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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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용' 작가의 전작인 『침입자들』을 너무나 인상 깊게 읽었기에 그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다가온 그의 작품은...

전작에 비해 조금은 더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초대장이 도착했다!"

 

파괴자들

 

 

전화가 온 것은 월요일 오후였다.

"부탁이 있어."

안부 인사도 없는 첫마디였다. 하지만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옛 동료의 전화. 순간, 긴 침묵이 흘렀다. 5년 만의 전화여서도, 부탁의 전화여서도 아니었다.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동료도 알고 있을 것이다. 침묵 사이에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봤다.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 여름 하늘이었다. 먹구름이 가득했다. 보고 있자니, 동료와 헤어지던 그날의 하늘도 이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 page 7

 

소설의 첫 이야기.

그 어느 이야기보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고할까...

그래서 저도 여기에 한번 옮겨보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K는 동료의 부탁을 들으러 동해안에 위치한 어느 어촌 마을에 도착합니다.

염소처럼 생겼지만 유니콘이라 믿고 그 이름이 염소라고 지은 상상력이 좋은(?) 아이에게 길을 묻고 따라가니 러시아풍의 저택에 도착하게 됩니다.

 

"옛 동료를 만나러 왔을 뿐입니다. 그 친구가 여리고 초대했고요."

"초대는 주인이 하는 겁니다. 손님이 아니라."

맞는 말이었다.

"전 그냥 동료를 만나러 왔을 뿐입니다. 만나러 얘기를 들은 후에는 바로 갈 거고." - page 26

 

여느 호텔의 싱글 룸과도 비슷한 구조.

그곳에 안나는 소파에 앉아 지그시 K를 바라봅니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나가 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마리라는 아이를 부탁해."

깊고 검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감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염소를 몰고 다니는 아이인데......"

"누구인지 알겠군. 여기에 올 때 만났어. 그런데 뭘 부탁한다는 거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마을에서 마리를 데리고 나가 줘. 그리고 가능하다면 마리를 입양해서 키워주면 좋겠어." - pagee 40

 

안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지만...

이 저택은 왠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저택의 주인인 할머니가 K를 부릅니다.

 

"액수를 불러보세요."

"무슨 액수 말입니까?"

"저와의 계약을 수락할 금액 말이에요." - page 78

 

K에게 목숨값으로 '10억'을 제시하면서 '용병 계약'을 제안합니다.

 

"관심 없습니다."

"돈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나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돈이 아니라 남의 일에 관심 없습니다. 필요할 때 벌면 되고요. 지금은 당분간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합니다." - page 82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 저택의 부인뿐만 아니라 손자들도 입만 열면 '10억'을 제안하며 자신과 손을 잡자고 하고...

결국 그는 저택에서 벌어지는 전쟁터보다 더 추잡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과연 그는 이 전쟁터와 같은 저택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죽기 전에 죽인다!"

 

겉보기엔 할머니와 손자 손녀 다섯인 이 집안.

하지만 모두가 서로의 등을 찌르기 위해 조금씩 손을 잡고 있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이 이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딱 이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집안 꼴... 잘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K와 안나.

(그 외의 친구들도...)

'용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특히나 여자들의 사연은 '가정폭력'이 전제였고 전쟁보다 더 무서운 건 이 소설 속에서 '가족'이었음이 안타깝지 않은가... 

 

소설은 K의 과거와 PTSD 극복 과정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읽으면서 전쟁의 상흔이 제3자인 나도 힘겹게 느껴지는데 이들은 어땠을지...  

 

이 소설이 욕망과 배신, 범죄와 죽음이 뒤섞여 '하드보일드 누아르'적인 면모가 드러났지만 그보다 저에게 이 소설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의 주인공 'K' 씨 덕분이었습니다.

시덥지 않은 농담에, 사소한 것에는 목숨을 걸고, 정작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무관심한 그.

이 참으로도 묘한 그의 모습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그렇듯이 자꾸만 빠져들게 되고 내 얘기를 건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K가 이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본다면...

 

정말 '정혁용' 소설가 덕분에 소설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통쾌하고도 행복했습니다.

왜 그를

레이먼드 챈들러의 흡입력과 켄 브루언의 시니컬한 유머를 겸비

했다고 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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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04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르디아스의 매듭 ㅎㅎ 뭔가 확 다 잘라버리는 건가요. 주인공 k 저도 뭔가 맘이 끌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