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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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시리즈인지 모르고 제목에 끌렸던 이 책.

알고 보니 『1913년 세기의 여름』으로 전 세계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은 '플로리안 일리스'의 11년 만의 후속작이라 하였습니다.

전작이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의 시작점"인 1913년으로 되돌아가 모더니즘의 찬란한 태동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면, 이번 신작에선 세계사적으로 가장 불행했던 시기라고 할 말한 제1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세계때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니...

암울했던 시기.

하지만 그 속의 '사랑'을...

왠지 모르게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데...

과연 이 느낌이 맞을지 책장을 펼쳐봅니다.

증오와 몰락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불꽃같은 사랑의 파노라마

사르트르, 보부아르,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피카소, 달리, 비트겐슈타인...

어두운 현실에 예민하게 맞선 예술가들의 사랑과 배신, 환희와 공포의 스펙터클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뉴욕 증시 폭락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대공황과 더불어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가 부상하고 불안과 증오가 악순환을 이루며 파국으로 치닫던 시대.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끔찍했던 전쟁을 겪은 직후이기에 그 누구도 과거를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시대.

1929년부터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까지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주요 인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랑 이야기를.

그렇다면 왜 '사랑' 이야기였을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등장인물이 엄청 많았고 그만큼 저마다의 사랑의 모습도 다양했습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같은 소설가들부터,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오토 딕스 같은 화가,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아인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영화계 인물,

요제프 괴벨스와 콘라트 아데나워와 같은 정치인 등

이들이 그린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근친애, 지고지순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 불같은 사랑, 권태로운 사랑, 육체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 계약연애 등등

이 모든 건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는 점에서 찌릿찌릿 쾌감마저 느끼며 읽었었습니다.

시작을 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

1929년 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처음 눈이 마주친 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6월 초 어느 날.

마침내 단둘이 만나기로 한 날.

그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르트르.

그에게 금발머리의 젊은 여인이 헐레벌떡 다가옵니다.

자신이 시몬의 여동생 엘렌 드 보부아르라고 하면서 언니는 아쉽게 오늘 못 온다고...

"그런데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저를 찾아냈습니까?" 엘렌이 이렇게 대답한다. "언니가 말했어요. 키가 작고, 안경을 썼고, 아주 못생겼다고." 이렇게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 page 9 ~ 10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자유연애를 선언한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 때문에 시몬 드 보부아르가 남몰래 괴로워했다는 것을.

상대성이론 창시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로맨틱함을 느꼈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여름날 같은 카푸트의 호숫가에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전보를 친다. "글로 쓰는 것은 바보 같아, 일요일에 당신에게 키스하러 갈게." 그러니까 일요일 = 키스 x 시간 인 셈이다. - page 26 ~ 27

열정적인 사랑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냉정의 시대이기도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심장은 그저 근육에 불과하다는 걸 믿으라며

낭만주의는 19세기에 있었던 문학사조일 뿐이라 덧붙였습니다.

전쟁의 트라우마와 얼음과 어둠에 대한 공포는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객관적 실재를 중시했던 신즉물주의로 기술 지상주의, 기계 숭배, 물질 만능주의와 자기 소외를 낳게 되는데

광고 포스터의 압도적인 언어가 떠오르게 하는 에나멜처럼 매끈한 차가운 피부와 이탈리아 마니에리스모 양식처럼 깡마르고 뒤틀린 육체를 그린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들이,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들이,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관능적인 롤라가 되어 성실한 남자를 파멸시키는 연기처럼,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소설처럼

말입니다.

인류사에서 최악의 집단학살자로 꼽히는 '이오시프 스탈린'.

불륜 때문이든, 형태 때문이든, 아니면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을 굶어죽게 한 것 때문이든 아내 나데즈다가 격분하면 욕실에서 바리케이드를 쳤다는 그.

황금기라고 하는 1920년대를 지나면서 나데즈다가 끊임없는 하복부 통증에, 극심한 편두통에,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상태로 약을 처방해 진정시키려고 해봤지만 정반대 결과를 낳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온갖 분노의 폭발과 드라마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두 사람은 거듭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둘 다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한 냉정함을 지녔고, 마음속에 격정이 넘치는 두 사람이 부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행복하게 지내기에는 두 사람이 서로 너무 비슷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탈린이 잔혹해질 수 있고 또 실제로 잔혹해지는 곳에서 나데즈다는 우울증의 암흑 속에 빠진다. - page 221

남편이 부정한 일을 저지를 때마다 거침없이 지적하다가 크렘린궁에 벌어진 공산혁명 15주년을 기념한 연회에서 크게 부딪치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권총으로 자살하게 되는데

"아내는 나를 적으로 남긴 채 떠나갔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엄마를 잊었지만, 나는 평생 잊지 않았다."

