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봄 뉴욕.
대공황으로 은행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치솟는 수많은 충격이 미국 경제를 강타하던 그때.
뉴저지주 엘리자베스시의 노동자 거주지인 엘모라에서 빠듯하게 살아가는, 그럼에도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부모님으로부터 '찰스 피니'가 태어나게 됩니다.
일찌감치 열 살 때부터 돈 버는 재주를 드러냈던 찰스.
친구 잭 블리잇의 아버지에게 얻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팔아다니는 것부터 시작해 늘 주변을 살피고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돈벌이와 연결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기업가 기질'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에 미국 공군에 지원하면서 그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아직은 입대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굳이 자원입대를 하고 공군에서는 모두 찰스를 '척'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즈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었던 그는 프랑스에 갔다가 새로운 돈벌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럽에 주둔하던 미군이 제대할 때, 유럽산 술을 면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DFC면세점을 창업하게 됩니다.
1960년대까지도 면세품을 판다는 것이 꽤 낯선 개념이었음에도 그는 면세품 시장 전망을 확신하여 하와이와 홍콩 공항 면세점에 입찰하고 점점 사업은 확장하게 됩니다.
부유함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화려한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그.
척은 자신에게 그토록 많은 돈을 가질 권리가 있는지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현재 부자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렇게 답했다.
"재산이 얼마나 많아야 부자일까요? 사람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야겠지요. 말하자면, 내가 받아 마땅한 정도를 넘어서야 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돈이나 값비싼 요트, 온갖 그럴싸한 물건들에 매력을 느끼지 않더군요." - page 136
오히려 더 검소한 생활을 한 그.
그리고 타고난 선량함과 어릴 적 뉴저지에서 몸에 익힌 문화로 보다 자신의 부로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그.
"척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세상에 돌려주는 데 갈수록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척은 어떤 자선 활동을 하든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루게릭병을 앓는 이웃 빌 팰런을 역까지 데려다주려고 일부러 밖에 나가는 사실을 끝까지 감춘 어머니가 그랬듯, 척도 자기 행동을 동네방네 떠들썩하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기부 사실이 알려지면 틀림없이 다른 기부자들이 자신과 같은 곳에 기부할 마음을 접을 테니, 그런 일도 막고 싶었다. 아울러, 코넬대에 꽤 많은 돈을 기부했을 때처럼 기부 요청이 쏟아지는 일도 피하고 싶었다. - page 153
그래서 세계적인 기부 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를 설립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넘기고 베트남, 호주, 아일랜드,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곳곳에 비밀리에 기부 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은 '진짜 부자'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몸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