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사가 담긴 그림들이 전시된 네 개의 방이 있습니다.
'영감', '고독', '사랑', '영원'의 방.
첫 번째로 보이는 '영감'의 방에선 고갱에게 마음을 표현하고자 그렸던 고흐의 정물화 <해바라기> 연작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태양만을 바라보며 그와 멀어지면 금세 시들어버리는 해바라기처럼, 오직 그림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된다면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지도 모르는 해바라기.
그 간절함을 알지 못한 고갱에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
이후 절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서일까...
그곳에서 그려진 해바라기 정물화 모작들은 이전보다 왠지 모를 적막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 page 26
그리고 이어서 인상주의 대표 여류 작가 베르트 모리조, 앙리 마티스를 질투한 피카소, 세상과 맞서 싸우려고 노력한 고야의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들어간 방은 '고독'의 방으로 외로움과의 싸움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뭉크와 겸손만이 교만을 없앨 수 있음을 깨달은 카라바조의 작품,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 미켈란젤로가 만들었기에 더 찬란했던 조각품 <피에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방에 <황소> 시리즈를 그린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중섭'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의 작품 중 <달과 까마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까마귀'를 흉조라고 생각하고 빈센트 반 고흐 역시도 자살 직전에 그렸다고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지만 이중섭 화가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이중섭 화가는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일본인 아내까지 두고 있기에 누구보다 일본 문화에 친숙했을 것으로 보이고 또한 평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평양 곳곳에 있는 수많은 고구려 고분벽화 속 '삼족오' 세 발 까마귀로 인해 흉조라기보다는 길조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이 인상 깊게 남았었습니다.
다시 작품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아마도 자유로이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바람이 담긴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작품 속 짙은 푸른 배경은 자신과 가족들을 가로막는 현해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 오른쪽을 보면 날고 있는 까마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날아가고픈 이중섭 화가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왼쪽의 까마귀들은 이중섭 화가의 가족으로 추측되는데, 그중 가장 우측에서 이중섭 화가를 바라보는 까마귀는 아내이고 좌측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두 까마귀가 아들 태현이와 태성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좌측 까마귀 무리를 보면 상단에서 그들을 향해 날아드는 또 다른 까마귀가 눈에 띕니다. 저 까마귀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중섭 화가는 1945년 아내와 결혼하고 이듬해 봄, 사랑하는 첫째 아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름이 없습니다. 바로 이름도 짓기 전 너무도 어린 나이에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해 저승에서 아들이 혼자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이중섭 화가는 아들 또래의 벌거벗은 사내아이들이 등장하는 군동화를 그려 관 안에 함께 넣어주죠. 이를 계기로 이중섭 화가의 또 다른 대표작인 군동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까마귀 가족을 향해 날아드는 저 까마귀는 먼저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이 아닐까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첫째 아들과 일본으로 떠나보낸 가족 곁으로 날아가고픈 이중섭 화가의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닐까 합니다. - page 94 ~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