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달동 미술관
피지영.이양훈 지음 / 행복한작업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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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일러준 이 책.


명화를 감상하면서

깊은 감동에 빠져드는 이유는

수백 년의 시간에 걸쳐 화가들이

그림 속에 새겨 넣은 인물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여기 오늘도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당신에게만 희미한 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가는 그림 속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림은 자신과 눈을 맞추는 이에게 말을 건다. - page 8


영달동 미술관

 


2000년대 초반까지마나 해도 일제 강점기에 지은 적산 가옥과 근대 건물의 멋에 이끌린 사람들이 찾던 명소였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동쪽 바닷가에 신시가지가 조성된 뒤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며 이제는 갈 곳 없는 늙은이와 저렴한 월세에 발목이 잡힌 날품팔이 노동자들, 앞날이 막막한 청춘들이 이 동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남도의 소도시, 영달동입니다.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도현'.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지만 이루지못하고 고향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으로 더 이상 서울에서 버틸 수 없어 고향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영달동은 더욱 퇴락해 있었고 6개월 가까이 밤늦은 시각에 일을 마치고 동네 거리에 들어설 때면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는 보안등만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보안등 불빛이 깜빡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안등 맞은편 건물 1층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내부를 싹 고치려면 제법 시간이 걸렸을 텐데, 왜 내 눈에는 안 띄었지?' - page 8


유리문으로 바짝 다가가니 안쪽에 서 있는 가림막에 적힌 문구.


'영달동 미술관'


다음 날 용기를 내 미술관에 들어가본 도현.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그림 몇 점이 빈약하게 걸려 있었기에 잠시 의자에 앉아 마주 보이는 그림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특히 좋아한 그림, 고흐의 <아를의 침실>.

갑작스레 그의 곁에 다가와 명화에 대해, 화가에 대해 설명하는 한 남자.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 얼굴인데...


그렇게 그는 간간이 미술관이 문이 열릴 때 들어가 도슨트 남자의 설명을 들으며 조금씩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어릴 적부터 이곳에서 살고있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주민 센터 직원인 '정현'에게 미술관에 대해 말을 건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여도현, 나는 이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누가 사는지 훤해. 네가 말하는 미술관은 적어도 내가 주민 센터에서 일한 지난 사 년 동안은 없었어." - page 102


너무나도 생생한데...

착각일리 없는데...

영달동 미술관은 지치고 외로운 이들이 만들어 낸 환상인걸까?


책 속엔 11명의 위대한 화가와 21편의 명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술 전시회에 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현처럼, 인철처럼 저도 명화를 보며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도현이 영달동 미술관에서 처음 접했던, 자신의 어머니가 그토록 좋아했던 작품인 <아를의 침실>.

 

이 그림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구분하는 방법이 침대 위 벽면에 있는 초상화의 차이였습니다.

고흐가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이 메시지는 나중에 도현에게도 비슷한 메시지로 전해지게 되는데...


영달동 미술관엔 도현 말고도 인철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그가 본 작품 중 하나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펼치는 인철의 모습은 우리가 왜 명화를 마주하려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인철은 자신의 행동이 낯설었다. 하지만 한 번 말문이 터지자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말을 마친 뒤 그는 왜 잘 알지도 못하고, 사람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존재 앞에서 고백성사를 하듯 자신의 속을 털어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내 자신을 괴롭혀 온 마음의 짐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 page 137 ~ 138


나에게도 이런 미술관이 있다면...

어떤 명화들이 나와 마주할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명화.

그리고 나를 치유해 줄 명화.

그 화가가 건네는 이야기에 마냥 기대고 싶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치유되었던 『영달동 미술관』.

지친 이에게 살며시 이 책을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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