아내의 자살로 느낀 굴욕감은 그에게 남아 있던 인류에 대한 마지막 믿음을 파괴하게 되었고 1932년 11월 9일부터 제거해야 할 반역자를 찾는데 열을 올리게 되었다고 하니 참...

사랑이 광기로 남았던 스탈린.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민낯을 볼 수 있었던 이 책.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그들의 예술 작품이 특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와 영혼과 예술가...

100년 흐른 지금.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무기력해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그 해답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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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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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 시대를 지나 지금의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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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아르테 오리지널 30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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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로 급부상한 'B.A. 패리스'.

올여름 무더위를 강타할 압도적 서스펜스 작품이자 심리 스릴러의 여왕 B.A. 패리스 대표작인 이번 작품은

『브레이크 다운』의 리커버 에디션

으로 영화 개봉에 맞춰 영화와 동일한 제목으로 바꿔 유명 일러스트 작가 KUSH의 아트워크로 소설 속 중요 사건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 디자인으로 새롭게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만의 그릴 수 있는 심리 스릴러.

그 짜릿함을 저도 영화를 보기 전 만끽하고자 읽어봅니다.

"그날 밤 차 안의 그 여자,

그때는 살아 있었을지도 몰라."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할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결국 자기 자신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 심리 스릴러

블랙워터 레인



7월 17일 금요일

여름방학을 앞두고 모두 작별 인사를 하는데 천둥이 시작된다. 우렛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바람에 코니가 펄쩍 뛰자 존이 웃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든다.

"얼른 가야겠네!" 존이 외친다. - page 9

주변 공기가 눅눅한 게 폭우가 곧 쏟아질 듯 상황 속 '캐시'는 집으로 향하고자 합니다.

"당연히 난 무사히 돌아갈 거야. 겨우 40분 거리인데. 블랙워터 길로 숲을 통과하면 더 빨리 갈 수도 있고."

"절대 안 돼!"

...

"캐시. 그쪽 길로 오지 않겠다고 약속해. 밤에 혼자 숲길을 운전하는 건 위험해. 게다가 폭풍이 오고 있다고." - page 10

남편 '매튜'의 당부....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대로로 빠져나오자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폭우가 되어 고속 차선의 차들이 일제히 속도를 줄이고 더욱 많은 번개가 하늘을 수놓자 그녀가 사는 작은 마을인 눅스코너의 표지판이 불쑥 나타납니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가 전조등을 받고 반짝 하고 너무 유혹적으로 빛나, 지나치기 직전에 핸들을 확 꺾어 도로를 빠져나갑니다.

매튜가 가지 말라고 한 지름길로...

그런데 저 앞에 자동차 불빛이 보입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좁은 갓길에 비딱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

왜 비상등을 켜지 않았느냐고 고함이라도 치려는데 여자가 돌아봅니다.

혹시나 차가 고장 났나 싶어 앞쪽 길가에 멈춘 캐시.

악천후에 쉽사리 차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백미러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최대한 천천히 차를 출발해 집에 도착합니다.

신고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잠들어버린 캐시.

다음 날 아침.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됐어."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로 낮은 목소리다. "조금 전에 뉴스에서 들었어."

"세상에." 나는 침대 옆 탁자에 잔을 놓는다. "여기서 가까운 곳이라니 정확히 어디야? 브로버리?"

매튜가 부드럽게 내 이마를 쓸어 올린다. "아니, 더 가까운 곳이야. 여기랑 캐슬웰스 사이 숲속 도로에서."

"어떤 도로?"

"블랙워터 길." - page 16 ~ 17

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그리고 그 여자가 몇 주 전에 같이 점심을 먹으며 친해진 '제인 월터스'였다는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게다가 그 사건 이후 말 없는 전화가 매일같이 걸려오자 정신이 피폐해지면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고, 점차 자신의 판단조차 믿을 수 없어지게 된 캐시.

