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고 중일전쟁, 2차 대전, 가난, 쌀 배급, 해방, 6.25...
비록 한 사람이지만 역사의 산증인이었고 그렇게 엄청난 체험 부피가 차오를 때면 그녀만의 필력으로 그려냈던 이야기들.
마냥 글로 끝날 것이 아니었고 저마다의 빛을 비추며 우리에게 스며들어 제 안에서도 그 빛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일상에서 다채로운 빛을 발견할 수 있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이젠 더이상 그녀의 글을 만날 수 없음에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글을 곱씹으며 그의 마음을, 사랑을 물들여보려 합니다.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는데 '보통'으로 산다는 이야기.
우리는 끊임없이 부자의 상태를 흉내 냄으로써 자기 생활을 파탄과 불안으로 몰며 불행하게 만드는데...
결국 아래위를 함께 이해할 수 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층이 바로 이 보통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돈이 귀하다는 것도 알 만큼은 알지만 세상에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믿음과는 바꿀 수 없고, 돈을 자기를 위해서는 아낄 줄도, 남을 위해선 쓸 줄도 알고, 자기 일, 자기 집안일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는 없더라도 크게는 관계되는 사람들과 사람들과의관계, 세상 돌아가는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의 그른 일, 꼬인 일, 돼먹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어, 그런 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야 하는 양식의 소유자도 바로 이 보통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 page 260
보통 사는 걸 안 알아주고 보통 사는 게 외로운 시기.
지금의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보통 사는 사람일까...
뭉클했던 <소멸과 생성의 수수께끼>.
점점 저도 나이가 들면서 나보다 더 앞서가는 부모님을 바라볼때면 울컥하는 것이...
그동안 효도랍시고 했던 것이 어머님께는 '행복'이 아니었음을 잘 알지만...
어머니가 정말 행복해 보일 적은 무릎으로 엉겨드는 증손자를 어루만지실 때다. 그 어린놈은 그 노인의 얼굴이 늙어서 보기 싫다는 것도 그 노인의 위치가 무력하다는 것도 아직 모른다. 따습고 말랑하고 정이 흐르는 손길이 본능적으로 좋아 따르고 있을 뿐이다. - page 154
그 따스한 온정이...
생명이 소멸돼 갈 때일수록 막 움튼 생명과 아름답게 어울린다는 건 무슨 조화일까? 생명은 덧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이어진다고 믿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이번 겨울에 내 어머니가 증손자가 무릎으로 엉겨붙는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 계시게 해야겠다. - page 155
참...
소멸과 생성의 공존.
또다시 울컥하게 됩니다.
"사랑이 결코 무게로 느껴지지 않기를,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여자였고 딸이었으며 엄마였고 작가였으며 한 사람이었던 박완서 작가가 건넨 편린들.
이제는 '사랑'이라 읽혀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