 다시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쌍을 이루는 두 예술가들이 가진 서로 다른 두 기질, 두 종류의 매력은 상대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또한 그 시기는 양쪽 모두가 주요 창작적 돌파구의 정점에 있었고, 각자 대단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자신만의 특징적 스타일은 아직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때였다. 진실이든 아름다움이든 단 하나의 개념만이 우위를 차지하는 일은 없었으며,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그런 다음 각각의 관계는 익숙한 하나의 역학 관계에 놓인다. 한 사람이 예술적 또는 사회적 면에서 부러울 정도로 뛰어난 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관계 말이다. 한 사람이 기꺼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식이라면 다른 한 사람은 신중함이 지나치거나 이런저런 완벽주의가 뒤섞여서, 혹은 근성이 있거나 심리적으로 가로막히면서 뒤처지는 식이었다. 이렇게 능숙하고 대담한 동료와 마주하면서 다른 한 사람은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것들로부터 해방된다. 가능성의 틈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창작뿐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획득하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 page 27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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