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식당 2 : 저세상 오디션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18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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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을 읽어본 독자라면 아마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읽게 될 것이었습니다.


저세상에 가고 싶으면 '저세상 오디션'을 통과하라!


저세상 오디션

 


열여섯 살의 '나일호'.

이때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아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던 소년.

그에게 있어서 하루하루 별일 없이 살아내는 것이 아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징크스-아침에 재수가 없으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었다-만 없다면 비교적 편안하고 한가로이 살아갔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징크스가 자신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6월 12일.

아침부터 동생 일주로부터 자존심 상하는 일이 시작되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우다 아빠에게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점심땐 식판을 들고 줄레줄레 지나가던 오정도가 갑자기 넘어지고 그 모습을 본 담임이 한 소리를 합니다.

아침에 이어 점심까지 재수가 없는 걸 봐서 저녁에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일호.


시장 뒷길을 지나 집으로 가던 길.

낡은 건물 옥상에 웬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쟤가 미쳤나, 왜 저기서 저러고 있담,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 page 20


반사적으로 건물을 향해 달렸고 옥상 난간 위로 올라가 바람처럼 나도희를 향해 돌진해 와락 껴안았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 세계였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들과 함께 길을 걷던 중 누군가가 길을 막았습니다.

검은 도포를 입은 건장한 체구의 남자는 '마천'과 '사비'였습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심판을 하지. 그것은 정해진 시간을 모두 살고 온 사람이나 그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 오게 된 사람이나 모두 똑같다. 시간을 꽉 채우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이 길 대신 이 세상과 저세상의 중간에 놓인 강을 건너지.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차버리고 배신한 사람들은 이 길로 오게 된다. 이 길로 온 사람들은 무조건 저곳으로 갈 수는 없다. 심판을 받는 곳까지도 쉽게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저곳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들다. 반발하지 마라, 따지지도 마라.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일은 이 세상이나 저세상이나 다 똑같으니. 일단 명단을 확인하도록 하자.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도록. 먼저 도진도." - page 13


저세상에 가기 위해선 오디션에 합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열 번의 오디션.

합격의 기준은 무엇을 하든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점.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오디션을 본 결과 합격자가 거의 없었다는...


"저는 얘가 죽을 때 엉겁결에 따라 죽은 거 같거든요. 이 아이를 구하려다 떨어진 거라고요. 제가 뭐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아니지, 마천님을 귀찮게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아이를 구하려다 죽었다고? 어디서?"

"옥상에서요."

마천이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자 차가운 기운이 확 끼쳤다. 나는 주춤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났다.

"여태 그런 오류는 없었다. 그러니 너는 억울할 거 없다." - page 22


살면서도 억울한 일이 많았는데 죽는 일까지도 오해를 받게 된 일호도 결국은 오디션을 봐야 저세상에 갈 수 있는데...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오디션을 보지만 '탈락'만 하고 맙니다.

자포자기한 심정.


그러다 나일호가 오류로 이곳에 오게 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은 나일호에게 생전의 부탁을 남기게 되고...

과연 나일호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엔 자신에게 주어진 짊들이 힘겨워 눈을 감고 귀를 막았었는데...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앞으로 꿈꾸게 될 희망의 발돋움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아쉬움이...

 


뒤늦은 후회와 마른 눈물이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천의 간곡한 부탁(?)과도 같은 이 이야기가 자꾸만 되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 너무나도 황망하고도 안타까운 소식들이 있었습니다.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이 다음 날 죽음으로 마주함...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 마음 하나 알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그러니 부디 쓰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쓰러질 것 같으면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랍니다.

당신의 마음...

힘겨우면 잠시 기대도 됩니다.


정인의 <오르막길>을 들으며 저에게도 다짐을 해 봅니다.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 정인의 <오르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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