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음, 김승욱 옮김 / 마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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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지칠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

그래서 좋아하던 책마저 놓게 되었습니다.


그! 러! 다!!

이 책을 보자마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성 중심인 사회에서 어! 떻! 게! 글로 만든 세계의 일원이 되었을지 그녀들의 당당한 행보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주춤했던 제 자신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20세기 문화의 중심지 뉴욕,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예리한 문장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여성들이 있었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조금은 부끄러웠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남성 작가들 -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오웰 등-은 얼추 작품과 함께 얼추 알겠지만...

솔직히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해서 알게 되었고 그마저도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그 외의 책 속에서 소개된 여성 작가들은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그거!'

하며 탄성을 지를 만큼 그녀들의 업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라도 그녀들의 명성이 수면 위로 등장함에 참으로 반갑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첫 등장을 한 '파커'.

그녀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한 펜은 평단과 대중 모두의 마음을 움직인 시인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직 사회는 그녀의 글보다는 그녀의 명성을, '여자'라는 타이틀을 이용하기에 급급했었고 그녀도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그녀를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펜을 놓기엔 세상에 고하고픈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파커는

펜을 망치처럼 휘둘렀다."


'아렌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망치로 한 대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곤 하였습니다.


아렌트는 여성운동이나 페미니즘의 주장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직업적인 동료들은 주로 남자였고, 그녀는 남성이 대부분인 지식인 동료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놓고 고민한 적이 별로 없었다.

가부장제를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실 말년에 누군가가 여성해방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아렌트는 "여성문제"를 크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여성에게 적절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존재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 page 129


그럼에도 그녀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은 생각으로만 그칠 행동을 그녀는 직접 나섰기 때문에, 진실에 몸소 나아갔기에 오늘날에도 그녀가 전한 메시지가 울리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심지어 '꼴사나움'을 무릅쓰고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피난민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대신에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이점을 하나 얻는다. 그들에게 이제 역사는 끝난 일이 아니고, 정치는 이제 비(非)유대인의 특권이 아니라는 것. - page 141


그리고 '손택'의 이야기.


"예리한 여자,

현대문화를 발톱으로 찢어발기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사람."


해박한 지식과 비판적 관점으로 예술평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성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그녀.

인권과 사회 문제에도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며 '포효하는 이기주의자'의 모습을 지녔던 그녀.

그녀의 깊은 생각이 담긴 글이, 그녀의 행동이 있었기에 지금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마지막 재닛 맬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속의 11명의 여성들은 서로 '글'로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여성의 조명이 꺼질 때 쯤 다른 여성의 등장.

그래서 씁쓸한 퇴장이 짙은 여운을 남기곤 하였습니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을 보고 예리하다고 말할 때 그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말을 칭찬으로 한 사람이 많았지만, 그 저변에는 미약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예리하다는 것은 곧 벨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사람들이 이 여성들에게 예리하다거나 못됐다거나 다크 레이디라거나 기타 이와 비슷하게 어렴풋이 불길한 느낌이 나는 꼬리표를 붙였을 때 일종의 환상이 작동했음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 환상은 이런 여성들이 파괴적이고 위험하고 변덕스럽다고 주장했다. 마치 지적인 삶이 일종의 고딕 소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 page 481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부여된 목소리로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높이와 음조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다. 그런 경험 중에는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서,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이미 건너간 소용돌이와 개울 속에서 이루어진다. 앞서 간 사람들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이 모든 상황을 초월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든 상관없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이 배워야 했던 교훈이었다. - page 484


그녀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목소리를 '글'로써 당당히 표현하였는데...

이제는 그녀들이 남긴 글에 담긴 목소리를 귀를 기울일 차례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빛이 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음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녀들 한 명 한 명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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