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니,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라는 문구였습니다.

알고보니 저자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스퍼거증후군, ADHD, 범불안장애 등 신경다양성의 세계에서 살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더 잘 설명해 줄 것 같기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신경다양성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책. 이 묵직한 회고록은 자폐스펙트럼에서 생존의 힘을 조명한다."

_<타임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지구에서 산 지 5년째 되던 해에, 카밀라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

아무래도 정거장을 지나친 게 틀림없다고.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할 수는 없는 사람 같았고, 동료 인간과 겉모습은 같지만 기본 특징은 전혀 다른 것 같다고 느낀 카밀라는 자신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인 엄마에게 묻게 됩니다.

"엄마, 인간 사용 설명서는 없나요?"

...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설명해주는 안내서 같은 거요."

소외감에 빠져 지내던 중 일곱 살 때 삼촌의 서재에서 새로운 세계이자 카밀라가 생애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과학'.

과학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도, 의도를 숨기지도, 뒷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이 보여주기 거부했던 확실성을 찾아 끝없이 헤매왔던 그에게 과학은 가장 충실한 조력자이자 가장 진실한, 최초의 친구였습니다.

"나에게 과학은 단순히 연구 분야가 아니다.

과학은 감수성 없이 태어난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다."

그렇게 과학을 통해 결코 닿을 수 없었던 공감, 사랑, 신뢰와 같은 감정에 닿을 수 있었고 관찰과 계산, 실험으로 연결감을 얻게 됩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르는 법을,

단백질 결합과 파동이론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열역할을 통해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법을,

양자물리학을 통해 목표를 이루는 법을,

딥러닝을 통해 실수에서 배우는 법을

과학 이론과 경험을 통해 그야말로 '인간 탐구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여느 과학책과는 사뭇 달랐던, 그래서 더 신선한 충격이자 놀라웠던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남의 시선을 조금 덜 의식하며, 서로 다른 타인의 역할을 더 수용하라는 것이 단백질이 주는 교훈이다. 무리에 속하려는 기본적인(혹은 최소한 신경전형적인) 인간의 충동을 억제하고, 우리의 기묘한 면을 찬양하며, 이것이 사회 결속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차이는 우리가 함께 일하도록 도우며 개성은 효율적인 팀워크의 핵심이라고 단백질은 말한다. - page 77

이렇게 단백질로부터 타인과 더 원활하게 상호작용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

또한 집안 정리 정돈에 대해

열역학이 일상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마찬가지다. 집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물건을 접거나 쌓고 모든 물건이 놓일 자리를 마련하며 이불과 씨름하는 일이 고통스러워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자연히 무질서로 향하는 환경에서 엔트로피를 낮추려 애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님이나 배우자, 동거인이 당신의 방식을 바꾸고 물건을 정리하라고 할 때, 이들의 요구는 그저 게으름을 극복하라거나 당신만의 독특한 질서 감각을 뒤엎으라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에게 열역학의 근본 원리에 대항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정리하기 싫을 때 훨씬 그럴 듯한 변명이지 않은가. - page 91

아주 과학적인 핑곗거리까지 제공함에 재미나게 읽어내려갔었습니다.



각 장마다 자신의 공부 흔적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한눈에 정리되어 있는 도표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고군분투하며 깨달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던 카밀라.

그로부터 과학과 삶의 위대한 공통점을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둘 다 같은 부분에서 좌절감을 안겨주며, 인내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준다는 점.

그래서 카밀라는 마지막에 우리에게 이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니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대신 거기에서 배우라.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을 시도해 보자. 나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법도 실험해 보자. 삶이 나아지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인간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다름을 악마 취급하지 마라. 내가 그랬듯이, 당신이 타고난 초능력으로 차이를 수용하라.

무슨 일이든 잘 풀리기 전에 한 번은 잘못될 것이다.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괜찮다. 사실 그 과정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 혼자서 해내는 과정을 누리라.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다. - page 316

'차이' '다름'을 인정할 것을.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당부한 이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더 와닿았습니다.

'과학'이라는 도구로부터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삶을 통해 실험하고, 실패로부터 변수를 바꿔가며 또다시 실험하고 이 과정 속에서 완성되는 '나'라는 존재.

설사 틀렸더라도, 노력했다는 자체로 가치 있음에 나라는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