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3일 아침 9시 5분
체중 3.45킬로그램, 키 51센티미터, 혈액형은 A형
엉덩이엔 모래시계 모양의 몽고반점을 가진 여아
태명은 밤비였고 엄마 김은혜 씨에게서 태어나 사흘 만에 얻게 된 이름 '송재이'.
이미 말한 것 같지만 나는 죽음과 출생을 반복하고 있다. 벌써 일곱 번째다. 누군가 그게 환생이 맞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락스에 담가 얼룩 없이 싹 지우고 햇볕에 보송하게 말린 뒤 새로운 몸에 영혼을 안착시키는 낭만적인 과정은 없다. - page 8
재이에게 첫 번째 인생은 오래된 만큼 기억이 희미했습니다.
하지만 선명한 건 딱 하루, 자신이 죽던 날이었습니다.
재이 생각에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사랑하는 방법이 각자 달랐고 미워하는 게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뿐이었다. 모든 혼란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걸지 몰랐다. 모두가 재이를 사랑했고 그래서 서로를 미워하다 불행해진 것만 같았다. - page 25
재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사이좋았던 은혜 부부.
이젠 서로를 미워하게 된 이들.
그러다 재이가 죽기 직전 할머니가 알 수 없는 존재로 변신해 의문의 메시지를 남기는데...
"다시 태어날 기회는 여섯 번이야."
그렇게 허망하게 1회 차의 삶을 끝낸 재이.
그런데...
다음번 생에서 자신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안 믿으면 어떡해. 네가 만든 종말이잖아. 적어도 너는 믿어야지. 송재이, 이렇게 안심할 때가 아냐. 잘못해서 네가 또 죽기라도 하면 난 지금 이 모습으로 스물여섯 살이 된단 얘기야, 어?" - page 49
재이의 종말과 동시에 세상이 리셋 되는 것과는 달리, 축적된 시간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소영.
재이의 생과 사는 마치 이음새가 있는 동그라미였다. 이음새 구간을 지날 때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런가하면 소영의 인생은 재이라는 동그라미를 훌라후프처럼 허리에 두른 직선이었다. 세상이 박살 났다 재조립되는 동안 그녀 홀로 머나먼 어딘가를 향해 뚜벅뚜벅 늙어갔다. - page 81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게 된 재이.
어떻게든 정해진 운명의 패턴에서 벗어나 무사히 어른으로 성장하고자 노력하는데...
아무것도 제 힘으로 바꿀 수 없으니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 page 228
다회차의 생을 통과하며 재이는 종말의 조짐이 느껴질 때마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을 피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른의 무관심과 방치, 부모의 불륜, 가정불화, 학교 내 괴롭힘과 폭력, 각종 범죄와 사고의 위험 등으로 인한 종말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이 고통스러운 생을 반복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위험으로부터 재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소영과
그런 소영이 자신의 종말과 환생 때문에 죽음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힘껏 생을 버텨내려는 재이의 마음이
아주 작지만 기적과도 같은 변화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캡틴, 앞으로도 살아남아야 해.'
재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정소영이 매끄러운 티슈 한 장을 건넸다. 재이는 다시 한번 기시감을 느꼈다. 익숙한 체취를 맡은 것도 같았다. - page 251
소설 속에서의 '어른'의 모습.
우리에게 일침을 가해주었습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되짚어보아야 했습니다.
가장 약한 존재인 '소녀'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무수한 고난과 시련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우리네 빛나는 생존기였던 이 소설.
뭉클하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