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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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영화 <아가씨>.

그 중심엔 우리의 '박찬욱' 감독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엔 원작 소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가 있었습니다.

관능적이면서도 섬세한...


우선 이 소설이 끌렸던 건 아무래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의 원작자로 알려진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작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핑거스미스』를 읽어본 것도 아니고 영화 <아가씨>를 보지 않았기에 남들에 비해서는 무지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세라 워터스의 대담한 데뷔작이자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출발점


이 소설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을 독파하고자 하였습니다.


티핑 더 벨벳

 


이 제목이 뜻하는 바를 알게 된 순간!


<티핑 더 벨벳TIPPING THE VELVET> 이라는 제목 역시 빅토리아 시대의 은어로 여성 성기를 입술이나 혀로 자극하는 행위를 뜻한다.

- 책소개글 중에서


응?!

순간 정적이 흘렀고... 이 소설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을지가 그려졌습니다.

솔직히 이 장르는 처음이라... 조금은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과연 잘 읽어갈 수 있을까...?'

저의 노파심은 소설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멈추게 되었습니다.


윗스터블 굴을 먹어 본 적이 있는지? 만약 먹어 보았다면 그 맛을 잊지 못하리라. - page 9


소설은 윗스터블의 굴 식당에서 태어난 한 소녀 '낸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이 스트리트와 항구 중간에 좁다랗고 물막이 판자를 댄, 파란 칠 여기저기 결이 일어난 집.

그곳에서 <애슬리 굴, 켄트 최고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이곳에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앨리스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연예장의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윗스터블에서 기차로 15분 가면 캔터베리에 있는 <캔터베리 연예 궁전>에 가서 공연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소녀.

캔터베리 궁전에서의 한 공연이 한 소녀의 인생을 바뀌게 할 줄은 아마 그때 그 소녀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여름.

여느 때와 같이 언니 앨리스와 함께 캔터베리 궁전에서 최상층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회자 트리키의 진행으로 랜달 가족의 연주를 시작으로 코미디언, 그 다음은 여자 독심술사가 나와 독심술을 펼치고 곡예단이 펼쳐졌습니다.

그 후 트리키가 일어나 망치를 치며 조용히 할 것을 요구하며 외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 여러분에게 자그마한 <즐거움>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헬레강스>한 최신 유행 스타일입니다. 혹시 잔에 샴페인을 따라 놓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잔을 높이 올리십시오. 만약 맥주를 가지고 계신다면, 안 될 게 뭡니까? 맥주도 거품이 있잖습니까? 맥주잔도 높이 올리십시오! 무엇보다도 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목소리를 높이 올리십시오. 도버의 피닉스 극장 출신으로 우리 켄트의 이름 높은 신사이자 우리 조그만 페버셤의 매셔를 소개합니다...... 키티,

「버틀러!」- page 20


예전에도 궁전에서 남장 배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키티 버틀러'는 완벽한 웨스트엔드의 신사였고, 정장 차림이었으며 무엇보다 낸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머리, 짧은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사내아이처럼 성큼성큼 걸어 손을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건방진 각도로 고개를 젖히고 사내아이처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서 있는 모습.

노래를 할 때 달콤하면서도 완전히 사내아이 같은 목소리 그대로.

이 두근거림, 아니 심장이 터질듯한 이 느낌은 '사랑'이란 감정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사랑에 빠지면 하루라도 내 눈에 더 담고 싶은 게 정석이겠지요...

매일 그녀의 공연을 찾아가고 매 순간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자 키티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이는 처음이라 설레고 좋은 감정을 가지던 키티는 조금씩 낸시와 가깝게 지내게 되고 뜻밖의 제안을 하게 됩니다.


「저는 당신더러 저와 함께 가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어요. 런던으로요.

나는 눈을 끔벅였다. 「당신과 함께 간다고요? 하지만 무슨 명목으로요?

「제 의상 담당자로요.」키티가 말했다. 「만약 괜찮다면요. 아니면 제...... 뭘로든지요. 모르겠어요. 블리스 씨와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이니만큼 큰돈을 받지는 못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와 방을 같이 쓰면 충분할 거예요.

「왜요?」이윽고 내가 말했다. 키티가 눈을 들어 나를 보았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이 좋으니까요. 제게 잘해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제게 행운을 가져다주었으니까요. 그리고 런던은 낯선 곳이니까요. 그리고 블리스 씨가 보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테니까요......- page 77


결국 키티와 함께 런던으로 가려는 낸시.

그런 낸시에게 처음에는 막강하게 반대하던 부모님도, 특히 아버지는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해 저도 읽으면서

'역시... 자식을 위해, 자식의 행복을 위해 부모는 자신의 가슴이 미어져도 차마 붙잡지 못하는구나...'

를 느끼게 되었던 대목.


아버지는 결론 내리길,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며 딸이 평생 자기 옆에 있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 낸스 네가 곧장 파멸의 구렁텅이로 뛰어들게 된다 할지라도 네 엄마와 나는 네가 슬퍼하며 우리 곁에 머물면서 네 운명을 막은 우리를 미워하게 하느니 기뻐하며 우리 곁을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단다.」이제까지 나는 아버지가 그토록 슬퍼하는 모습을, 그토록 유창하게 말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는 눈가를 적셨고, 눈물을 감추기 위해 눈을 두세 번 정도 깜박였으며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 page 82


과연 낸시는 키티와의 런던 생활이 행복했을까...?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한탄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처절한 무음으로 다가와 가슴이 아려온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쌍하고 혼자이며 아무도 돌봐 줄 이가 없었다. 나는 연인들과 신사들을 좋아하는 도시에 사는 외톨이 여자였다. 여자 혼자 걸으면 눈총만 받을 뿐인 도시에 사는 여자였다.

그날 아침에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키티 옆에서 불렀던 그 모든 노래들을 통해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한때는 런던의 여러 공연장을 오가며 신사복을 입고 수없이 뻐기며 걷던 내가 이제는 계집애의 수줍음 때문에 거리를 걸으며 두려워해야 하다니! 정말 잔인한 농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 page 249 ~ 250


자신의 성 정체마저도 부정할 만큼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던 낸시의 모습.

절박하고도 간절한 그녀...

그런 낸시에게 손을 내밀어 준 이가 있었으니...

그건 소설을 읽으면서 낸시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과정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성 정체성'이란 주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조금은 관능적이면서 도발적이지만 한편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만큼 더 애잔하고 쓸쓸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도 이 소설은 성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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