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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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맘때쯤이면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몇 장 남아있지 않은 달력.

물거품이 되어버린 목표들.

헛헛함...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보단 '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그 공감으로 이 마음을 채워보고자 합니다.

이 시대에 시는 왜 필요한가.

시는 한 시대의 삭막함과 불행에 맞서며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힘과 용기를 준다.

시는 문명을 이룩하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시는 미래의 언어다.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시대가 삭막할수록, 그리고 미래가 암울할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전복적 상상력으로 시대를 가로지르고, 공중을 떠도는 유언과 비어를 채집하며,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고 표상을 찾는 숭고한 소명이 있는 ''라고 답하고 있었습니다.

한 시대의 끔찍함과 삭막함과 불행에 맞서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힘과 용기를 주는 시.

그런 시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불행했을 것인가...라며 시의 숭고한 사명을 되새기며 자기의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는 스물아홉 편의 시와 시인들을 불러 삶의 깊이와 방향을 다시 물어보았었습니다.

첫 장부터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절망보다 희망이 더 괴로운 까닭은>.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는데...

김승희 시인은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

라고 썼습니다.

본디 절망이 없다면 희망도 없기에 오히려

희망을 버려라! 차라리 희망과 싸워라! 희망을 폐기하는 자만이 현실을 바라보고 절망을 넘어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 - page 19

라는 말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희망의 토템 폴인 선인장......

피가 철철 흐르도록 아직, 더,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인데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이유 없이 나누어주는 저 찬란한 햇빛, 아까워

물에 피가 번지듯......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

희망이 외롭다"

삶은 견딜 수 없는 지경인데 희망의 종신형을 선고받은 채 가느다란 끝을 붙잡고 있는 우리들이 참 애처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백색'에 대해 만감이 교차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백색어사전

임봄

겨울나무가

수많은 잎들을 잉태하는 소리,

얼음 밑에서

물고기가 우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내ㅐ리는 눈발이

각진 말들을 품어 안는 소리,

사전에 활자로 정의된

나, 너, 우리, 나, 너, 우리,

마른 땅에서 서로를 핥던 물고기가

달의 뒤편으로 헤엄쳐 갈 때를 기다려

당신이 꽁꽁 언 내 마음을 지나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소리.

색을 소리의 영역으로 환원시킨 <백색어사전>.

특히나 이 시의 계절이 겨울이라 그런지 지금 더 와닿았던 이 시.

하지만 이 시는 마냥 아름답지는 않았는데...

백색은 모든 색들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다. 검은머리는 하얗게 변하는데, 이때 흰머리는 노화의 징표다. 오래 묵은 것들은 다 흰색에 가까워진다. 흰색은 소멸의 징후다. 노인의 흰머리는 젊음의 약동하는 기운이 다 쇠하고 죽음이 지척에 와 있음을 암시한다. 이렇듯 시인은 백색이 꿈, 환, 망각, 소멸의 뜻을 품고 있고, 궁극으로 공이며 무의 표상이라는 것에 기대어 우리 실존의 가없음을 노래한다. 시인의 백색 시편들은 우리 생의 가없음을 노래하는 비가로 읽어야 한다. - page 120

백색의 서사가 가슴 절절히 사무쳐왔습니다.

저자가 말한 시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보는 능력, 의외성을 가진 이미지들, 무의식에서 솟는 돌연한 감정들, 다양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들, 이제까지 없던 음악, 어디서 오는지 모를 에너지, 순진무구한 주문, 기다림과 숙고와 완전한 몰입, 이런 것이 없이는 시도 없다. 이런 성분 없이 나왔다면 시란 언어의 무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시는 불행과 격투를 마다하지 않는 시, 낡은 사물이나 생각을 바꾸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 청춘의 착란 속에서 빛나는 미래 비전을 담은 시다. - page 5

은유의 집적이며 어떤 전조와 예감과 우연을 품고 돌아오는 '시'.

시를 통해 잠시나마 사색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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