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피니
코너 오클레어리 지음, 김정아 옮김 / 가나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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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의 롤모델이자 워런 버핏의 롤모델인 '척 피니'.

솔직히 그에 대해선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 대단한 사실은

무일푼 청년 창업가에서

9.4조를 기부한 진짜 부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돈'을 쫓는 요즘.

진정한 부자의 면모를 보여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짜 부(富)란 무엇인가?"

시대가 인정하는 진짜 부자가 답하는 진정한 부(富) 이야기

척 피니



1931년 봄 뉴욕.

대공황으로 은행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치솟는 수많은 충격이 미국 경제를 강타하던 그때.

뉴저지주 엘리자베스시의 노동자 거주지인 엘모라에서 빠듯하게 살아가는, 그럼에도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부모님으로부터 '찰스 피니'가 태어나게 됩니다.

일찌감치 열 살 때부터 돈 버는 재주를 드러냈던 찰스.

친구 잭 블리잇의 아버지에게 얻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팔아다니는 것부터 시작해 늘 주변을 살피고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돈벌이와 연결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기업가 기질'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에 미국 공군에 지원하면서 그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아직은 입대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굳이 자원입대를 하고 공군에서는 모두 찰스를 '척'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즈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었던 그는 프랑스에 갔다가 새로운 돈벌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럽에 주둔하던 미군이 제대할 때, 유럽산 술을 면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DFC면세점을 창업하게 됩니다.

1960년대까지도 면세품을 판다는 것이 꽤 낯선 개념이었음에도 그는 면세품 시장 전망을 확신하여 하와이와 홍콩 공항 면세점에 입찰하고 점점 사업은 확장하게 됩니다.

부유함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화려한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그.

척은 자신에게 그토록 많은 돈을 가질 권리가 있는지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현재 부자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렇게 답했다.

"재산이 얼마나 많아야 부자일까요? 사람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야겠지요. 말하자면, 내가 받아 마땅한 정도를 넘어서야 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돈이나 값비싼 요트, 온갖 그럴싸한 물건들에 매력을 느끼지 않더군요." - page 136

오히려 더 검소한 생활을 한 그.

그리고 타고난 선량함과 어릴 적 뉴저지에서 몸에 익힌 문화로 보다 자신의 부로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그.

"척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세상에 돌려주는 데 갈수록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척은 어떤 자선 활동을 하든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루게릭병을 앓는 이웃 빌 팰런을 역까지 데려다주려고 일부러 밖에 나가는 사실을 끝까지 감춘 어머니가 그랬듯, 척도 자기 행동을 동네방네 떠들썩하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기부 사실이 알려지면 틀림없이 다른 기부자들이 자신과 같은 곳에 기부할 마음을 접을 테니, 그런 일도 막고 싶었다. 아울러, 코넬대에 꽤 많은 돈을 기부했을 때처럼 기부 요청이 쏟아지는 일도 피하고 싶었다. - page 153

그래서 세계적인 기부 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를 설립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넘기고 베트남, 호주, 아일랜드,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곳곳에 비밀리에 기부 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은 '진짜 부자'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몸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부를 과시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랑거리가 된 소비와 사치의 홍수 속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었습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를,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무엇보다 그가 보여준 기부를 진행할 때의 척도가 금액이 아닌 '가치'라는 점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척은 우수한 고등 교육 체계를 구축하면 나라 전체의 수준이 올라가리라 생각했죠. 우리는 정부가 대학교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 결과, 정부 지원금이 몇 배로 늘었지요."

...

트리니티 칼리지 총장에서 물러난 뒤 2002년에 척의 권유로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이사회에 합류한 토머스 미첼은 "연구 지원 프로그램이야말로 척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평했다.

"연구 지원 프로그램은 아일랜드의 연구 분야에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지렛대 효과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였어요. 돈을 내놓고 정부에 말했습니다. '실행은 정부가 해야 합니다.' 재단이 어떻게 정부와 힘을 합치고, 영향력을 이용해 정책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지요. 아주 뜻깊은 사회 변화였습니다."

프랭크 로즈는 척 덕분에 아일랜드 대학들이 서로 소통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척은 아일랜드 대학들이 더 큰 꿈을 꾸게 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연구 역량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지요." - page 365 ~ 366

교육 혁신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지속해서 인재가 나와 자생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 그의 기부 형태는 감히 가치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잘못되었음을, 역시 존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삶이 곧 내가 전하려는 바다."라고 말한 간디처럼, 부유한 사람은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야 할뿐더러 과시나 사치를 피하고 겸손하고 소박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앤드루 카네기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온 그.

이젠 그의 모습을 본보기로 저도 '부'의 의미를 다시 재정비해 보겠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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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0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한 분이시네요. 9조도 놀랍고 시부도 놀랍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