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 어느 문화재 복원가가 들려주는 유물의 말들
신은주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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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간 생을 이어온 유물들.

저마다의 서사를 간직한 유물을 닦고 붙이고 말리며 역사의 조각조각을 이어 붙이는 '보존과학자'.

사실 이렇게 책을 통해서가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없기에 너무나 궁금하였습니다.

우리가 유물이라 불리는 것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사람이 들려주는 유물의 말들.

어떤 이야기일까...

조각나고 녹슬고 갈라진 유물에서 건져 올린 인생의 지혜

유물의 기억을 되살리는 사람, 어느 보존과학자의 기록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유물이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고 두 번째 생을 살게 되기까지, 보존과학실에서 유물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한 보존과학자의 유물 이야기였습니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발견된 유물을 옮겨와 보존, 복원하고 전시, 또는 수장고에 보관하기까지 하나의 유물이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기까지 일어나는 일들을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2부는 발견된 유물들의 아직 발견되지 못한 이야기와 역사와 유물에 작은 관심을 가진 누군가와 꼭 한 번쯤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자 한 이야기는

인간의 삶도 문화유산의 시간도, 존재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 덕분에 이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유물을 통해 배웠다. 쓸모를 다한 채 부서져 길바닥을 뒹구는 핸드폰 파편 조각이 먼 훗날 우연히 발견되어 미래를 사는 사람들에게 미처 기록되지 못한 현재의 역사를 들려줄지 모른다는 것도 그렇게 조각난 토기를 이어 붙이고 녹슨 철제낫의 이물질을 제거하며 오래되고 낡은 모든 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그리고 유물을, 나아가 삶을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 page 6

장장 30여 년이 걸린 <미륵사지 석탑> 복원 과정에서, 진정한 복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광화문> 현판 복원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과 담당자의 작은 관심으로 1600년 만에 헤어져 있던 편들이 제자리를 차장 진정한 의미의 복원을 하게 된 <봉수형 유리병> 이야기에서 우리가 정말 읽어내야 할 행간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었습니다.

진정한 나를, 우리의 삶을...

중요한 문화유산과 덜 중요한 문화유산은 없다. 그저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유일한 진리 앞에, 마지막까지 존재하여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유물의 생이고 우리의 삶이다. 그러니 삶의 방식도 기준도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오롯한 내 인생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 내 인생의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되니까.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흔해빠진 물건 나부랭이였을 유물들에서 위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듯이. - page 230

그동안 그저 무심히 바라보았던 우리의 유물들.

이렇게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있음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할까...

덕분에 유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녹'에 대한 이야기가 아이러니하였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유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그렇다고 제거해 버리면 유물의 외형적 형태가 크게 달라져 고고학적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데...

이런 '녹'으로부터도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는데...

우리도 살면서 종종 그런 순간을 맞닥뜨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었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순간들. 더러는 내 삶을 녹슬게 하는 녹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제거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녹이지만 이를 거울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나를 보호하는 방패로 삼을지, 나를 갉아먹는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병들어 갈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 page 80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무형의 문화유산'.

눈에 보이는 문화유산보다 보전과 계승이 쉽지 않은 무형문화유산.

아무런 보상이 없을 때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도 긴 시간 자신이 보유한 기술에 담긴 시대정신과 가치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낸 분들.

K-POP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것은 음악에 담긴 우리나라만의 정신과 특별함이 원천이 되었기에.

우리는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한국만의 독자적인 것'들을 만들어낸 정신이 깃든 무형문화유산의 들리지 않는 아우성에 이제는 다정한 관심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 page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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