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종이책을 만들어온 그 '오경철'.
그의 첫 책 『편집 후기』는 생업의 결과물로서(편집자로서)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 채 책과 출판계를 바라보았다면,
이번 두 번째 책 『아무튼, 헌책』에서는 순수한 취미로서(독자로서) '건조한 일상에 잔잔하나 활력을 불어넣는 책 수집'의 즐거움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태준, 정지용, 박태준 등 전근대의 진귀한 고서들에 관한 비화부터 김현과 오규원, 김종삼과 최승자, 김화영과 장정일 같은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숨은 이야기까지.
헌책과 헌책방에서 발굴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하였습니다.
물건과 그 역사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얽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많은 감정과 희망을 보존하며, 미혹마저도 기꺼이 보존하려 든다. 책의 힘은 아주 강력하고도 미묘하다. 책은 그냥 물건이 아니다. 수많은 인생, 수많은 시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목소리를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물건 그 자체로도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지만, 내용으로 더욱 강력하게 표출되는 목소리 말이다. 책은 다른 시대의 유물인 동시에 전성기의 매력을 영원히 유지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물건으로서 책으로서, 자기가 태어난 시대에도, 새로 만나는 독자의 시대에도, 변함없이, 끊임없이.
* 필리프 블롬, 앞의 책, 241쪽
요즘은 헌책방은 많이 사라지고 대형서점에서 관리하는 '중고서점'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중고서점이 익숙한지라 오랜 책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종이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내가 찾으려는 책은 언제든 검색해서 구할 수 있는데...
그에 비해 헌책방의 매력은 내가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새로운 책의 존재를 발견하고 도움이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책을 잔뜩 사게 되는 마력을 지닌 곳.
그뿐이랴.
오랜 책들에서 뭉근히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가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낭만이 있는 헌책방...
그리고 그 속에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헌책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아직도 안 가본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나는 가끔 헌책방이야말로 책의 우주 같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곳은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이기도 하다고. - page 198
무엇보다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책은 금세 잊힌다. 오래된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책조차 잠시 기억해둘 틈도 주지 않은 채 금세 잊히고 만다. 그리고 잊힌 책들은 흩어진다. 우리가 잘 알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장소들로. 어딘가에 정착한 책들은 곧 수면에 빠진다. 그것은 죽음과 비슷한 잠이다.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데 때로는 안타깝게도 아예 깨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
많은 책들이 그 내재적 가치를 잃고 그저 재생을 위한 종이 뭉치로 전락하여 고유의 형태를 잃어버릴 때까지 이러한 숙명을 감내한다. - page 163 ~ 164
책의 운명...
냉정하게 말하자면-'솔직하게 말하자면'의 이란성 쌍둥이-헌책방이나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책들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책들이 타고나는 우울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어쩌면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므로 그곳에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 page 171
책에 지금보다 더 많이 애정을 가져야겠습니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저도 헌책방에 가 보아야겠습니다.
매번 다짐만하고 못 가보았던 '청계천 헌책방 거리'.
이곳에 아이들과 함께 거닐며 역사와 추억을 만들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