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계절 - 귀주대첩, 속이는 자들의 얼굴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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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연일까, 운명일까.

그렇지 않아도 <고려거란전쟁>이 한창 반영되고 있는 요즘.

역사를 빛낸 많은 명장 가운데 강감찬과 고려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진 요즘.

이렇게 소설로도 만난다는 건...

꼭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역사와 미스터리 서사의 절묘한 교합으로 이루어낸 또 하나의 드라마!

바로 읽어보았습니다.

고려거란전쟁 마지막 20일의 미스터리

귀주대첩 스무 날 전,

그 성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너도 걸렸던 거야. 암시에."

여우의 계절



1019년 2월 6일.

대원수 강감찬이 삼군을 거느리고 개선하여 포로와 노획물을 바치니 왕은 영파역까지 나와 영접하였습니다.

왕은 강감찬의 왼손을 잡곤

"노고가 많았어요. 정말 노고가 많았어요, 할아버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이 신하에게 그런 말을 사용할 수 없는 노릇이거늘...

그런 왕에게 감히 청할 게 있다는 그.

"이번에 고려가 이길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조종의 공덕과 선대 현인의 도움을 얻은 폐하의 이기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두 번째는."

"으흠, 두 번째는?"

"곤궁하게 살았으면서도 적을 한 명이라도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싸운 구주 토민과, 북계 백성들의 호국 의지였나이다."

"암요. 그렇다마다요. 그들에게 보상해야 합니다. 아니, 아니, 내가 첫 번째가 아니라 그들이 첫 번째이지요. 이제 그들은 여력이 나고, 봄이 오면 김매고 농사지으면서 안도하고 태평성대를 누릴 것입니다. 나는 당장 전사자의 유골을 수습해서 제사를 지낼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뭡니까? 세 번째는?"

"우리를 승리로 인도한 호국 영령의 음덕이 있습니다. 청컨대, 국사를 지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써온 그 영령을 배향하고, 사찰에 칙령을 내려 닷새를 기한으로 분향하고 염불을 외게 해주시옵소서. 신, 간곡히 청합니다."

"아고, 아고,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할아버지." - page 11 ~ 12

사위가 낮처럼 밝습니다.

겨울 북계의 밤.

다름 아닌 여우난골 마을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란인 애꾸는 저쪽, 병풍 앞에 이불을 반쯤 덮고 앉아서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두 명의 고려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애꾸는 저것들을 데리고 갔을 때 상급자에게 고려인 귀족 여자로 속일 수 있을지를 가늠했지만 그냥 혼자 처리하는 것을 선택했는데...

어어어어?

거란인이 실그러졌습니다.

그리곤 방 안 가득한 피비린내...

"온니 말대로 야만인이 참말로 방에 들어왔네. 온니는 앞날을 참 잘 맞혀. 야만인은 패물도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러네. 귀신같은 우리 온니. 예쁘고 힘센 우리 온니." - page 30 ~ 31

바로 두 여인은 과거와 미래를 보는 예지를 지닌 '설죽화'와 '죽이는 병'에 걸린 '설매화' 자매였습니다.

버려진 땅, 북계 구주의 외딴 방어성 내 토속신을 모시는 사원에서 고려군 핵심 기마대의 여섯 장교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에 대해 대원수로부터 설죽화와 설매화 자매, 북방의 만능 사냥꾼 각치가 진실을 파헤칠 것을 의뢰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건은 파헤칠수록 실체가 벗겨지기는커녕 고려군 내부의 수상한 기미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결국 그들은 이 북계의 왕, 늘 원숭이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고려군 대원수가 현존하는 생명체 중 가장 사악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데...

각치는 그를 구속하고 있는 탈을 차마 벗겨내지 못했다.

"각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입니다."

"......그러면...... 생각을 달리하면 미래가 바뀔까?"

각치 표정이 굳었다.

"그럴 것입니다. 각하의 결심이 바뀌면 미래도 바뀝니다."

각치는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원숭이탈을 바라보기만 했다. - page 418

몰입감도 장난 아니었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 묘사가 어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끔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미래를 보는 예지력을 지닌 설죽화와 살인병에 걸린 설매화 자매, 북방의 만능 사냥꾼 각치 등 등장인물은 예기치 못한 상상으로 이끌었었고 역사 사실과 스토리텔링의 교합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팩션이 아니었는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꼽으라면 저는 이 문장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각치는 들고 있던 가면을 썼다. 그래야만 자신을 보호할 것 같았다. 내가 아님을 말해야만 하늘이 자신을 숨겨줄 것만 같았다. 탈은 그런 것이니까. 탈을 쓰면 그것으로 주목받지만, 속에 숨은 자는 자신을 속일 수 없다. - page 363

우리는 전쟁의 명성만을 알지 실제 그 이전이라든지 그 이후에는 관심이 없기 마련입니다.

고려거란전쟁 마지막 20일의 미스터리.

정말 이런 일도 있지 않았을까...

책을 덮어도 그 여정동안 함께 해온 감정이 남아 여운이 남아 맴돌았습니다.

1,000년 전, 반도인은 이족의 도움 없이, 오직 그들 힘으로 그들 것을 지켰다. 그 복으로 근 100년을 당당하고 무탈하게 지냈다. 그들 후손은 달랐다. 1,000년 동안,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빌붙어 자신을 상징하며 살고 있다. 감히 상상한다. 다시 우리 힘으로 우리 것을 지킬 수 있기를. 원이탈의 혼령이 우리 등 위에 내려앉기를.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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