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미술과 문화에 관한 글을 쓰는 '권근영'씨.
과거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할 때는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점에 크게 의문을 갖지 않았지만 사회인으로 문화예술계를 취재하고 소식을 전하는 전달자가 된 후 한쪽으로만 치우친 예술가들의 성별이 차츰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1. '<축제전>여는 규수화가 황주리 씨'
1984년 개인전을 소개한 이 기사 제목에, 당시 스물일곱의 작가 황주리는 속이 상해 잠을 못 이뤘다고 돌아봤다. '규수'라는 예스러운 말을 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남의 집 처녀를 정중히 이르는 말' 혹은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 여자', 나쁜 뜻 하나 없지만 당사자가 질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야심만만한 신진 예술가를 '누구의 딸'이나 '젊은(어린) 여자'로만 봤기 때문이다.
#2. 대범하고 활달하게 휘두르는 붓질에는 '남성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마치 남성 화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정직성의 기계추상은 짧은 시간 밀도 있게 그려야 하는 아기 엄마의 삶에서 나온 것이라는 반전이 있다. 두 번의 결혼에서 얻은 세 아이를 키우며, 작업에 전념할 수만은 없었던 주부의 삶...... 그런 와중에 붓을 휘둘러 우리 시대의 풍경을 그린 것이 경쾌한 추상화로 이어졌다.
학문으로 접하던 미술세계와는 전혀 달랐던 이들의 이야기.
그래서 저자는 더 여성 예술가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그 이름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부 「길을 떠나다」 에서는
100년 전 진보적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겠다며 성별 불문 입학 조건을 내건 바우하우스가 결국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의 그늘 아래 놓이게 한 '흑역사'를 지적하며, 그럼에도 아동미술에 선구적 역할을 한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 여인의 삶을 기록한 '엘리자베스 키스'
현 함부르크 국립조형미술대학 교수이자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림 철학자 '노은님'
소재와 매체를 확장하며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경쾌하고 세련되게 전하는 '정직성'
2부 「거울 앞에서」 에서는
인상파의 여성 멤버였고, 출산을 했던 한 해를 제외하고 인상파 전시회에 빠짐없이 출품했던 '베르트 모리조'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딸도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화가 자신이 되고자 분투한 '파울라 모더존베커'
가족을 추스르는 고된 생활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아 예술적 발자취를 남긴 '버네사 벨'
한국의 현대미술가 '천경자', '박영숙'
3부 「되찾은 이름들」 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프란스 할스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유딧 레이스터르'
최초의 추상화가였으나 이름 대신 '먼저 온 미래'라 불린 '힐마 아프 클린트'
조선의 알파걸 '나혜석'
18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화가이자 스승으로서 일찍이 여성 연대를 꿈꿨던 '아델라이드 라비유귀아르'
바로크시대 유럽 무대를 종횡무진했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까지 사회적 그늘 혹은 가문의 이름에 가려졌던 여성들이 어떻게 예술로 자신의 이름에 완결성을 부여했는지 그 당찬 행보를 되짚어가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이 책에 나온 이들 중 위대했던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격동의 시대였던 그 시기에 프리들은 오스트리아 공산당의 선전 포토몽타주 제작에 관여한 혐의로 1년 남짓 옥살이를 했고 이후 프라하로 이주, 빈 출신의 전쟁 피난민 아이들을 가르치며 프라하 정신분석학회와 교류하며 아동심리와 미술치료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치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지만, 남편의 비자가 거절당하자 함께 남아 테레진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이곳에서 프리들은 아이들에게 드로잉을 통해 상상하고 표현하며 그림에 자기만의 느낌을 담도록 독려했습니다.
1944년 9월, 남편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자 프리들은 다음 열차로 아우슈비츠행을 자청하고 도착 직후 가스실에서 살해됩니다.
이때 아이들의 그림 4500장을 두 개의 여행가방에 담아 감췄는데 훗날 프리들이 감췄던 여행 가방은 프라하 유대인박물관에 기증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