곁을 지켜주던 남편과 친구마저 서서히 지쳐가고 결국 약에 의존해 하루 종일 잠들기를 선택하며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을 발견하게 되는데...

"만일 살인자가 정말 당신이 경찰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왜 당신을 살려두겠어요? 그냥 죽이지 않고? 벌써 한 번 살인을 한 자인데 다시 못하겠어요?"

"하지만 그 전화가 살인자한테서 온 게 아니라면...... 누가 건다는 거예요?"나는 어리둥절해서 묻는다.

...

"이런 말까지 듣고 싶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클 겁니다."

나는 공포에 질려 알렉스를 노려본다. "제가 아는 사람요?" - page 199 ~ 200

정말 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살인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캐시는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긴박함 속에 짜릿한 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신체적, 물리적 폭력은 단 한 장면도 없이, 정신적, 심리적 폭력만으로 극한의 긴장과 공포를 그려낸 '가스라이팅 스릴러'.

너무나 짜릿했습니다.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자주 접하게 된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매우 밀접한 관계.

피해자가 실수를 반복하며 자신감을 잃게 되고 사실이 아닌 일도 일어났다고 거짓말을 하며 기억을 왜곡시키며 이로 인해 피해자는 자신을 불신한 채 왜곡된 기억을 믿기 시작하는...

그 어떤 범죄보다도 더 잔인하였습니다.

역시나 범죄 목적은 '돈'이었습니다.

그놈의 돈이 뭐라고...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경제력만이 살아갈 수 있는 이 시대를 탓해야 하는 건지...

씁쓸하기만 하였습니다.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페이지

잔인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서스펜스

자신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은 모든 것에 대한 캐시의 통쾌한 반격

한치도 예측하기 어려운 압도적 반전

이 모든 매력을 지닌 이 소설.

올여름 함께 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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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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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토리텔러이자 엔터테인먼트 작가인 '이케이도 준'.

"등장인물의 수만큼 인생이 있고, 인간의 삶을 써가는 것이 자신의 문학"

이라 말하는 그.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진한 감동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소설은 이케이도 준의 출발점에 놓여 있는 작품이지만, 주인공이 살인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추리소설인 동시에 은행을 배경으로 한 기업소설로서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은행 미스터리의 탄생을 선언하는 작품"

이라며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당시 한 심사위원의 평가처럼 또다시 그의 진면모를 느껴보고자 합니다.

대형은행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 사건,

과연 그 범인은......?

치밀하면서도 스피디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걸작!

없는



철문을 열자 7월 초순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발밑으로 밀려들었다. 장마철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가라앉았고, 요새는 비가 오다가 말다가 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오전 10시. 나는 대출 고객을 방문하기 위해 은행 건물 뒷문을 나와서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 page 9

대형 은행에서 융자 담당으로 일하는 평범한 직원 '이기 하루카'.

외근을 나가던 중 낯익은 통통한 뒷모습이 걷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카모토!"

"뭐야, 이기였어?"

평소 같으면 튀어나왔을 농담 한마디 없는 사카모토.

"있잖아, 이기."

걸으면서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갑자기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들여다보았다.

"너 나한테 빚진 거다?" - page 11

묘한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는데 몇 시간 후 시체로 발견됩니다.

사인은 알레르기로 인한 쇼크사.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 사카모토가 고객의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용도를 생각한들 뭐가 돼. 어디 은행에나 부정은 있지만 훔친 돈을 교육비에 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도박, 여자, 세상에는 마음만 먹으면 3천만 엔쯤 쓸 방법은 얼마든지 있거든. 하룻밤에라도 쓸 수 있지."

"사카모토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 page 46

사카모토의 업무를 인계받은 이기.

직장동료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경찰은 사카모토의 사망원인을 알려주는데...

"사카모토 씨의 검시 결과가 나왔거든요. 벌 알레르기였던 모양입니다."

...

"아마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벌이 덮쳤나 봅니다. 몇 마리나 됐던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몇 군데 쏘인 자국이 있었습니다. 딱하게도 말이죠." - page 102 ~ 103

벌.

빚.

남자...

확실히 사고가 아니라고 하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타살. 살인. 그것도 계획적인...

하지만 왜?

