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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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우리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산인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

서울에 남아있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자 600년 동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견뎌온 숭례문이 하루아침에 검게 그을린 잿더미로 변한 사건은 시민에게 충격과 안타까움을 선사했습니다.

정작 범인은 토지보상금 문제에 불만이 있어서 불을 질렀다는 그는 알고 보니 전에도 문정전 방화 사건의 범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참...

유구무언이라는 말밖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 역시도 우리나라의 문화 자산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질 때 번쩍!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책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우리 국보 속 숨겨진 이야기로

한국사 명장면을 단숨에 독파하다!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앞서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필자에게 문화재를 찾아가 관람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행위이다. 우리는 흔히 공연이나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깊은 감동을 경험한다. 국보와 같은 문화재를 답사하면서도 사람들은 감상에 젖을 수 있다. 필자는 문화재를 시간의 예술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특히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국보는 기술적으로 당대 공력이 집결된 명품이기도 해야겠지만 그와 더불어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더해져야 전정한 가치를 발하게 된다. 그러한 세월의 더께는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장구한 역사 속에서 온갖 풍상의 흔적을 간직한 처연함, 그러한 세월을 모두 이겨낸 대견함, 그리고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감정이 솟구친다. - page 5 ~ 6


이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란 방송을 보고 우연찮게 그 근처를 방문하게 되면 그때 출연진들이, 특히 설민석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문화재와 함께 다가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우리의 유산들에 무관심했던 제 태도에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 속엔 너무나도 익숙한 고려청자, 석굴암 석굴, 조선왕조실록 등이 나와 정작 잘 몰랐던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함으로써 우리 선조가 거쳐 온 삶의 자취이자 파란만장한 한국사의 면면을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지금까지 거의 공개된 바 없는 일제강점기 이전의 국보 사진을 다수 수록하고 있어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비교하며 한층 쌓이게 되는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1966년 9월 3일, 불국사 3층 석탑의 사리함을 노리던 도굴범들.

두 번의 도굴 시도로 탑에 큰 흠집이 생기게 되고 이에 훼손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해체 수리를 하다가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너비 약 8cm, 길이 약 620cm의 종이에 1행 8 ~ 9자를 적은 다라니경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공양품은 건축물의 건립 초에 안치하는 특성상 다라니경이 751년에 봉안됐을 것으로 추측됐다. 당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770년에 새겨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었다. 석가탑 다라니경이 일본보다 20년 앞섰던 것이다. 서체도 석가탑 다라니경이 훨씬 뛰어나 더욱 가치가 높다. - page 44


그들이 아니었으면 묻혔을 우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아이러니하게 발견되었지만 역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남을 또다시 입증할 수 있음에 반가웠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나라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빈번하게 도굴되거나 약탈되었음은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의 화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다보탑'

 


"들으매 이 탑의 네 귀에는 돌사자가 있었는데 두 마리는 동경 모 요리점의 손에 들어갔다 하나, 숨기고 내어놓지 않아 진상을 알 길이 없고, 한 마리는 지금 영국 런던에 있는데 다시 찾아오려면 오백만 원을 주어야 내어놓겠다고 한다던가."

경주 다보탑을 찾은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은 탑에 있던 세 마리의 사자상이 사라진 것을 보고 이렇게 탄식했다. 1929년 동아일보에 쓴 <고도순례 경주>라는 칼럼에서였다. - page 89


다보탑의 수호신인 사자상이...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1925년 일제강점기 다보탑을 전면 해체 수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식 문건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다보탑에는 풀지 못한 비밀이 아직도 많다. - page 95


더 이상 우리의 문화유산이 상처받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우리 문화사에서 독보적 금자탑인 동시에 동양 전체의 건축 . 조각 예술을 대표하는 불멸의 업적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는 국보 제24호 '석굴암 석굴'.


찬란하게 빛났던 석불사는 조선에 와서 불국사에 속한 암자인 석굴암으로 전락하며 구한말 혼란 속에 석굴 일부가 무너지고 천장도 크게 파손됐다. 그러다가 1909년 경주의 어느 우체부가 참담한 상황의 석굴암을 발견했을 때 일제의 조선통감부(조선총독부)는 새로운 유적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과장해 선전한다. 총독부는 애초 석굴암을 들어내 통째로 경성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돌의 무게가 엄청나 포기했다. 대신 1913 ~ 1915년 전면적 수리를 실시한다. 붕괴를 영구적으로 막겠다며 주실 돔형 지붕과 외벽 전체를 1m 두께의 콘크리트로 덮었다. - page 143 ~ 144

 


이로써 비극이 시작되게 됩니다.

모든 조각상에 곰팡이가 피고 이끼가 시커멓게 끼고 물로 인해 콘크리트가 녹으며 석재들과 시멘트층이 한 덩어리로 굳어 떼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부디 온전한 석굴암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종종 문화재위원로부터 국보 중 자격 미달이거나 가짜로 판명 나 영구결번된 것이 세 건이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에 대한 무지...

이러한 무지가 국가의 힘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또다시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보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답사를 통해 아름다운 우리 국보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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