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직한 비밀
라라 프레스콧 지음, 오숙은 옮김 / 현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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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소비에트 러시아의 금지된 걸작 『닥터 지바고』

그 작품을 반입하기 위한 여성 스파이들의 활약!


『닥터 지바고』에 대해 명성만 들었었고 솔직히 내용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금지된 소설이었다니!

그리고 이 작품을 반입하기 위해 CIA까지 개입했다!

이보다 더 짜릿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냉전 시대 소련과 미국을 오가며 풀어낸 이 소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걸작 『닥터 지바고』의 반입을 위한 여성들의 활약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우리가 간직한 비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왔고 내 딸이 차를 내왔다. 남자들은 초대받은 손님처럼 정중하게 차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내 책상 서랍 내용물을 바닥에 비우고, 서가의 책들을 한 아름씩 빼내고, 매트리스를 뒤집고, 옷장을 뒤지기 시작하자, 이라는 삐익 소리를 내던 주전자를 스토브에서 내려놓고 찻잔과 접시를 치워서 찬장에 집어넣었다. - page 23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남자들에게 붙잡혀 끌려온 그녀 '올가 이빈스카야'.

루반카라는 지하 20층이나 되고 크렘린과는 몇 개의 터널로 연결되어 있으며, 터널 하나는 전쟁 중 스탈린을 위해 온갖 사치품까지 구비해놓은 벙커로 동한다는 소문이 있는 그곳에 불려간 올가 앞에 간수가 앉아있습니다.


"내 소개부터 하죠." 그가 미소를 짓고는 삐익 가죽 스치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 뒤로 기댔다. "나는 당신을 맡은 보잘것없는 신문관입니다. 차 한 잔 드시겠어요?"

"네."

그는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차를 건넸다. "아나톨리 세르게예비치 세묘노프라고 합니다." - page 30


무슨 영문으로 잡혀왔는지 몰랐던 올가에게 세묘노프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그자가 쓰고 있는 소설에 관해 말해주시죠. 이런저런 말이 들리더군요."

"이를테면요?"

"말해보세요. 이 『닥터 지바고』가 무엇에 관한 소설입니까?"

"저는 몰라요."

"모른다고요?"

"아직 집필 중인걸요."

"만약 종이와 펜을 주고 잠시 당신 혼자 있게 시간을 준다면, 그러면 그 책에 관해 아는 것이든 모르는 것이든 전부 다 쓸 수 있겠죠. 좋은 생각이죠?" - page 31


사실 보리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거부해왔고, 정부의 지침과는 상관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사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올가와 만나기 전부터 이미 보리스는 그 소설을 쓰고 있었고 이제는 그의 뮤즈가 될 만큼 서로에게 애틋한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세묘노프가 자신에게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지 알지만 그로인해 보리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알기에 침묵을 하게 되고 결국 그녀는 수용소로 끌려가 고된 강제 노동을 하게 됩니다.


워싱턴 D.C.의 여느 때와 다름없는 습한 날씨, 포토맥강 위로 답답한 공기가 내려앉은 날이었다. 9월에도 여전히 젖은 천을 덮고 숨쉬는 느낌이어싿. 엄마와 같이 사는 지하 아파트를 나오자마자, 회색 치마를 입고 나온 걸 후회했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모직이잖아, 모직, 모직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 page 49


집주인이 집세를 올릴 낌새였기에 이번엔 꼭 취직을 해야하는 '이리나'.

친구의 친구를 통해 타자수 자리에지원을 하게 되고 면접을 보게 된 그녀는 자꾸만 하나씩 꼬이기 시작합니다.

두 명의 여자들과 함께 타자 시험을 보았지만 끝에서 두 번째.

떨어질 걸 알고 있었는데 한 통의 전화 옵니다.


"제가 끝에서 두 번째 아니었나요?" 이렇게 되묻고는 이를 갈았다. 굳이 그렇게까지 내가 별 볼 일 없다는 걸 일깨워줄 필요가 있었나?

"맞습니다."

"그리고 빈자리는 하나뿐이라고 아는데요?" 지금 나는 기를 쓰고 나를 방해하고 있는 건가?

"우리가 본 것이 마음에 들어서요."

"그럼 취직된 건가요?"

"아직은 아닙니다, 성미 급한 아가씨." 그가 말했다. "아니, 타자 속도가 느리니 더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줘야 할 것 같군요. 2시에 올 수 있죠?" - page 66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타자수로 취직하게 되고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바고 작전에 투입이 됩니다.

그리고 이리나와 함께 이미 2차 대전에서 맹활약했던 매력 넘치는 여성 스파이 샐리와 냉전 시기 자국에서 출판이 금지당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의 원본을 입수하기 위한 '지바고 작전'이 실행되는데......

과연 그들의 작전은 성공하게 될 것인가......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여성'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남성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의지로 앞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당당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여자들을 '스파이'로 내세울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내가 나를 스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일에는 미소 짓고 바보 같은 농담에 웃고 그런 남자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관심 있는 척하는 이상의 기교가 필요했다. 당시엔 그걸 가리키는 이름도 없었지만, 바로 그 첫 번째 파티에서 나는 제비가 되었다. 제비는 천부적인 재능을 이용해 정보를 얻어내는 여자를 가리킨다. 그 재능은 내가 가난했기에 쌓아온 것이었고, 20대에 다듬어져 30대에 와서 꽃을 피웠다. 남자들은 나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언제나 그 반대였다. 그들이 이용당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 능력이었다. - page 102 ~ 103


여성들을 지배 하에 둘 수 있다는 남성들의 기만한 태도.

참 씁쓸하였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동'의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지난 모습과도 닮아있었습니다.

예술과 자유사상을 박해하는 국가의 모습.

우리의 80년대 사회 모습이 그려져 더 몰입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닥터 지바고』소설이 궁금했습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전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이었을지, 왜 국가는 그의 책 출간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소설을 읽고 다시 『우리가 간직한 비밀』을 읽게 된다면 더 올가의 이야기가 와 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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