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놀랐습니다.
이른 봄 독특한 색과 질감을 자랑한다는 '할미꽃'.
특히 이 꽃의 몸 점체에 밀생하는 흰털이 햇볕 아래서 광채를 내뿜으며 빛난다고 하니 이름과 매치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시 봄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할미꽃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초여름부터 산과 도시 가릴 것 없이 많이 볼 수 있는 '산수국'.
수국의 화려함에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가 꽃이라 부르며 좋아하는 가장자리의 커다란 장식화는 암술과 수술이 없어 생식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성화 혹은 가짜 꽃이라고 불리는데 생식 기능을 못하는 대신 화려한 모습으로 중심의 작디작은 양성화의 수분을 돕는 매개곤충을 유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산수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양성화로, 또 누군가는 중성화로, 또 누군가는 벌과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어쩌면 모두가 세상의 중심에서 참꽃, 진짜 꽃이라 불리는 양성화로 살아가기를 꿈꿀지 모른다. 그러나 양성화는 중성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중성화도 양성화가 없이는 존재에 의미가 없다. - page 107
어쩌면 그냥 지나쳤던 식물들, 잘 몰랐던 식물들을 세밀화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니 좀 더 자세하게 다정히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식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식물이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움직일 수 없고 그래서 다른 생물의 고역을 당하기 쉽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식물은 우리보다 강하다. 오랜 시간 끈기 있게 변화하며 지능적으로 공격에 대응할 방법을 강구해낸다. 밟혀도 밟혀도 살아 있는 질경이, 아니 밟히면서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질경이를 그리며 나는 다가오는 날들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 page 173
식물로부터 위로를, 용기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밖에 나가 묵묵히 자신의 꽃을 피우는 이들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자세하게.
다정하게.
그리고 그들이 전할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열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