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작가의 말>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이런 당부를 하였습니다.
"처음에 각 장 타이틀이기도 한 하이쿠를 감상하고,
그 후에 소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하이쿠를 읽으면
독후감과는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이 있을 겁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가 들어간 구절을 제목으로 한 12편의 소설.
의료기술이 발달한 미래를 그린 에스에프, 결코 시들지 않는 열매가 등장하는 판타지, 사다코를 연상시키는 존재와 맞닥뜨리는 호러 등 다양한 장르가 그려져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참으로 묵직하였습니다.
시댁에서 고립된 며느리, 남자친구에게 스토킹 당하는 여자, 바람피우는 남편에게 속는 딸의 삶을 엄마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 등...
'여성'의 이야기는 저 역시도 여자이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고 마냥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었습니다.
17자에 담겨진 마음.
짧지만 강렬하였고 섬세하였으며 읽고 난 뒤의 여백에 제 마음을 더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울림이 있었던 것일까...
하이쿠의 매력에 저도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책 제목을 접했을 때 무슨 말인가...? 했었습니다.
계속 읊어보다 소설을 접하고
"쳐다보지 마, 고개 돌려!"
커다란 등으로 막아주었다.
"노리카 사랑해! 이렇게 사랑한다니까!"
다쓰야 씨가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외삼촌에게 꼭 안겨 엄마와 언니의 갈라진 비명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유리 너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멀리 사라지고 달은 제자리에서 다시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달님의 한탄을 들었다.
이 빛으로도 정화할 수 없는 게 있단다. 미안하구나. - page 86
다시 하이쿠를 읽으니 비로소 저에게 와닿았던...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올해도 같은 밥 같은 찬을 먹는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매년 방문하는 이 가족만 아는 비밀의 화원.
솥밥과 유채튀김.
유채꽃 전망대에서 지켜보는 한 가족의 역사.
세월은 흘러 이젠 전망대와 작별하는 회식을 하는데..
"헤어져도 봄과 꽃은 저기 그대로 있을 거야."
"와, 맛있다. 잘 먹겠습니다!!" - page 311
우리 가족도 이런 추억의 장소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흘러버린 세월이 야속했습니다.
하이쿠를 읽다 보니 우리의 시조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시조도 더없이 훌륭한 문학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일본은 자신의 것을 지키고 계승시키고자 하이쿠를 더욱 발전시키고 세계화하는데...
하이쿠보다 더 다양한 주제를 더 깊은 내용으로 담을 수 있는 시조에 대한 관심이 필요함을 느끼며...
역시 '미야베 미유키'였습니다.
그동안 시대물을 주로 접해서인지 읽는 저로서는 어느 정도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이 '하이쿠 X 소설의 콜라보레이션'도 시리즈로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