의문을 품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이기는 상상도 하지 못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은행과 기업이 얽힌 음모

은행 안의 복잡한 파벌 싸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의도 불사하는 비열한 상사

상상 이상으로 잔혹한 범죄자와의 만남 등

치밀하면서도 스피디하게 사건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한자와 나오키』가 떠올랐습니다.

아무래도 '은행'이라는 점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저에겐 이케이도 준 작가와의 첫만남이 『한자와 나오키』였는데 그때 너무 인상적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고 할까...

사망 사인이 뜬금없었달까,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임팩트가 좀 약했다고 할까...

초기작이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이 소설의 묘미는 흡입력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 이케이도 준이 일본 대형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실감 났었고 빠른 전개가 독자들이 한시도 한눈을 팔 수 없게끔 만들었었습니다.

사건을 파헤치고 다니는 이기.

"너 그런 짓하다가는 언젠가 은행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

"그럴지도 모르죠."

"회사는 너 같은 놈이 제일 다루기 힘들어. 출세에 혈안이 된 놈들이랑은 다르고, 그렇다고 해서 안온하게 월급쟁이 생활을 계속하는 것도 아니고, 조직에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앉는다는 비애도 없고. 요컨대 너한테는 지킬 게 없어. 그러니까 조직 입장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 보이지. 목적이 뭐야?"

"이번 경우는 지키기 위해서네요."

"지켜? 출세를?"

"설마요. 더 중요한 겁니다." - page 187 ~ 188

은행원으로서의 후각... 서글픈 습성...

그래서 더 지키고자 했던...

형태도 없고 개념도 없는 것. 있는 것은 단지 추한 사념뿐이다. 그야말로 암거다. 영혼의 심연, 끝없이 깊은 암담함. 그것은 단지 가치관 같은 척도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으며 계기조차 알 수 없는 광기. 이 이상 이놈을 살려둘 수는 없다. 사카모토를 위해. 사에를 위해. 요코를 위해. 나오를 위해. 야나기바를 위해. 후루카와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 page 312

하지만 너무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

"틀렸어, ○○○○. 우리 은행원들이 과거에 눈을 돌리는 건 거기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야. 너한테 만일 미래를 만들 능력이 있다면 이 현실은 뭔데? 이 상황을 만든 건 과거의 네 자신이잖아. 망상이야, ○○○○. 너는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을 뿐이라고. 네가 가지고 있는 건 미래를 창조하는 비전이 아니야. 그냥 망상에 지나지 않아." - page 368

출세와 성공을 위한 인간의 욕망의 바닥끝 칼날이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된 사실.

익히 잘 알기에 더없이 씁쓸함이 남았던 이야기...

이케이도 준 작가로서의 시작을 장식했던 이 소설.

지금의 행보도 함께했지만 앞으로도 또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정의'를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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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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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 과학 커뮤니케이션 교수이자 우리에겐

『오리진』 『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

으로 만난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스 다트넬'.

첫 번째 『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에서는 '지식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를,

두 번째 『오리진』에서는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를

질문하여 종으로서 우리 존재를 다층적으로 파헤쳐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책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은 어떻게 문명을, 세계사를 형성했는가'를 질문하면서 '인간 삼부작'을 완성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가디언」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천재 과학자 루이스 다트넬이 들려주는

인간의 결함 있는 진화,

그리고 결함이 만들어낸 역사와 문명의 모든 것

인간이 되다



사람은 지능이 매우 뛰어나고 유능한 유인원 종입니다.

힘과 재주가 있고, 본능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우리는 도구와 기술을 발명했고 수많은 형태의 언어로 물리적 지시에서 추상 개념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전달할 수 있으며 그 덕분에 팀과 공동체,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큰 결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목의 후두가 위로 올라가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소리를 좀 더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목의 구조가 변하는 바람에 음식물이 기관으로 넘어가 기관을 틀어막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고

직립 보행을 하도록 진화했지만, 이 자세는 무릎에 큰 부담을 주며 대다수 사람들이 나중에 요통으로 고생하게 합니다.

또한 생화학 물질과 DNA에도 많은 결함이 있으며 그 결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났는데, 예컨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얻으려면 나머지 동물들보다 훨씬 다양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고

우리 뇌는 완벽한 합리적 사고 기계와는 거리가 멀고, 인지 결함과 버그가 넘쳐나는 등.

이러한 모순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모든 능력과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즉, 우리의 결함과 능력은 모두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진행되었다. - page 14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이었습니다.

