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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 낯선 곳에서 생각에 중독되다
김경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10월
평점 :
나에게 '여행'이란 인문학적 사유가 아닌 감성이었습니다.
그때 느끼는 그 느낌.
그것이 낯선 도시의 길목을, 사람들을, 추억들을 장식하곤 하였습니다.
이제는 조금 확장시켜보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 담긴 인문학, 역사적 스토리와의 만남.
그래서 더 깊어질 그곳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잔잔한 사유가
등대의 불빛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아시아, 그리고 한국.
어쩌면 익숙한 곳에서는 색다른 낯섦을,
낯선 곳에서는 조금은 친숙함을
저자는 우리를 데려다주었습니다.
여행은 사유에 양념을 풍성하게 뿌려주는 기막힌 발명품이다. 낯선 곳과 마주하면 그곳의 이야기들이 또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 이런 횡재는 당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 page 9
그 재미를 책을 읽으면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인상적인 곳은 아무래도 '아시아'였습니다.
친숙하기에,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그래서 관심이 많았기에 그곳으로의 여행 이야기는 유럽이나 미국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었습니다.
특히나 일본.
야심 차고 지적이던 한 나라의 왕비가 낭인들에게 무참히 난자당한 사건.
세계사를 다 뒤져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 사건, 을미사변이라 칭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국모를 찌른 칼을 보관했던 후쿠오카 구시다 신사.
이곳을 많은 일본인은 이 같은 슬픈 역사의 도구가 숨겨져 있는 줄 모르고 간절히 기원하는 일본인.
그리고 가끔 보이는 한국 관광객 중 두 손을 모으는 이들의 모습은 무지에서 오는 안타까움이 왜 인문학적, 역사적 소양을 갖추어 여행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일깨워주었습니다.
아픈 역사가 봉인되어 있는 구시다 신사를 나와 후쿠오카의 번화가인 나카스 강변에 섰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는 말처럼 격동하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돌아보자면, 125년 전의 이 사건은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소레와 소레, 고레와 고레(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라는 식의 현실적 대처 때문일까. 물론 한일관계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충분히 동의한다. 역사와 교류 문제를 나눠서 투 트랙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로 미래를 다 덮어내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슬픈 '칼의 기억'만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때가 오면 반드시 그 역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 page 127
『열하일기』 기착지인 베이징에서 저자는 연암 박지원을 떠올립니다.
그 길 위에서 연암이 전하고자 했던 바를 저자도 그 길 위에서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이 거리에서 모든 이가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안다. 다만 생로병사가 다르고 인생의 짧음과 덧없음을 슬퍼할 뿐이다. 앞은 한 치도 볼 수 없고 좌우 어디에 와있는지도 모르는 어려운 여정에서 명문장으로 시간을 대변해준 연암. 자신은 그 길에 서서 비로소 도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눈과 귀로만 습득한 것에 대한 편견을 눈감고 잊고자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조선도 청나라처럼 문물이 발달한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북벌을 주장하는 아집에서 벗어나 북학의 눈으로 신세계를 관찰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입과 귀에만 의지하다가 눈으로 경험하는 세상은 벼락같은 것이었으리라. 어떤 사람도 자신이 처해있는 시공간적 상황을 벗어나 삶을 이룰 수는 없다. 인간이란 사회적 존재고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독특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폭풍 같은 시선을 벗어나기는 몹시 어렵다. 길을 떠나는 것이 해법이다. 연암은 길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삶과 여행은 분리되지 않는다. - page 214
언젠가 중국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 가방 속엔 『열하일기』를 챙겨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발자취를 좇아...
그가 길에서 찾고자 했던 그 답을 찾다 보면 어느새 시간을 초월해 그와 내가 동행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여행지 중에 이곳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남한산성'.
시기가 시기여서일까...
아니, 저자가 이곳에서의 사유 때문일까...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느껴지는 것일까...
그동안 무심히 걸었던 그곳이 내가 알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 속의 길이었음에 조금은 새로웠고 흥미로웠으며 좀더 알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너무 무지했던 탓일지도...)
책을 읽으면서 방구석 여행이었지만 사색의 긴 여정을 다녀온 느낌이었습니다.
이 느낌...
쉬이 보내고 싶지 않아 잠시 그 여운을 즐겨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사이에서 일생을 보낸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크로노스) 속에서 광연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주체적 시간(카이로스)을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사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시간 속에 던져진 나는 늘 걱정과 스트레스의 중압감에 시달렸다. 누구나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낼 것이다. 전형적인 크로노스식 삶의 모습이다. 치유 방법은 가끔 루틴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다. 머리가 아플 때 힐링 대상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아 정처 없이 헤매기도 해보는 거다. 주체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면서 나의 길을 찾아가는 카이로스의 삶이다. 생각이 떠미는 대로 가다 보면 그곳에 등대 불빛처럼 잔잔한 사유가 기다리고 있다. - page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