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가 만나 자연스럽게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내용을 쓰다 화들짝 놀라 삭제 키를 누르거나 통째로 들어내는 일이 잦다보니 글의 흐름이 끊기고 진도가 안 나가고 슬럼프에 빠졌다. 모국어를 잃은 작가의 심정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다시 나의 모국어인 술국어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다. 그 결과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긴 했으나 밥만 먹고 나오는 장면으로 소설을 마감하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러자니 얼마나 복장이 터지고 술 얘기가 쓰고 싶었겠는가. - page 6
그렇게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다 드! 디! 어!!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들이 총 5부, 20개 장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음식 관련 산문을, 아니 술과 함께하는 안주에 대해서 말입니다.
무엇을 걱정하든 그 이상을 쓰는 게 내 목표다. 아, 다음 안주는 뭐 쓰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 page 9
'음식'이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닌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음식은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한 식구란 음식을 같이 먹는 입들이니,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국의 간이나 김치의 맛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식구만 그런 게 아니다. 친구, 선후배, 동료, 친척 등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나는 사람들을 가장 소박한 기쁨으로 결합시키는 요소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았을 때의 잔잔한 흥분과 쾌감, 서로 먹기를 권하는 몸짓을 할 때의 활기찬 연대감, 음식을 맛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무한한 희열.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과 그보다 따뜻한 공감은 상상할 수 없다. - page 170
그래서 음식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을, 쾌감에 가까운 모국어의 힘을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감되었던 <집밥의 시대>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밥은 소박하지만 맛깔난 손맛이 담긴 밥상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뭐 먹지?"
라는 잔잔한 기대가 있겠지만...
그 집 부엌칼을 쥔 사람은
"오늘 뭐 해 먹지?"
로 바뀌면서 무거운 의미가 됩니다.
그럼에도 가족의 기대감에 힘입어 집밥을 하는 나는, 아니 모든 이들은 아마도 행복한 결정자임에 오늘의 메뉴를 또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술꾼이 딱 그렇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음식 뒤에 '안주' 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 내 입맛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였다. - page 7
저도 대학생이 되면서 음식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 잔의 추억 속에 음식을 음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쌀쌀한 요즘.
오늘은 왠지 따끈한 어묵탕과 함께 소주 한 잔.
저의 모국어를 외쳐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