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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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

솔직히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고전...

그래도 일 년에 한 달!

마음잡고 고전을 읽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건네지 않는...

그래서 그런 저에게도 팔을 잡아끌며 읽자고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넌지시 박연준 시인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습니다.

서른아홉 개의, 박연준 시인이 그간 자신이 귀 기울였던 고전은 어떤 것일지, 그리고 저자의 시선으로부터 고전은 어떤 느낌일지 읽으며 이해해 보고 싶습니다.

"혼자 책 읽는 사람을 본다.

침묵에 둘러싸여 그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박연준 시인이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며 읽자 한 서른아홉 권의 고전!

듣는 사람



글쓰기는 공들여 말하기, 읽기는 공들여 듣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page 11

저자는 독서가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행위라 하였습니다.

이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공들여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

이는 '존 버거'로부터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에는 주름으로 가득한 존 버거의 얼굴, 그림을 그리는 그의 투박한 손이 나온다. 상체를 기울이며 타인의 말을 듣는 존 버거를 볼 수 있다. 나이든 사람이 한결같이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이야기꾼이라면, 그건 내가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사람. 쓰는 자는 우선 듣는 자임을, 그리고 다르게 보는 자임을 나는 존 버거에게 배웠다. - page 55 ~ 56

그래서 저도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책을 읽어보아야겠다 다짐해 보았습니다.

'고전'이란 무엇일까...

고전에 대해 저자는

해석으로 탕진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살아남은 책,

읽고 또 읽어도 닳지 않는 책,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도 소문을 등지고 커다래지는 책,

우리 곁에 유령(교차로의 유령!)처럼 남아 일상에 스며드는 책,

작가는 죽고 없는데 이야기는 살아남아 여전히 세상을 여행하는 책,

시간의 상투성과 세월의 무자비함을 견디고 목소리의 생생함을 간직한 책

이라 하였습니다.

그럼 고전을 왜 읽어야 할까?

고전에는 올바른 길이나 훌륭한 선택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계속 길을 잘못 가는 방법'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요. 시행착오가 없는 삶, 그런게 있을까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 page 15 ~ 16

어쩌다 잘못 든 길을 온 마음을 다해 그 끝까지 걸어간 이들이 남긴 기록으로서 고전.

그 어떤 삶도 완벽할 순 없으니 그 누구도 온전히 지혜로울 순 없으니, 최선은 피할 수 없는 좌충우돌을 겁내지 않는 것, 그리고 최대한 즐기는 것, 이를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말하고 있었고 우리가 이러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서른아홉 개의 고전들.

역시나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들이 많았고 저자가 건넨 이야기를 들으며 고전은 거창한 것이 아닌 어쩌면 평범할 수도, 어쩌면 어리석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더 빛나는 삶을 달고 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읽고 싶어진 책들이 있었습니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그동안 내가 알았던 '슬픔'이 마냥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기쁨이 감정을 밖으로 발산하는 감정이라면 슬픔은 밖에서부터 내 안으로 수렴하는 감정이다. 슬픔을 아는 자는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에 쉽게 감응한다. 기쁨ㅇ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지만 슬픔은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 문학에 기여한 많은 작가들이 기쁨보다 슬픔에 더 반응한 이유다. 슬픔을 모르고서 우리는 시를 쓸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고 노래 부를 수 없다. 탁자를 두드리며 부르는 유행가 가락에도 슬픔이 배어 있지 않은가. - page 77 ~ 78

슬픔이 사람을 단단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육체 단련을 위해서 운동이 필요하듯 영혼의 단련을 위해선 슬픔이 필요하기에.

슬픔을 아는 그가 그려낸 이야기를 저도 기회가 닿는다면 읽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

소피아와 할머니가 여름 내내 섬에서 같이 걷고 이야기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일상을 나눈 이야기.

서로의 세상을 침범하지 않고 함께 지내지만 혼자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는 이들.

슬픔도 기쁨도 이야기 사이에 풀잎처럼 껴 있어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는데...

무엇보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지낸 적이 있기에, 지금은 병상에 계시는 할머니가 너무나 그리워지면서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창밖에서 낳은 엄마다. 건너다보는 엄마.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아득해진다. 할머니는 늙고, 소피아는 자랄 것이다. 세상 곳곳에서. - page 172

무심히 책장을 바라보았는데...

아직 읽지 않고 꽂혀있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다 간 사람이라는 '스토너'.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릴 땐 요절이 근사해 보였으나 이젠 안다. 누구라도 인생을 끝까지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귀하다는 것. 자기 일을 오랜 시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삶, 이런 삶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혹은 평범해 보이게) 사는 일이 아닐까.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다독임, 생을 향한 긍정 없이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 - page 238

우선 이 책부터 읽어야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좋은 소설은 겪지 못한 인생을 '살아보게' 한다. 다 읽은 후 고치처럼 몸을 말고 웅크리게 만든다. 마치 상처받은 것처럼. 이야기가 몸에 상처를 내고 들어와 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랄까. 어떤 이야기는 읽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 page 49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아니 내가 잡을 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또다시 귀를 기울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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