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로는 애니메이션부터 뮤지컬, 작가주의 영화까지,
주제로는 무지와 차별, 황금만능주의, 노년의 사랑, 인간다움, 자아발견, 인간과 자연의 공생 등등.
단순히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가져다 놓고 우리 삶과 사람들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한 장면, 대사 한 마디에서 뽑아낸 실오라기를 붙들고 늘어지며 우리 눈길이 미치지 않는 그늘진 구석구석에 불빛을 들이대며 우리에게 영화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넨 안부
우리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나요?
열여덟 편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로부터의 그들의 사색이 있었습니다.
단순하지 않았던, 그렇다고 마냥 무겁지도 않았던 이야기...
읽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제 안의 정서적인 무언가가 피어오르곤 하였었습니다.
<파라노만>에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지닌, 유령을 볼 수 있고 그들과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노만'.
그러던 어느 날, 곧 오랜 잠에서 깨어날 마녀로부터 마을과 사람들을 구해야 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이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건넨 동선과 이연의 이야기.
동선 -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홍상수 영화 두 편에서 따로 나온 메시지를 뒤섞어서 기억하는 건 단지 착각만은 아닐지 몰라요.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로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담배도 끊을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 돼.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 <극장전 (2005)>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 <생활의 발견 (2002)>
이연 - 나랑 같이 혼자 있자
우리 안에 내재된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관찰과 성찰, 무리와 거리 두기. 나만의 시각 갖기. 영화 <파라노만> 제작진이 이토록 인간 본성을 밑바닥까지 파헤친 건 우리 스스로 물어보길 원해서가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어떤 인간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은가.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작가 김연수가 한 말. 두려움의 반대는 사랑. 노만처럼 여태 아무도 해보지 않은 걸 해보기. 이를테면, 어깨를 내어주고 마음으로 들어주기. 당신이랑 닮고, 당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걸 기억나게. 그리고 곁에 있어 주기. 몸과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나랑 같이 혼자 있자. 그러고 나란히 걷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색이 묻어났던 <파라노만>.
언젠간 꼭 찾아보며 저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밤과낮>에서 이연의 말 역시도 개인적으로 남았었습니다.
굴곡 없는 이야기, 건든건들 밋밋한 등장인물.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은 홍상수 감독 영화.
왜일까...?
아귀가 딱딱 들어맞지 않아 헐거워도 뜻밖의(?) 우연이 널리고 널린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그의 영화에선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맛이 나는 것도 같아요. 뭉근하게 우러나 속을 편하게 쓸어주고 든든하게 채워주는 곰탕 맛. 우연에서 뿜어져 나온 도파민의 걸쭉함. 그리고 그의 영화엔 없어요. 시작도 끝도, 영웅도 루저도. 별 볼 일 없이 시시껄렁한 우리네 삶처럼. 구차하고 너절한 우리처럼.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 먹먹하고 아려요. 문학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삶을 구하려던 작가 데이비드 실즈가 《문학이 내 삶을 어떻게 구했는가》에서 한 말. 문학 말고는 그 무엇도 내 삶을 구할 수 없었다. 거창한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음으로. 홍상수 감독 영화가 그렇지 않나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의 영화.
영화 <엘리멘탈>을 보러 갔다가 본 단편 영화 <칼의 대아트>. 새로 연애를 시작한 칼한테 더그가 한 말.
"사람은 좀더 개 같아져야 해."
인생(人生)은 보통, 아니, 거의 모두 축생(畜生)에 불과하다. 인생은 인생이라는 명사(名辭)로 이루어진 허울뿐인 축생이다. 삶은 축생과 같으되,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는 허명(虛名)으로 포장해서 말한다. 오오, 내 축생이여~
-장정일, 《장정일 단상 : 생각》 중에서.
군기 빼고 살아갑시다!
를 알려주었던 이 영화도 궁금했습니다.
영화를 단순히 즐기는 매체로만 여겼던 저에게 이 책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사색과 성찰을 통해 개개인의 의식이 확장됨의 경험은 그 어떤 경험보다 소중했고 필요했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또다시 영화로, 영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영화와 이야기의 실타래 속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저에게 남은 숙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