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미술관 - 우리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읽는 그림'에 대하여
이창용 지음 / 웨일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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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와 미술사 강연 섭외 1순위로 매년 평균 400회 강의 진행, 10년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도슨트, 그리고 음악과 결합해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아트 콘서트 등.

이렇게나 다방면에서 독보적으로 활동하시는 미술 스토리텔링의 대가 '이창용'.

그가 이번엔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불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그림 속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만나보지 못했던 그림 속 인물과 서사에 대해 저도 한번 만나보고자 합니다.

100만이 사랑한 도슨트 이창용이 큐레이션한 그림의 방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그림에 '서사'를 담는다"

이야기 미술관



여기 서사가 담긴 그림들이 전시된 네 개의 방이 있습니다.

'영감', '고독', '사랑', '영원'의 방.

첫 번째로 보이는 '영감'의 방에선 고갱에게 마음을 표현하고자 그렸던 고흐의 정물화 <해바라기> 연작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태양만을 바라보며 그와 멀어지면 금세 시들어버리는 해바라기처럼, 오직 그림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된다면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지도 모르는 해바라기.

그 간절함을 알지 못한 고갱에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

이후 절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서일까...

그곳에서 그려진 해바라기 정물화 모작들은 이전보다 왠지 모를 적막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 page 26

그리고 이어서 인상주의 대표 여류 작가 베르트 모리조, 앙리 마티스를 질투한 피카소, 세상과 맞서 싸우려고 노력한 고야의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들어간 방은 '고독'의 방으로 외로움과의 싸움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뭉크와 겸손만이 교만을 없앨 수 있음을 깨달은 카라바조의 작품,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 미켈란젤로가 만들었기에 더 찬란했던 조각품 <피에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방에 <황소> 시리즈를 그린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중섭'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의 작품 중 <달과 까마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까마귀'를 흉조라고 생각하고 빈센트 반 고흐 역시도 자살 직전에 그렸다고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지만 이중섭 화가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이중섭 화가는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일본인 아내까지 두고 있기에 누구보다 일본 문화에 친숙했을 것으로 보이고 또한 평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평양 곳곳에 있는 수많은 고구려 고분벽화 속 '삼족오' 세 발 까마귀로 인해 흉조라기보다는 길조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이 인상 깊게 남았었습니다.

다시 작품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아마도 자유로이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바람이 담긴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작품 속 짙은 푸른 배경은 자신과 가족들을 가로막는 현해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 오른쪽을 보면 날고 있는 까마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날아가고픈 이중섭 화가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왼쪽의 까마귀들은 이중섭 화가의 가족으로 추측되는데, 그중 가장 우측에서 이중섭 화가를 바라보는 까마귀는 아내이고 좌측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두 까마귀가 아들 태현이와 태성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좌측 까마귀 무리를 보면 상단에서 그들을 향해 날아드는 또 다른 까마귀가 눈에 띕니다. 저 까마귀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중섭 화가는 1945년 아내와 결혼하고 이듬해 봄, 사랑하는 첫째 아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름이 없습니다. 바로 이름도 짓기 전 너무도 어린 나이에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해 저승에서 아들이 혼자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이중섭 화가는 아들 또래의 벌거벗은 사내아이들이 등장하는 군동화를 그려 관 안에 함께 넣어주죠. 이를 계기로 이중섭 화가의 또 다른 대표작인 군동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까마귀 가족을 향해 날아드는 저 까마귀는 먼저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이 아닐까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첫째 아들과 일본으로 떠나보낸 가족 곁으로 날아가고픈 이중섭 화가의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닐까 합니다. - page 94 ~ 97





이제 분위기를 바꿔 '사랑'의 방으로 입장해 봅니다.

이곳엔 추운 겨울에 태어난 조카에게 아몬드꽃의 상징처럼 희망을 가득 안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필두로 남녀가 황금빛 옷과 장식에 둘러싸여 입맞춤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 클림트의 <키스>, 딸의 헌신에 대한 미안함을 담아 성결 속에 등장하는 아들의 희생 이야기를 그린 샤갈의 <이삭의 희생>, 그리고 무언가에 홀리듯 이 작품에 끌리게 되었는데...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의 <기다림>.

밀레는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도 성서 속에 등장하는 부모처럼 이곳에서 나를 그토록 기다리고 계시지 않았을까'하는 마음과 두 사람이 20여 년간 애타게 자신을 기다리던 것에 대한 죄송함을 <기다림>에 담아냈던 것이 아닐까요? - page 173



마지막 방은 '영원'의 방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 속에 빠질 만큼 그 시대의 찰나와 모습이 강렬하게 담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쟁 속 잔임함에 대항하고자 만들었던 피카소의 <게르니카>, 영원한 죽음의 순간을 꽃과 함께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끝없는 아름다움을 말한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암피사의 여인들> 등 역사적 순간과 삶의 의미, 더 나아가 작가의 신념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통해 그 시대의 삶과 문화, 역사를 알게 되었고 나아가 내 삶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시간.

저자가 마르크 샤갈이

"예술에 대한 사랑은 삶의 본질 그 자체다"

라고 했듯이 우리의 삶에도 예술이 자연스레 스며드는 순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통해, 그의 강연을 통해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강렬했던 '읽는 그림'.

또 다른 작품, 그 작품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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