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섬진강가에 정착하게 된 그녀.
사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추었을 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대답해 봐. 정말이지, 어떤 때, 너는, 진심으로 행복하니 혹은 행복했니?'
이때 머릿속으로 뜻밖의 풍경이 떠올랐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늦은 여름의 저녁, 당시 주말 집으로 사용하던 평창의 시골집에서 아직 어렸던 아이들을 아주머니 편에 먼저 서울로 보내고 밀린 원고를 쓰려고 혼자 남아 있었던 한적함...
된장국에 넣을 아욱을 따고 가지와 애호박, 풋고추와 상추를 딴 바구니를 들고 텃밭 울타리를 나와 집 쪽으로 몸을 돌리던 어떤 순간.
어스름의 그 찰나 평범한 시골의 풍경이 그녀의 머릿속에 여러 번 떠올랐고 결국 하동리 평사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 무렵 방문한 친구들은 그녀에게
"외롭지 않니?"
하고 물었었고 그녀는
"응, 말이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들을 귀가 아직 싱싱하고, 신기하게도 맘속에 한 줄기 섬진강이 지치지 않고 흘러가고 있어. 세상의 어떤 자들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푸르고 청정한 그 물줄기가 말이야. 가끔 내 한숨과 눈물이 보태지기는 하지만."
...
"나는 좀 고요하고 싶어."
고통과 외로움 혹은 결핍 대신...
그러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예루살렘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왜 예루살렘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도 정확히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천천히 깨닫게 되겠지. 이건 나이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것. 답이 언제나 그 순간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답은 없어도 좋을지도 모른다는 것. - page 51
그렇게 목적지는 예수의 탄생과 성장,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 곳으로,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강, 쿰란, 나자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등을 차례로 순례하게 됩니다.
전에 순례했던 유럽의 수도원과 성지와는 전혀 다른, 낯선 중동의,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이었기에 보다 특별했고 치열했으며 그녀의 솔직한 인생 고백, 고통 속에서의 깨달음은 묵직이 다가왔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성인들, 수많은 현자들이 인간 세상을 떠나 사막으로 간 것이었으리라. 거기에는 우리 감각을 미혹시키는 배경들이 가장 최소화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불교에서 '미혹'이라고도 말하는 그 모든 감각을 지워버리고 나면 인간은 하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통곡하는 것이다. - page 155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개는 약간 더 괴로워질 뿐이다.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 가끔은 존재를 찢는 듯한 고통을 겪고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대신 고통을 거부하려고 헛되이 싸우던 그가 망가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러므로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틀이 이제 작아지고 맞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 page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