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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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맞이했을 땐 미처 몰랐었습니다.

지금의 사태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땐 그전의 바이러스처럼 날이 따스해지면 그 기승이 약해지면서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떠돌며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시작하였고 이젠 집 밖은 위험한 상황까지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외로의 여행은 물론이고 제한된 자가 격리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떠남'이 절실한 요즘입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지금,

아직 제대로 가본 적 없는 그곳,

우리의 집.


다른 곳도 아닌 '우리의 집'으로의 여행이라...

익숙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잘 모르는 그곳, 우리 집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프롤로그>에서 우리의 집으로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나와 있었습니다.


사물에 대한 태도는 곧 세상에 대한 태도다. 집 안의 사물들을 천천히 다시 보고 만져보고 사용하면서 그들에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 그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 비천한 공간이라도 행복한 공간일 수 있고, 낡고 조잡한 상품이라도 더없이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만약 내게 권한이 주어진다면 항로를 바꿔 우리의 집과 우리의 사물에게로 '제대로' 떠나보고 싶었다. - page 19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는 곳.

당연시 여겼기에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곳으로 저 역시도 여행을 시작해봅니다.


띠띠띡~♬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서는 곳, 현관.

이곳이 첫 여행지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이하는 신발장, 타일, 신발들.

사실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보다 공간도 작고 딱히 관심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가장 짧게 머무르지만 언제나

"다녀올게!"

라며 나의 종착지였던 곳이었음에 만감이 교차하곤 하였습니다.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작은 공간.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고 풍부한 감정을 환기할 수 있는 우리의 작은 공항. 현관이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page 38


그렇게 현관에서 들어와 거실부터 각기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방들과 사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자로부터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던 '침대' 이야기.

사실 안방의 주인으로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던 '침대'.

그런 침대를 보며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체 공간의 비율로 볼 때, 거실은 침대가 놓인 큰방보다 좁았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공간의 크기와 점유 시간의 크기가 조화롭지 않았다. '왜 (물리적으로) 가장 큰 공간을 (시간적으로) 가장 적게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용가치가 사용 시간만으로 평가받는 건 아닐 테지만 이 공간의 평당 가격을 생각하면 왠지 큰 낭비 같았다. - page 81 ~ 82


너무나 당연히 침대는 모든 방들 중 안방에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기에 저자의 의견에 솔깃하였습니다.

그래서 작은방으로 침대를 옮겼다는 그.

그러면서 전한 '침대'에 대한 메시지는 저에게 생각의 전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침대가 아무리 커져도 항공기나 유조선처럼 커질 수는 없다. 침대는 침대로 정의되는 크기를 넘어서지 않는다. 낮에 어떤 대단한 일을 성취하든, 혹은 어떤 사소한 일에 절망하든 우리는 결국 이 반 평 크기의 사물에 몸을 누이고 잠이 든다. 그리고 결국 침대보다 더 작은 다른 사물에서 영원히 잠들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난다. - page 85


집에서 많이 사용하는 공간 중 하나인 '화장실'.


 


오롯이 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 어떤 곳으로의 여행보다 더 정감이 갔습니다.


'냉장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곤 하였습니다.


사물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막상 잘못한 것은 인간들인데 무언가 좋지 않은 현상이 벌어질 때마다 '인간화'가 아닌 '사물화'라고 비난하곤 한다. '기계적'이라는 말도 처지가 다르지 않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해온 사물과 기계는 이런 대접을 받으며 파괴되고 버려져도 아무 불평 할 수 없다. 그들은 일하며 조용히 늙어가고 버려진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그들은 너무 오래 말없이 살아왔다. 사물들에게 입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도 당신들과 다르지 않다고, 그간 무심한 표정으로 버텨왔지만 실은 우리도 당신들처럼 때론 힘들고 때론 슬프고 때론 아프다고.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도 그날 밤 '차게 울었던' 게 아닐까. - page 183 ~ 184


그들을 무심히 대했던 내 태도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여행보다도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이 알고 보니 그들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안다고만 여기며 자만했던 내 태도가 부끄러웠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공간마다, 물건마다 하나씩 눈여겨보며 우리 집으로의 여행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현관에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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