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산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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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유독 힘겹게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물농장』에서 보인 '권력'이란 이름 하의 추악한 모습이 동물에 빗대어 표현되었기에 처음엔 우화처럼 쉽게 접근했다면 소설의 끝엔 굵직한 울림과 함께 부끄러움을 선사하곤 하였습니다.

 여전히 기억에 남는 '복서'의 모습은 현재도 진행 중의 우리의 모습과도 닮지 않았나란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1984』에서 '빅 브라더'와 '디스토피아'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거짓된 정보와 사상을 주입하며 당의 정당성을 이끌어내지만 이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하는 이 '윈스턴 스미스'.

모진 고문과 세뇌 끝에 결국 빅 브라더를 인정했던 그의 모습은 한낱 인간이 세상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처절함이 긴 여운으로 남아 한동안 사색에 잠겨있곤 하였었습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절망하고 부서지는 모습이 그려졌기에 쉽진 않지만 한 번은 읽어야 했습니다.


그의 소설이 아닌 다른 글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그의 냉철한 통찰을 보여주는, 오웰의 가장 유명한 산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영문학의 독보적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그의 냉철한 통찰을 보여 주는 빼어난 산문 엄선


조지 오웰 산문선

 


책 속엔 그가 '작가'가 되기 시작되었을 무렵인 1931년부터 그의 지병인 폐결핵으로 악화되어 죽기 전 1949년까지 그의 사색이 담긴 에세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산문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첫 장을 장식한 이야기는 <나는 왜 쓰는가>였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자신은 자라서 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열일곱 살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려고 애썼지만 본성이 '작가'였기에 글을 쓰고 책을 써야 했습니다.


나는 외로운 아이답게 이야기를 꾸며 내고 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하는 버릇이 있었으므로, 나의 문학적 야망은 처음부터 고립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느낌과 뒤섞였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 언어에 재능이 있고 불쾌한 사실을 직면하는 힘이 있음을 알았으며, 이것이 나만의 세상 같은 것을 만들어 일상생활의 실패에 보복해 주는 느낌이었다. - page 7


그래서 그의 글이 사회에 냉철하고도 날카로웠는가 봅니다.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 중 하나인 <코끼리를 쏘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버마의 서해안 모울메인의 작은 구획을 담당하던 경찰이었던 그.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나 스스로 섬기는 제국에 대한 증오와, 내 일을 방해하려고 애쓰는 작고 사악한 짐승들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 page 30


그래서 사형장으로 향하는 원주민의 모습에서, 코끼리를 쏘는 모습에서 한 인간이 파괴하는 모습에서 깊은 회의감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내가, 총을 든 백인이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무리 앞에 서 있다. 겉으로는 주연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뒤쪽의 저 노란 얼굴들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떠밀리는 어리석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백인이 독재자로 변할 때 그가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백인 독재자는 말하자면 속이 텅 빈 채 포즈를 취하는 마네킹, 사힙이라는 상투적인 인물이 된다. 이것이 백인 통치의 조건이므로 백인 독재자는 <원주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쓰면서 평생을 허비할 것이고, 따라서 위기가 생길 때마다 <원주민>의 기대에 따라야만 한다. 그는 가면을 쓰고, 그의 얼굴은 점차 가면에 딱 맞게 변한다. 나는 코끼리를 쏘아야 했다. - page 35 ~36


그의 에세이는 그의 일상이자 그의 소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그가 그런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 중 인상적이었던 건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였습니다.

그의 고질적인 폐렴으로 입원하게 된 파리 제15구의 X 병원.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가난하기에 집에서 치료받을 수 없으면 병원에 가야 하고, 일단 입원하면 군대에서처럼 가혹함과 불편함을 참아야만 했던, 환자를 마치 연구 대상으로 보던 의사들이 있던 X 병원.


물론 사람은 살고 싶어 하고,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 덕분에 계속 살아간다. 그러나 그때 나는 너무 늦기 전에 변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전쟁이 끔찍하다고 말하지만, 인간이 만든 무기 중에서 평범한 질병의 잔혹함에 조금이라도 비할 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자연사>의 정의 자체가 느리고 냄새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같은 자연사라도 공공시설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죽을 수 있다면 다르다. 방금 촛불처럼 꺼진 이 불쌍한 노인은 임종을 지켜 줄 사람 하나 없을 정도로 하찮았다. 그는 하나의 번호에 불과했고, 그다음으로는 학생들의 손에 들린 메스의 <실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그런 곳에서 공개적으로 죽다니! - page 72 ~ 73


'가난'이란 이유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처우를 받았다는 사실이 우리의 일제 하에 일본인의 만행이, 그리고 오늘날에도 끝나지 않음에 안타까웠습니다.


'서평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책을 읽고 짤막하게나마 글로 남겨보지만...

이에 대해 제가 가져야 할 태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독자는 추천하는 책에 대한 안내를 원하고, 일종의 평가를 기대한다. 그러나 가치를 말하는 순간, 평가 기준이 무너진다. 누가 「리어왕」은 좋은 희곡이고 『네 명의 의인』은 좋은 스릴러라고 말한다면 - 거의 모든 서평가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그렇게 말한다 - <좋다>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늘 하던 생각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절대다수의 책을 무시하고 중요해 보이는 몇 권에 대해서만 아주 긴 서평 - 최소 1천 단어 - 을 쓰는 것이다. 곧 출간될 책들을 소개하는 한두 줄짜리 짧은 평은 유용할 수 있지만, 서평가가 정말로 쓰고 싶다고 해도 6백 단어쯤 되는 중간 길이의 서평은 쓸모없을 수밖에 없다. - page 107 ~ 108


그의 문학작품보다 개인적으론 '산문'들이 더 쉽게 다가왔고 잔잔한 울림마저 있었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특히 그가 '언어'에 대한 생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 역시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나쁜 어법은 관습과 모방을 통해서 그렇게 어리석어서는 안 되고 실제로 어리석지도 않은 사람들 사이에 퍼질 수 있다. - page 183


조지 오웰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이 그리워졌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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