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은 청상가리. 조폭은 아니다.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 키는 164cm에 몸무게는 55kg. 김두현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간혹 뒤에서 나를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놈들이 있다. - page 5
금강복집 손자인 두현.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실로 인해 그의 별명이 된 청상가리.
그런데 두현은 스스로를 '복어'라고 칭합니다.
왜...?!
겉보기에는 온순해 보이지만 입안에 니퍼 같은 이빨이 있고 내장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서였다. - page 24
사실 엄마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걸 알았을 때,
아버지가 엄마에게 내던진 말을 기사로 읽었을 때,
두현의 마음에는 복어의 독보다 더 진한 독이 맺혔습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제든 뜨끈한 복국을 내어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곁에 있었기에,
그리고 어떤 문제든 같이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준수가 있었기에
소박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쇠를 깎는 밀링을 배우며 미래를 탐색하던 두현과 준수는 인문계에서 전학 온 재경이 귀금 코리아 장귀녀 사장에게 맞서는 모습을 보며 사회로 나가게 되면 벌어질 일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현장 실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재경의 오빠 재석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끝까지 시위를 벌이는 재경.
"당신 같은 사람들이 노동자를 죽을 곳으로 몰아넣는 거야."
떨리는 재경의 목소리가 집 안 공기를 휘어잡았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용광로에 사람을 떨어뜨리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이 끼여 죽게 만드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이 콜센터 직원을 자살에 내몰리도록 내버려두고, 현장 실습생이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가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라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허락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고 떠드는 거야.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 page 107 ~ 108
그리곤 '돈이 최고라고 떠드는 이 후진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던집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현실은
흘러가는 시간을 느낄 때마다 초조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압박감은 결정을 해야만 해소될 수 있었다. 재경의 말마따나 우리는 시간 부자였지만 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에 떠밀려 간다는 점에서 세상 모두는 평등했다. - page 133 ~ 134
더없이 가혹하기만 하였습니다.
10월이 되면서 두현은 마음을 다잡지 못합니다.
엄마의 기일이 있는 달이자 감옥에 간 아버지의 출소일이 머지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현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준수와 재경을 보며, 이제 자신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면하고 무마하려 했던 비극적인 가족의 진실과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결심하게 됩니다.
이제 아버지에게 갈 차례였다.
운명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은 존재했다. 조건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았다. 조건이 자격은 아닐 것이다. 잘 살아갈 조건, 행복할 조건 같은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잘 살 자격, 행복할 자격 같은 말에는 '뭐라는 거야?' 하며 눈을 치뜰 것이다. - page 185 ~ 186
세상살이는 버겁고 회복은 더디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결심한 두현, 준수, 재경.
이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봅니다.
슬픔이, 좌절이, 원한과 분노가 삶의 힘이 되기도 한다.
영혼을 잠식했던 독이 두현의 에너지가 되었길 빈다.
그렇게 길러진 야성으로 두현은 만만치 않은
세상을 마주할 것이다. _ 문경민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기대하는 것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일터에서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두어 명은 있었으면 했다. 억지로 근무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내 몫을 확실히 할 수 있으면 했다. 이것이 나의 욕심이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더하자면 세상을 밝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page 186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이 역시도 우리에겐 희망이라는 사실이 더 안타까울 뿐이기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어른들의 몫에 대해 또다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복국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뜨끈하고 말간 국물.
시원한 미나리 향.
저도 복국을 먹으며 한껏 날아오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