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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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된 에세이라 선뜻 짚었습니다.

전작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읽으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힘을 얻고 살아갈 이유를 깨닫곤 하였었는데...

이번엔 작가님이 어떤 이야기로 어떤 울림을 선사해 주실지 기대되었습니다.

책을 덮고 난 뒤...

제 삶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어느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앞날이 두려운 사람이,

상실감에 젖어 있는 사람이,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문장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하고

문장을 붉은 실 삼아 가슴의 상처를 꿰매려고 할 때,

문장을 유일한 친구 삼아 스스로 다짐을 할 때,


문장은 내 이야기가 된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이 책은 저자가 책을 통해 변신하게 된 순간들의 기록이자 그가 사랑하는 작가들에 대한 헌사였습니다.

바베트의 만찬』에서 천재 요리사의 손을 들여다보면서 자유와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순간을

모비 딕』을 다시 읽으면서 감탄할 줄 아는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 순간을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을 읽으면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어떻게 현실을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지 깨달은 순간을

칼비노의 작품을 읽고 현실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 순간을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려고 『호라이즌』을 쓴 베리 로페즈를 따라 "서로를 위한 이야기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을...

책을 덮고 난 뒤 삶 속으로 문장들을 불러와 '나'를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 의미를 또다시 일러주었던 정혜윤 작가.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희망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 page 179 ~ 180


무엇보다 이 책이 더 의미가 있었던 건 제목처럼 '삶'에 더 의미를 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곤 또다시 전작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의 연장선과도 같이 느껴졌었는데...

결국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따스한 안부를 주고 힘을 주었으며

그 모습으로 세상에 참여하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그렇기에 책을 읽고 자신을 대면하고 돌아보고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뜻깊은 일로 여기고 삶과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읽을 땐 방대한 양에, 특히나 고래학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당황하게 되었었는데...


생명이 신비롭다는 생각이 어찌나 강력하게 가슴에 박혔던지 나는 이제 얼핏 본 낯선 사람의 피로에 절은 등판, 축 늘어진 어깨, 실망에 익숙해져가는 얼굴, 문 닫힌 가게, 언제나 약간씩 잘못되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슬픈 자매애를 느낀다. 나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삶을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히 '누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 page 56


나는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사랑하는 것을 지키면서 힘을 내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한 가지를 더 배우고 있다. 워즈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학생이다. 사랑에 빠지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기 속에 있게 되고 이 사랑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나로 이 일이었다. 나는 이제 고래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 page 57


다시 고래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저자를 통해 알게 된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는 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부분을 '존재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 마음이 운명과 관계를 맺게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나를 변하게 할 힘이 있다.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나는 슬픈 사람의 아름다운 자아를 사랑한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page 90 ~ 91


슬픔.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시몬 베유의 표현을 빌리면 "햇빛처럼 모든 사람에게 관여"하는 슬픔).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슬픔, 아름다움, 운명, 이 셋이 본질적으로 삶에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야기에 아름다움을 집어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다 찾아야 하고 붙잡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다 붙잡아야 한다. 나는 슬픔에 아름다움이 섞여 개개인의 운명이 만들어지는 것을 커다란 애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많은 날, 많은 순간 마음이 짠하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 생각난다. "펜을 바다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그런 펜으로밖에 쓸 수 없다. 나에게도 이 한 번뿐인 삶에서 나를 실현할 방법은 '그러나 아름다운'뿐이다. - page 100 ~ 101


그러나 아름답다는 말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게 울리고 또 울렸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선뜻 책을 덮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해서...

덮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우선 책 속에 소개되었던 책들을 하나둘 찾아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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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유해성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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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맞추는 쾌감보다는 그 과정에서 오는 찌릿, 아니 묵직함을... 그동안의 미스터리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일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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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흐르는 Dear 그림책
변영근 지음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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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동안은 활자 중독처럼 글자를 좇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몸이 아프게 되면서 잠시 쉼이 필요했었습니다.

글자보다는 잔잔하지만 울림을 선사해 줄 무언가를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섬세한 수채 그림이...

저 푸르른색들이...

마냥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과연 저 청년은 무엇을 찾아가는 것일까...

그 여정에 저도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낮게 흐르는 물처럼

나를 발견하는 여행


낮게 흐르는

소규모 투어로 도착한 어느 숲의 유명한 폭포.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청년도 몇 장의 사진을 찍곤 돌아오는데...


그러곤 혼자 폭포를 찾아 나서기 시작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결국 걷기로

자신의 속도로

잠시 멈춰 주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뜨거운 태양 하래,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에 몸을 씻은 뒤 청년은

또다시 길을 찾아떠나게 됩니다.

초록이 점점 물들면서...


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림 하나하나가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그림들마다 글이 있었다면...

이렇게 그림에 집중하며 내 안의 이야기도 꺼내어 읽을 수 있었을까...!


시끌벅적한, 빠르게만 흐르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는다는 거...

어쩌면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과부하가 걸리더라도 그저 열심히만 달리다 그만 고장이 나버린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는데...

이게 맞는 걸까......

자꾸만 책 속의 청년에 제 모습을 투영하곤 하였습니다.

결국은 잔잔히,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우리도 결국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함을.

찬찬히 되짚고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

제 눈에 띄는 곳에 이 페이지를 펼쳐 놓았습니다.

