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산 지 5년째 되던 해에, 카밀라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
아무래도 정거장을 지나친 게 틀림없다고.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할 수는 없는 사람 같았고, 동료 인간과 겉모습은 같지만 기본 특징은 전혀 다른 것 같다고 느낀 카밀라는 자신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인 엄마에게 묻게 됩니다.
"엄마, 인간 사용 설명서는 없나요?"
...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설명해주는 안내서 같은 거요."
소외감에 빠져 지내던 중 일곱 살 때 삼촌의 서재에서 새로운 세계이자 카밀라가 생애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과학'.
과학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도, 의도를 숨기지도, 뒷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이 보여주기 거부했던 확실성을 찾아 끝없이 헤매왔던 그에게 과학은 가장 충실한 조력자이자 가장 진실한, 최초의 친구였습니다.
"나에게 과학은 단순히 연구 분야가 아니다.
과학은 감수성 없이 태어난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다."
그렇게 과학을 통해 결코 닿을 수 없었던 공감, 사랑, 신뢰와 같은 감정에 닿을 수 있었고 관찰과 계산, 실험으로 연결감을 얻게 됩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르는 법을,
단백질 결합과 파동이론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열역할을 통해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법을,
양자물리학을 통해 목표를 이루는 법을,
딥러닝을 통해 실수에서 배우는 법을
과학 이론과 경험을 통해 그야말로 '인간 탐구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여느 과학책과는 사뭇 달랐던, 그래서 더 신선한 충격이자 놀라웠던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남의 시선을 조금 덜 의식하며, 서로 다른 타인의 역할을 더 수용하라는 것이 단백질이 주는 교훈이다. 무리에 속하려는 기본적인(혹은 최소한 신경전형적인) 인간의 충동을 억제하고, 우리의 기묘한 면을 찬양하며, 이것이 사회 결속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차이는 우리가 함께 일하도록 도우며 개성은 효율적인 팀워크의 핵심이라고 단백질은 말한다. - page 77
이렇게 단백질로부터 타인과 더 원활하게 상호작용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
또한 집안 정리 정돈에 대해
열역학이 일상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마찬가지다. 집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물건을 접거나 쌓고 모든 물건이 놓일 자리를 마련하며 이불과 씨름하는 일이 고통스러워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자연히 무질서로 향하는 환경에서 엔트로피를 낮추려 애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님이나 배우자, 동거인이 당신의 방식을 바꾸고 물건을 정리하라고 할 때, 이들의 요구는 그저 게으름을 극복하라거나 당신만의 독특한 질서 감각을 뒤엎으라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에게 열역학의 근본 원리에 대항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정리하기 싫을 때 훨씬 그럴 듯한 변명이지 않은가. - page 91
아주 과학적인 핑곗거리까지 제공함에 재미나게 읽어내려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