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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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막을 걸으며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빛과 얼음의 땅 『북극을 꿈꾸다』로

세계적인 산문집 작가인

'배리 로페즈'

저도 그의 『북극을 꿈꾸다』를 읽으며 북극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읽는 내내 그곳에 있는 듯한, 그만큼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에 흠뻑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 역시도 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책의 두께감을 보니...

그럼에도 끌립니다.

사라진 것들을 불러들이는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역작.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달아나려 한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

북극에서 태평양, 갈라파고스, 아프리카, 호주, 남극까지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들로 떠났던 '여행하는 인간'

배리 로페즈가 머물렀던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의 눈부신 세계

호라이즌



평생 이런저런 결심에 이끌려 다닌 나의 인생은 이따금 느끼는 황홀과 이따금 느끼는 슬픔으로 이루어진 삶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사람의 인생과 그리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머나먼 장소들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 그리고 그 갈망에 부응하여 그토록 큰 결단력으로 행동한 것이 나에게, 그리고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여한 의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의 의도치 않게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방랑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page 34 ~ 35

파울웨더곶에서 시작된 여행은 캐나다 스크랠링링 섬, 동부 적도 아프리카의 자칼 캘프, 남극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경험한 이야기와 사유가 담겨있었습니다.

진화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끝없는 수정, 이유도 목적도 없는 변화다. 21세기에 인종적 순수성을 보호한다는 관념 혹은 생물학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다시 말해 새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침입자' 또는 '외래'의 것으로, 축출해야 할 것으로 분류하여 애초에 유입을 허용하지 않는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념은 지탱될 수 없다. 명백한 윤리적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이런 주장은 시간의 흐름을 부인한다. 풍경이 시간을 초월한다는 말은 비유적 의미만 지닐 뿐 실제로 풍경은 시간을 초월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전례 없는 문화 교류의 시대, 들어가고 나가는 이주의 시대다. 인종과 문화에 대해 수구적 적의의 태도를 견지한다면 전쟁 외에 다른 미래는 없다. 그리고 모든 풍경은, 천천히 쌓여가는 변화든 무시무시한 속도의 변화든 언제나 다른 풍경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 page 675

경이와 감사...

이 책을 읽고 난 뒤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광활하고 아름다웠던 수평선.

저 너머의 자연이, 그리고...

어떤 관점으로 보든, 우리가 더욱더 개발해 이익을 뽑아내겠다고 껍질을 벗기고, 채굴하고, 산업적으로 경작하고, 굴착하고, 오염시키고, 빨아내고, 끊임없이 조작하는 지구, 목 졸린 지구가 지금 우리의 집이다. 우리는 그 상처를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상처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중 다수는 묻는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하고. - page 120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일러주었던 로페즈의 메시지는 강한 울림과 빛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갈라파고스 제도'.

거기서도 무너진 화산의 가장자리 잔해이자 크기가 산타크루스섬의 50분의 1도 안 되는 '헤노베사섬'에서 '자연'의 모습은...

바람에 휩쓸려 간 새들의 해골은 나뭇가지 위에 불길한 징조처럼 걸려 있다. 생선을 너무 많이 먹어 멍해진 푸른얼굴얼가니새 새끼들은 아직 똑바로 설 수 있는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나무 밑 바위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얼가니새의 둥지 안에서는 더 큰 새끼를 죽인다. - page 391

자연의 법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

배부른 새끼 새들의 생명력 넘치는 삐악삐악 소리와 삶이 끝나가는 새들의 꺽꺽 소리가 공존하는 이곳 헤노베사섬에서 그 텍스트는 무엇일까? - page 392

광범위한 죽음은 생명을 더욱 빛나게 하고,

살아 있는 생물들의 원기 왕성함은 죽음의 횡포를 축소한

자연의 '약육강식'에 대해 우리의 모습도 빗대어 생각하게 했습니다.

앞서 그는 말했습니다.

누구든 이러한 무시무시한 지평선을 마주한다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쪽을 선택할 수도, 대신 아름다움에 탐닉하기로 마음먹거나 전자 기기에 주의를 빼앗긴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자아의 요새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고립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자신과 그 혼란스러운 세상 사이의 간극 속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해 거기서 그 광활함과 복잡함과 그 세상이 지닌 가능성들에 압도되어 휘청거릴 수도 있으며,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잔인함의 강도를 줄이고 삶의 모든 측면에 정의가 닿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 page 89

수백 페이지로 우리를 인도하며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던 이 책.

눈앞에 수평선이 펼쳐지면서 저도 그 너머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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