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이름으로 - 리샹란과 야마구치 요시코
야마구치 요시코.후지와라 사쿠야 지음, 장윤선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책 제목만으론 여성 스파이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사는 잘 모르겠지만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아!'하고 알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야래향(夜來香·예라이샹)>

'밤에 오는 향기'라는 뜻으로 대만 가수 '덩리쥔'이 부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번에 읽게 된 책의 주인공인 '야마구치 요시코'라는 그녀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왜 두 개의 이름으로 지내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궁금하였습니다.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시기

일본이 만든 가짜 중국인 리샹란


두 개의 이름으로

 


책은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건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정치인으로의 활동했던 파란만장한 90여 년의 인생의 모습이 담긴 화보였습니다.

 


특히나 눈길을 끌었던 건 <김일성 주석과 리샹란>의 모습이었습니다.

서로 마주하고 맞잡은 두 손이...

 


그렇게 그녀의 모습을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로 보았기에 본격적인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후반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1920년 2월 12일 중국 동북부(구 만주)에 있는 지금의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구 펑톈) 근교의 북옌타이에서 태어난 그녀, 야마구치 요시코.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가족 모두가 푸순으로 이주했기에 그녀의 소녀 시절 기억의 무대는 거의 푸순에서였습니다.

열여덟 살 가을, 도쿄를 방문하기 전까지 조국 일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만주 토박이'인 그녀.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모르던 한 소녀는 두 나라를 하나는 조국으로 하나는 고국으로 사랑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녀가 몰랐을 뿐 이미 두 나라는 대립하며 싸우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이중국적자로서의 슬픔을 알게 된 것은 먼 나중의 일로 푸순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 page 126


1932년 핑딩산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가족은 펑톈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녀의 운명적인 일이 시작되게 됩니다.

아버지와 젊은 시절 베이징에서 만나 흉허물없이 지내는, 이전 산둥성 일대를 지키던 군벌 우두머리로 산동 지방 군사 정치의 중요한 인물로 당시에는 펑톈 심양은행 총재인 '리지에춘' 장군은 그녀를 양녀로 삼으면서 기념으로 중국 이름을 지어 줍니다.


성은 '리' 이름은 자신의 아호를 따른 '샹란香蘭'이었다. 중국 동북 지방은 난의 산지로 유명하다. 나의 중국 이름 '리샹란'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내 이름의 아름다운 중국어 발음과 한자 '香'과 '蘭'의 분위기는 중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다. - page 148 ~ 149


그녀에게 운명적인 친구가 등장하게 됩니다.

유대계 백계 러시아 소녀 '류바 모노소파 그리네츠'.

폐침윤으로 집에서 요양하던 그녀에게 호흡기 강화를 위해 아버지는 요곡을 배워보라고 하지만 일본의 전통 문화를 모르는 그녀에게 요에 나오는 노래와 무용은 생소했습니다.

그때 도움을 준 류바.


"요곡이 싫으면 클래식 가곡을 배우면 되잖아. 호흡법은 같지 않을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있어. 엄마도 친한 사람이니까 소개를 받자. 클래식 음악을 배우면서 함께 러시아어나 영어도 배우면 어때?" - page 152


그렇게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 '마담 보드레소프'에게 노래를 배우게 되고 그녀의 실력이 크게 늘자 자신의 리사이틀 개막전 공연을 맡기게 됩니다.

마담은 "너는 일본인이니 일본 의상인 후리소데를 입어라" "첫 곡은 일본 노래를 불러라"라며 곡도 골라주며 그녀는 첫 무대는 침착하게, 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이때 펑톈방송국의 기획과장인 '아즈마 게이조'에게 제의를 받게 됩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해 볼래요?" - page 157


하지만 이것이 그녀에게 기구한 운명이 시작이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펑톈방송국은 1932년 만주국 건국과 동시에 모리시게 히사야 아나운서 같은 좋은 스탭을 모아 개국했다. 방송국은 중국인 청취자를 늘리기 위해 <만주 신 가곡>이라는 가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전속 가수를 찾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중국 전래 민요나 유행가를 편곡한 신곡을 공모하면서 만주 국민 가요를 방송했다. 이른바 '일만친선', '오족협화'를 선전하는 활동의 일환이었다. - page 157


일본어 뿐만 아니라 중국어까지 잘 했던 그녀는 여배우로써도 활동하게 됩니다.

역시나 그녀가 맡은 역할은 중국 여자가 일본의 청년에게 사랑에 빠지는, 일본의 중국 진출을 정당화하면서 일본을 찬양하는 중국인 여성 역할이었습니다.

<백란의 노래>, <지나의 밤>, <열사의 맹세> 등 여배우로서의 활동과 영화 주제곡 <소주야곡>, <야래향>과 같은 명곡을 탄생시킴으로써 최고의 스타가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동양의 마타하리, 만주의 잔다르크라고 불리던 가와시마 씨가 전한 마지막 편지는 그녀의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시코짱,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몸. 너와 만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돌이켜 생각하면 덧없는 인생이지. 환호를 받을 때는 행복해. 하지만 그럴 때 이용하려는 놈들은 몰려들지. 그런 놈들에게 끌려다니면 안 돼. 너는 너의 신념을 지켜. 인기 있는 지금은 마음대로 말을 할 수 있을 때야. 그러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 이용당하고 찌꺼기처럼 버려진 좋은 예가 나야. 괴로운 경험에서 너에게 충고한다. 지금 나는 막막한 광야에서 지는 해를 보는 것처럼 고독해. 혼자서 어디로 가야 좋을까?" - page 302


일본과 중국의 긴 싸움 끝에 결국 일본이 패망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끼게 되면서 더는 리샹란으로의 생활을 할 수 없다며 무대를 떠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중국인이면서 중국을 배반한 한간죄로 잡히게 되고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국외 퇴거 절차를 밟게 됩니다.

그때 배 안 상하이 라디오 방송에서 울려 퍼지던 <야래향>의 멜로디.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는 인사였을까...


나는 그 완벽한 우연에 갑판 손잡이를 잡고 몸을 떨었다. 운명의 신이 나의 출항을 축하하며 준비한 이별 노래 같았다. 리샹란에서 야마구치 요시코로 돌아온 나는 "안녕, 리샹란! 안녕, 나의 중국"이라고 중얼거렸다. 사형을 피해 무사히 귀국선에 올라 듣는 자신의 노래에 감정은 요동쳤다. 전쟁에 진 일본은 지금부터 어떻게 될까? 나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 page 417


리샹란과의 헤어짐 이후 '여배우'라는 이름은 버릴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배우 인생일지라도 배우로서의 삶을 지내게 되고 1958년 야마모토 가지로의 <도쿄의 휴일> 출연을 끝으로 은퇴하게 됩니다.

그 후로는 시사 문제를 다루면서 1972년 9월 25일 <3시의 당신> 프로그램에 베이징에서 중일 공동 성명과 조인식을 생중계하면서 지난 날을 회상하게 됩니다.


어릴 적 무지했기에,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상황이 그랬기에, 어린 '리샹란'은 그야말로 일본 국가가 만들어낸 안타까웠던 인물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후회하며 반성을 했던 그녀의 모습.

야래향만이 그녀의 덧없던 인생을 위로해주는 듯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