저자는 이처럼 독특하고 변덕스럽고 연약한 인간 본성이라는 렌즈로 관찰한 우리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이 인간의 관계, 사회, 경쟁을 어떻게 야기하고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진보에 계속 도전이 되고 또한 진보를 정의하는지를 탐구하였습니다.

인간의 진화에서 일어난 한 가지 중요한 발전은 독재자의 출현을 견제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남성들의 동맹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사회구조에서 이러한 전환을 촉발한 주요 요인이 두 가지 있다고 하였는데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 능력을 제공한 '언어'와

그런 공격을 시작할 때, 돌이나 창 같은 투사 '무기'로 특정 개인은 신체적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결정적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성급한 반응성 공격성을 감소시키는 선택 압력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반응성 공격성에 대한 집단 처벌은 진화적으로 그것을 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길들였다. - page 29

또한 우리는 복잡하면서도 대체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문명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계획을 위해 유례없는 수준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사회성 소프트웨어가 뇌에서 발전하게 됩니다.

호의를 되갚을 확률이 현저히 낮은데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사람이 왜 당신을 도우려 하겠는가?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해결책을 제공한 것은 바로 우정의 진화였다. 옥시토신이 매개한 친구들 사이의 유대 덕분에 각자에게 상대방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만약 친구가 심각한 병에 걸리면, 우리는 상호 이타성을 발휘할 다른 사람을 찾으라면서 친구를 냉담하게 방치하는 대신에 친구의 안녕에 감정적 관심을 갖고서 친구의 회복에 도움을 준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이런 식으로 우정은 인류의 진화에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으로 발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 page 42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약 1만 년 전에 세계 여러 곳에서 각자 독립적으로 농업이 발명된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서 최악의 실수였다고 이야기돼왔다. - page 151

라는 점이었습니다.

인류가 영구 정착지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면서 잉여 식량이 생산되고 여성의 생식 능력이 높아지면서 인구 성장에 도움이 되었지만

수렵채집 생활에서 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으로 전환하자, 식품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영양 결핍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되고

사람들은 필요한 칼로리를 생산하느라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했으며

악성 유행병-로마 제국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안토니누스 역병과 키프리아누스 역병, 페스트균의 최초의 형태인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을 비롯해 흑사병, 천연두, 홍역, 말라리아와 황열병, 1918년 독감 팬데믹(일명 '스페인 독감') 등-을 창궐했고 그로 인해 전쟁까지 발발했다는 점

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

연산, 패턴 인식, 연역 추리, 계산, 정보 저장과 검색 등 어떤 컴퓨터 시스템이나 인공 지능보다 월등하지만 인지 소프트웨어에는 수많은 편향이 깊게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논리적인 뇌의 작동 방식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탈선을 '인지 편향'이라 부르는데 이로 인해 비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이라크 침공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고, 정치적 양극화를 겪고, 분열되는데...

여기서 북아일랜드의 성금요일 협정의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금요일 협정의 핵심은 연합파와 민족주의자 모두 그 협정을 준군사 조직 간의 휴전 이후로 유지돼온 안전과 상당한 경제적 발전 가능성의 상실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로 여겼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양측 지도자들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합의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

성금요일 협정은 의도적으로 북아일랜드의 미래 문제(영국의 일부로 남을 것인지 아일랜드 공화국과 합쳐질 것인지)를 다루지 않아 쌍방 모두 협정을 지지할 수 있었고, 만약 협정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에 잃게 될 것이 무엇인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 page 382

책은 우리의 여러 가지 생물학적 측면(타고난 우리의 인간성)이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생물학의 고유한 요소들은 사회와 문명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반대로도 인류의 문화적 혁신은 우리의 유전자 구성에 흔적을 남기며 더 잘 적응하도록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저자는 우리에게 남긴 이 메시지가 앞으로 만들어질 역사에 대한 숙제로 남겨두었습니다.

아직도 기후 변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대다수 사람들은 대중 매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데, 대중 매체들은 갈수록 이념적 성향이 양극화되고 있다.

확증 편향은 상황의 심각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신념을 더 강화시킨다. 우리는 기후 변화처럼 멀고 점진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데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인지 편향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지 편향은 우리의 생물학과 우리가 진화해온 과거의 많은 측면과 함께 인류의 역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 미래에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 page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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