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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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치·경제·글쓰기·여행 등 인문학 분야의 글을 써온 작가 '유시민'.

그런 그가 이번엔 '과학'을 소재로 썼다고 하였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통섭하며 그려낼 이야기.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선사할지 기대하며 읽어보았습니다.

과학 공부로 길어 올린 생명과 우주에 관한 진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

"내 삶을 어떤 의미로 채울 것인가?"

지금 여기, 지식과 교양의 새로운 패러다임

과학의 사유와 인문학의 성찰이 함께하는 지적 여정

"문과도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글 쓰는 문과 남자'

칸트·헤겔·마르크스·밀·카뮈·포퍼의 철학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으면서 갈릴레이·뉴턴·다윈·아인슈타인·하이젠베르크·슈뢰딩거 같은 과학자는 이름 말고는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불편했다고 하였습니다.

인문학만 공부해서는 온전한 교양인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과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바가 있다고 하였는데...

과학을 전혀 몰랐을 때 나는 세계를 일부밖에 보지 못했다. 타인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전체를 보지는 못하며 인간을 다 이해하는 것 역시 아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더 다양한 관점에서 살핀다. 윌슨의 말은 과학의 토대 위에 서야 인문학이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age 39

그는 과학책을 읽으며 인문학 공부로 배우지 못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과학의 토대 위에서 다양하게 사유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공부를 하기 위해선 인문학과 함께 과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회한의 감정을 실어 말하였습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인문학과 함께 과학도 공부하고 싶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문과가 없기를 바란다"

책은 '나'에 대한 앎이 인문학의 근본 목적이기에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과학적 답을 '뇌과학'에서 찾고

나에 대한 관심이 다른 생명 현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생명체의 존재의 의미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밝히는 '생물학'을

생명이 다양한 물질의 구성이자 작용임을 알게 되면, 원자와 분자, 소립자라는 물질의 최소단위를 다루는 '화학'으로

그러고 나면 물질의 운동을 설명하는 '물리학'으로 나아가고 양자역학을 공부한 뒤에 우주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자

'우주의 언어'이자 '천재들의 놀이'인 '수학'으로

인문학은 과학으로 정확해지고, 과학은 인문학으로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에겐 쉬이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나는 뇌다.' 이것은 사실을 기술한 과학의 문장이 아니라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이다. 뇌는 물질이지만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내가 뇌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말한 것은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소유욕부터 경쟁심, 구애 행동,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예술적 창조, 낯선 것에 대한 경계, 자존감, 불안, 공포, 외로움, 복수심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모르고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이해할 수가 없고, 호모 사피엔스의 본선을 모르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뇌다.' - page 47 ~ 48

이처럼 과학으로부터 인문학을 접목시켜 사고하는 것이... 저에겐 어렵기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흐름을 따라 읽다 보니 모든 학문은 얽혀있다는 것을, 결국 학문의 의미는 '나를 이해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page 127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엔트로피 법칙을 안다고 해서 크게 좋을 건 없다.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분명 낫다. 특정한 종류의 오류와 불행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내게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그 충고를 받아들이면 열정을 헛되이 소모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 - page 250

이런 사실만 알고 있어도 어렵지 않게 삶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면 과학과 인문학을 다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됩니다.

책을 읽고 난 뒤 저 역시도 '바보'를 면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꾸준히 공부할 것을...

우선 그가 추천한 책들을 한 권씩 읽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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