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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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첫 문장이 워낙 유명하기에 읽지 않았지만 안다는...

이렇게 막연히 아는 것보다 직접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동양적 미의 정수를 보여 준 노벨 문학상 수상작

전세계인들의 감탄을 자아낸 눈 덮인 니가카 지방의 아름다운 정경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일본문학 최고의 경지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page 7

너무 큰 기대를 해서였을까.

큰 줄거리도 없었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저에게 마치 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느낌이라고 할까.

투명하고도 아련하게 남았습니다.

주인공 '시마무라'.

그는 부모가 남겨 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여행을 다니는 '한량'과도 같은 생활을 합니다.

그의 모습은...

그러나 그런 도회적인 것을 향한 동경도 지금은 이미 깨끗한 체념에 싸여 무심한 꿈이 되고 말아, 도시의 낙오자처럼 오만한 불평보다는 단순한 헛수고라는 느낌이 짙었다. 그녀 자신은 이를 쓸쓸해하는 낌새도 없지만 시마무라의 눈에는 묘하게 애처로워 보였다. 그런 사념에 빠져버린다면 시마무라 자신이 살아가는 일도 결국 헛수고라는 깊은 감상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산 기운에 젖어 생기 넘치는 표정이었다. - page 39 ~ 40

눈의 지방에 와서 만나게 된 게이샤 '고마코'.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그녀에게 관심이 간 그는 3년 동안 3번 이곳에 오게 됩니다.

시마무라의 부인이 도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밀쳐내는 듯하면서도 자꾸만 이끌리듯이 붙는 고마코.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다소 소질은 있다 하더라도 복잡한 곡을 아고로 독학해서 악보를 보지 않고서도 자유자재로 켤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강한 의지로 노력을 거듭했음에 틀림없다.

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처로워도 지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 - page 64

한편 고마코에게는 약혼 비슷하게 된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이 아파 몸져 눕게 되고 그녀는 게이샤로 번 돈으로 그 청년의 치료비를 감당하게 되지만 결국 청년은 치료가 되지 않고 어머니의 고향에서 죽기 위해 내려옵니다.

'요코'라는 어린 여자애와 함께.

요코 역시도 사랑하는 일에 온몸을 던지는 순수한 모습에 시마무라는 끌리게 됩니다.

두 여자에게 끌리던 시마무라.

도대체 이 남자는 무엇인가...

그러나 결국 시마무라가 지닌 허무의 벽에 부딪히고 시마무라가 지닌 그 투명하지만 확고한 허무라는 거울에, 고마코와 요코의 열정적인 삶, 순수한 생명은 처연하리만치 선명하게 그려지게 됩니다.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마코에게 다가가려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로부터 요코를 받아 안으려는 사내들에 떼밀려 휘청거렸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 page 152

솔직히 인물들만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허무, 무력감에 둘러싸인 시마무라.

마지막까지도 '덧없는 헛수고'로 치부하는 그의 태도는 좀...

그럼에도 이 소설이 인상적인 것은 전체적인 분위기라 할까...

하얀 설국에서 펼쳐진 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문장들이 덤덤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지는 건 왜일까...

한 편의 일본 영화가 떠올랐던 작품.

그렇게 그들은 또 살아갈 테고...

기차는 달릴 테고...

그곳은 눈이 쌓일 것입니다...

애처롭게...

처연하게......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서로 중첩된 국경의 산들은 이제 거의 분간할 수가 없게 되고 대신 저마다의 두께를 잿빛으로 그리며 별 가득한 하늘 한 자락에 무게를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맑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었다.

...

그러나 산들이 검은데도 불구하고 어찌된 셈인지 온통 영롱한 흰 눈으로 뒤덮인 듯 보였다. 그러자 산들이 투명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늘과 산은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었다. - page 40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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