나아가는 길에

저도 저 초록에 조금씩 물들이고 싶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가 있다면 가만히 이 책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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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흐르는 Dear 그림책
변영근 지음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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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 서 이 책에 마음을 기대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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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위하여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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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또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던

'소설, 잇다' 시리즈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 지하련, 이선희근대 대표 여성 작가들의 주요 작품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변주함으로써

근대 여성 작가의 마땅한 제 위치를 찾아내고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현대 작가가 어떻게 그 궤적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김말봉 작가님이 처음이지만...

이번을 계기로 작가님을 알아가고자 합니다.

"순수 귀신을 몰아내라", 대중소설가를 선언한 김말봉

우리 문학의 독창적이고 '희귀한' 자리, 박솔뫼

다른 시간,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가

접속하고, 깊이 연루되고, 함께 걸어나가다

기도를 위하여


"선생은 무엇 때문에 소설을 쓰십니까?"

한 평론가의 질문에 거침없이

"돈 벌려고 쓰지'

하고 답했던 '김말봉'

순수소설만을 인정하던 당시 문학계에서 스스로 '대중소설가'임을 선언하고

그러면서도 흥미 본위의 통속소설에 함몰되기를 경계하고,

민족 해방과 여성 해방의 비전을 제시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위한 운동에 앞장서고

글을 통해서는 애정 문제의 기저에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기독교적 박애 정신을 담았던 그녀.

이 책에는 그녀의 대표 단편

망명녀」(1932), 고행」(1935),편지」(1937)

가 담겨있었습니다.

명월관 기생이었던 '최순애(산호주)'가 8년 전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 형제를 맺었던 '허윤숙'의 도움으로 담배·모르핀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쉽사리 되지 않고 오히려 윤숙의 애인 윤정섭으로부터 반동분자, 소비에트, 남녀 기회 균등 등 사회운동에 동경을 갖게 되고 점차 '동지'로서, 또 '사람'으로서 인정받으며 나라에 목숨을 바치기로 한 「망명녀

기생이던 '미자'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남편)'와 미자를 딱한 사연이 있는 친구의 누이동생으로 알고 있는 '아내'

아내와의 나들이를 취소하고 미자와 불륜을 하던 중 아내도 미자의 집에 심심하다며 찾아오고 알몸으로 벽장에 숨은 그가 수치와 죄책감을 느끼며 결국 아내에 의해 고행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았던 「고행

남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은희'

'인순'이라는 이름으로 한 통의 편지가 오면서 은희는 편지를 보내온 여자의 얼굴을 상상하며 회한과 질투에 휩싸였다가 며칠 뒤 마주하게 된 인순은 여자가 아닌 어린 남학생으로, 남편이 가난한 학생을 후원했다는 사실에 자신이 얼마나 천박한가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편지

너무나도 쉽게 읽혔던 작품들.

하지만 인간의 애욕 문제와 동시에 사회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마냥 쉽다고만 여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말봉의 작품은 그 시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까지도 공감할 수 있음에,

특히나 박솔뫼 작가로 이어졌던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취지와도 너무나도 맞아떨어졌었는데...!

이 책의 제목이었던 박솔뫼 작가님의 이야기였던 「기도를 위하여」는 앞서 만났었던 죽은 최순애가 등장하게 됩니다.

윤정섭과 옥중 혼례를 치른 뒤 윤숙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몸이 쇠약해져 숨을 거두게 된 순애.

그러나 그녀의 영혼은 여전히 두 사람과 함께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순애의 기일도 가물가물했었는데...

단지 그날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날에 교회로 가 기도를 하는 윤숙

조용히 앉아 순애의 안녕과 평안을 빌었다. 그리고 이것은 산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도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가 윤숙은 생각했다. 그리고 윤숙에게 또 윤숙이 사는 세상에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기도라고 기도를 할 때만 큼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했다. - page 136 ~ 137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박솔뫼의 에세이 「늘 한 번은 지금이 되니까」로 이 둘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임을 일러주었습니다.

을지로에서 교토로, 부산으로, 동대문 흥인지문 공원으로 옮겨가면서 김말봉이 지나왔고 겪었던 것들, 또는 실제로 겪지 않았으나 겪었을지도 모를 '가능성'들을 '지금'의 시간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연말과 연초와 연휴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종종 생각했던 것은 내가 자주 가던 부산에 익숙한 그 동네에 김말봉이 오래 살았다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세 작가가 교토에서 머물렀다는 것 그중 둘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는 것. 그런 식으로 여기 누군가가 살았다는 것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한순간 강하게 의식하다가 자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야 물을 마시고 옷을 입어야 해 나가야 해 하기로 한 것을 하자 생각했다. 혹은 외출을 하고 돌아와 자 이제 씻고 무엇이든 써야 해 예외는 없어 방금 생각한 것 생각한 것이라 착각한 것을 쓰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식으로 연말과 연휴 사이 한 달을 걸친 시간이 지나갔고 2021년이 지나갔고 이걸 쓰고 있는 지금에야 2021년이 완전히 지나간 것 같다. 이제 다시 일어나서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 그럴 시간이다. - page 145 ~ 146

다른 시간,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결국 동시대에 우리에게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다시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책을 덮고 나서 작지만 묵직한 희망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그래서 이 시리즈를 더 눈여겨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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