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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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긴 방랑길 위

빛나는 저녁달처럼

서로의 구원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


출간 직후 일본 출판계엔 "대단한 소설이 나왔다"는 평이 나올 정도 매력적인 이 소설.

두 사람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유랑의 달

 


그 어떤 규칙보다는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가나이 사라사' 집.

그래서 반 아이들은 사라사가 '이상한 집에 사는 아이'라며 이상한 아이 취급을 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아,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그렇게 서둘러 어른이 될 필요는 없어."

아빠가 나를 꼭 껴안아서 사이다를 쏟을 뻔했다.

"나도 안아줘."

엄마의 말에 아빠가 손을 뻗어 나와 엄마를 꼭 껴안았다.

아빠와 엄마와 나, 물방울 가득 맺힌 푸른 에메랄드 쿨러와 사이다에 빛이 비치고 모든 게 꿈처럼 아름답다. 아빠와 엄마가 위험한 사람이라 해도 나는 두 사람이 너무 좋았고, 위험한 일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가 나의 봄날이었다.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나는 믿었다. - page 21


하지만 행복은 그녀의 바람처럼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아빠가 사라지고 뒤이어 엄마가 사라지게 되면서 사라사는 이모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라사에게 상식적인 일이 이모에게는 비상식이었고 고립무원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사람들이 만든 규칙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꾹 참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은 매일 조금씩 악화되고 자신 역시도 더 이상은 이런 생활을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평소처럼 요코와 친구들과 헤어진 뒤 공원으로 돌아온 사라사.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은 전신을 촉촉히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맞은편 벤치에 불쾌한 습기에도 불구하고 매일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을 보러 오는 저 남자가 말을 걸어옵니다.


"집에 안 가니?" - page 32


이모 집에 가는 것이 죽는 것만큼 싫었던 사라사는 그 남자의 집에 따라갑니다.


"후미라고 불러. 사에키 후미." - page 34


대학생인 후미는 흡사 인간을 닮은 로봇 같았고 식생활도 육아 서적을 따르는 어머니로 인해 정해진 음식들을 먹곤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엔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때처럼 편안하고도 따스함을 느낀 사라사.


하지만 세상에서 사라사는 '가나이 사라사 양 유괴사건'의 피해 아동으로, 후미는 범죄자로 낙인을 찍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사라사는 보육 시설로, 후미는 감옥으로 가게 되면서 시간은 흐르게 됩니다.


15년 후.

사라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료와 함께...


그러던 중 매장 직원들과의 송별회로 어느 카페에 들어가게 됩니다.

'calico'라는 심플한 간판이 걸려있는 카페.

조용한 카페에서 들려온 감미롭고 서늘한, 반투명 간유리 같은 목소리.


"어서 오십시오." - page 108


한순간도 잊어본 적 없었던 그리웠던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사라사와 후미의 가리워졌던 진실이 풀리기 시작하는데...


진실을 외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는 사실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사라사.


"후미이이이이, 후미이이이."

그렇게 울며 외치는 나를 수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디지털 타투라는 사라지지 않는 낙인이, 나와 후미에게 찍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죄 때문일까? - page 73 ~ 74


어른이기에, 세상이란 잣대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후미.


정상과 다른 이것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느니, 훌륭한 개성이라느니 하는 의견을 봤지만, 나는 도무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선물은 필요 없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박한 희망이, 시커먼 절망으로 짓눌려간다. - page 340


결국 서로가 누구보다도 소중했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 두 사람의 모습이 가슴 찡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을 읽고 난 뒤 밤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어둡고 차가운 하늘이 세상으로부터의 잣대, 우리가 만든 것들이라는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빛을 내는 달.

아련하지만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이 우리가 살아가게끔 만드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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