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수련 기간도 벌써 10년이 지났고, 이제 열다섯 달만 더 버티면 지겨운 레지던트 생활과 완전한 이별이었다. 나는 상급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었고,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상도 받았으며, 여러 일류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교무국장은 최근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폴, 나는 자네가 어디에 지원하든 가장 유력한 채용 후보가 될 거라고 생각하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도 곧 교수를 채용할 계획인데, 자네 같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 장담할 순 없지만 자네도 한번 생각해보게." - page 23
서른여섯 살.
드디어 원하는 삶이 손에 잡힐 것 같던 바로 그때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사건이 생겼습니다.
바로
'폐암 4기 판정'
이제 자신이 환자가 되어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렇게 마주친 죽음에 대한 그의 기록이 지적이고 유려한 언어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 page 52
'삶의 의미'에 대해 무던히도 고민하였던 그.
그래서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줄 것 같은 '신경외과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치명적인 뇌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해왔었던 폴 칼라니티.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깨닫게 된 건...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 page 161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하기 시작한 그.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거야(I can't go on. I'll go on.)"*
*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에서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 page 180
자기 자신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삶을 채워나갔습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폴 칼라니티.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 많은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데에서 의미를 발견했던 그가 우리에게 전했던 이 말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이 믿음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
당신의 숨결이 바람이 되어 저에게도 와 닿았습니다.
덕분에 삶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고 감사히 오늘을, 매일을 충실히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