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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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생명이 숨 쉬지만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가혹한 환경 속에 남겨졌던 여자아이 '카야 클라크'.

그 아이의 성장담은 잔잔히 큰 여운을 남겨 지금 생각해도 먹먹하게 하는데...

바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

아마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서 회자될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재가 노래하는 곳>, <스토너>를 잇는 차세대 모던 클래식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잇는 소설이라니!

더없이 반가웠습니다.

여기에 더해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님의 강력 추천글이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더 뿜뿜 시켜주었는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숨가쁘게 벅찬 '사랑의 여정'이다.

한 소녀가 품었던 소년에 대한 사랑이 어쩔 수 없이 놓아버려야 했던 이들에 대한 애타는 사랑으로 전이되고, 이는 나아가 신과 자연에 대한 거대한 사랑으로 확장된다.

수몰될 고향에서 빅토리아가 구해 옮겨 심은 복숭아가 서툴지만 자그마한 꽃을 피우다 마침내 커다랗고 다디단 결실을 일궈낸 것처럼, 빅토리아의 가슴속 사랑도 슬픔을 고난을 양분 삼아 농익어 간다.

작고 미숙한 어린 소녀가 갖은 역경 끝에 마침내 한 청년과 대지의 어머니로 거듭나는 이 파노라마를 통해 독자들은 성숙과 성장, 희망의 의미를 머금어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_ 곽아람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망설임은 시간을 지체할 뿐!

바로 읽어보았습니다.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삶이 뿌리째 뽑히는 상실 앞에서

자연을 닮은 회복력으로 살아간다는 것

흐르는 강물처럼



콜로라도의 시골에 사는 '빅토리아 낸시'.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게 되면서 남동생 세스는 술과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말수가 줄어들고 무뚝뚝해졌으며 비아냥거리는 이모부 등 집안에서 의지할 데 없었던 빅토리아.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 '윌슨 문'을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17년 동안이나 이렇게 타인에게 관심받는 것에 관심 없이 살아올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이 내 속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속마음을 다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받으며 먼지가 수북이 쌓인 여인숙 계단에 서 있었고, 윌슨 문을 만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빛을 받고 있었다. - page 34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윌슨 문을 향한 주변의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그 인전 남자애 말이니?"

아주머니가 어디서 지독한 냄새라도 난다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토리, 대체 무엇 때문에 그 더러운 인전을 찾는 거야?" - page 97

인디언이라는 사실에 큰 경멸과 멸시들...

그러다 듣지 말았어야 할 대화 내용을 듣게 됩니다.

시체를. 블랙 캐니언 바닥에서. 그 인전 놈. 피부가 거의 벗겨진 채로. 차 뒤에 있었다나. 던져졌대.

남동생이 한 짓임을 직감한 채 어마어마한 슬픔과 죄책감, 사랑, 두려움, 혼란이 빅토리아 안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그녀의 자궁에서는 아주 작은 태아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만은 살리기 위해 숲속으로 도망쳐 윌슨 문과 사랑을 나누었던 오두막집에서 출산을 하게 됩니다.

혼자서 아기를 낳고 얼마 안 되는 음식과 라즈베리를 먹으며 견디던 빅토리아.

그곳에 소풍 온 신혼부부를, 그러니까 매끈한 검은 차, 풍만한 젖가슴, 단란한 가족을 보자 자신의 아기가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를 삶의 모습처럼 느껴져 자신의 아이를 그 차에 몰래 태워 보내게 됩니다.

그러고는 고향으로 돌아오니 집안일을 돌볼 여자가 없는 집을 남동생과 이모부는 떠나버렸고, 아버지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곁에서 사라진 지금,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피붙이였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복숭아만큼은 끝까지 지켜내리라 다짐하게 된 빅토리아.

그러던 중 강을 댐으로 막고 마을을 저수지로 메울 거라는 소문이 도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게 지워지길 바라던 때였기에 아이올라에서 제일 먼저 땅을 판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복숭아나무만은 보낼 수 없기에 새로운 장소에서 나무들을 심으며 새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달 끝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검게 변한 하늘에 별이 뿌려지자 나는 축축한 풀밭에 무릎을 꿇고 부디 이 땅에 축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나무들과 함께 이곳을 집으로 삼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죽는 날까지 이 땅을 아끼며 돌보겠다고 맹세했다. 어떤 식으로든 응답을 받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엇보다 원했지만 그동안 결코 인정하지 못했던 기도를 덧붙였다. 기적이든 운명이든 내 아들이 내 품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 땅과 더불어 내 아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면,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 곳이 아니라는 걸 아들에게 가르쳐주겠다고, 광대하고 알 수 없는 이 세상 속 한 뙈기의 작은 땅이 우리를 이어준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겠다고 기도했다. - page 296

1년에 돌멩이 하나씩, 그렇게 아들의 나이만큼 돌멩이를 주워다가 간절히 기도를 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곳에 편지라기보다 일기에 가까운 글이 남겨지게 됩니다.

이제 그들 앞에 놓인 이야기...

슬픔을 넘어 경이로움을 자아냈는데...

읽으면서 숨 고르기가 힘겨웠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책 제목처럼 흐르는 강물이었기에 멈출 수도 빠르게 달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흘러 흘러 벅차올랐던 감정이란...

"루카스예요."

이 한 마디.

참아왔던 숨을 내쉴수 있게 해 주었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 page 143

그렇게 우리 모두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뒷모습이 아련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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