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나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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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서 사 놓고는 읽어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름 바빴다고 하면 핑계이겠지만...)

그러다 이번에 책장에서 꺼내들었습니다.

워낙 유명하신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작가님.

전작들보다 이 책이 더 끌렸습니다.

아무래도 '식물'과 그 식물을 닮은 작가님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식물과 작가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하며...

식물과 함께였기에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나

식물과 함께하는 오늘의 나

언제까지나 식물과 함께일 내일의 나

식물과 나



아침 작업실로 오는 길 화단에서 회양목을 보았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회양목이 꽃을 피었다는 건 곧 그 옆 왕벚나무에 꽃망울이 맺히고, 땅에서는 노란 민들레와 파란 꽃마리가 피어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봄이 시작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봄꽃이 피어날 것이고, 꽃의 아름다움에 무뎌질 즈음이면 푸르른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이 올 것이다. 그러면 곧 단풍이 들며 잎은 떨어지고, 춥고 건조한 겨울이 오겠지. 그 겨울을 지나면 다시 회양목에 꽃이 피는 봄이 온다. 나는 식물의 생애로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계절을 살아가는 게 우리 삶이고, 그 시간 속에서 만나는 식물이라는 생명을 기록하는 게 내 일이다. - page 7

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서 참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마다의 성실함과 강인함으로 살아가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징징거리며 나약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작은 알뿌리가 가진 힘을 생각한다. 이 둥근 생명체로부터 만들어질 잎과 꽃, 열매와 씨앗. 그리고 꽃과 열매를 향해 모여들 동물과 인간. 그 놀라운 힘을 떠올리면, 내가 그리는 이 풀꽃 한 송이가 하나의 행성처럼 느껴진다. 또 그런 놀라운 존재 앞에 선 내가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식물을 관찰하고 그릴수록 나는 더 작아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은 나를 무의미한 존재로까진 만들지 않는다. 설강화의 작은 알뿌리든 수선화의 큰 알뿌리든 때가 되면 각자의 꽃을 피우고, 각자의 씨앗을 맺는다. 누가 더 대단할 것도 없고 누가 더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저마다의 꽃을 저마다의 시기에 피울 뿐이다. 그러니 이 작은 알뿌리들처럼 나 역시 내 존재를 다른 무엇의 삶과 비교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삶을 열심히 살아내면 그뿐이라고. 삶에는 이겨내야 할 추운 겨울이 있으면 꽃을 피우는 따뜻한 봄날도 있다는 것을, 내 손에 쥐여진 작은 알뿌리들이 알려주었다. - page 26 ~ 27

아무래도 시기가 봄이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할미꽃' 이야기.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이름 때문에 저도 슬프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는데...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른 봄 독특한 색과 질감을 자랑한다는 '할미꽃'.

특히 이 꽃의 몸 점체에 밀생하는 흰털이 햇볕 아래서 광채를 내뿜으며 빛난다고 하니 이름과 매치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시 봄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할미꽃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초여름부터 산과 도시 가릴 것 없이 많이 볼 수 있는 '산수국'.

수국의 화려함에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가 꽃이라 부르며 좋아하는 가장자리의 커다란 장식화는 암술과 수술이 없어 생식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성화 혹은 가짜 꽃이라고 불리는데 생식 기능을 못하는 대신 화려한 모습으로 중심의 작디작은 양성화의 수분을 돕는 매개곤충을 유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산수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양성화로, 또 누군가는 중성화로, 또 누군가는 벌과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어쩌면 모두가 세상의 중심에서 참꽃, 진짜 꽃이라 불리는 양성화로 살아가기를 꿈꿀지 모른다. 그러나 양성화는 중성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중성화도 양성화가 없이는 존재에 의미가 없다. - page 107

어쩌면 그냥 지나쳤던 식물들, 잘 몰랐던 식물들을 세밀화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니 좀 더 자세하게 다정히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식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식물이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움직일 수 없고 그래서 다른 생물의 고역을 당하기 쉽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식물은 우리보다 강하다. 오랜 시간 끈기 있게 변화하며 지능적으로 공격에 대응할 방법을 강구해낸다. 밟혀도 밟혀도 살아 있는 질경이, 아니 밟히면서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질경이를 그리며 나는 다가오는 날들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 page 173

식물로부터 위로를, 용기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밖에 나가 묵묵히 자신의 꽃을 피우는 이들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자세하게.

다정하게.

그리고 그들이 전할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열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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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04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그림도 예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