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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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운 요즘.

그래서 더 '행복'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고양이가 저를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도 눈빛으로 말하는듯 하였습니다.


"내 온기를 네게 줄게.

내 사랑을 네게 줄게."


마냥 기대고 싶었습니다.

말하는 고양이 '시빌'이 안아줄 힐링소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괜찮아, 사라. 이러다 나아질 거야. 나아질 거라고. 지난번처럼 다 나을 거야." - page 10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시작되는 어지럼증.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봅니다.

미팅은 정확히 오전 9시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썩 내키지 않았던 프로젝트.

억지로 참여하게 된 게 아주 짜증이 나서 오늘 미팅 준비를 일주일이나 미뤘지만 결국 오늘의 미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지하철 출근길.

환승을 위해 내려야 하는데 겹겹이 쌓여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의 두꺼운 장벽에 그만 우산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가까스로 문이 완전히 꽉 닫히기 전에 코트의 허리띠를 문에서 빼냅니다.

하지만......

허리띠 말곤 손에 아무것도 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열차는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9시 정각에 일어난 일입니다.

"알겠어. 상어 밥 될 준비나 해." - page 22

열심히 만들었던 프리젠테이션 자료는 열차와 함께 사라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도착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

몇 시간 전까지 준비해온 머릿 속 자료들을 그러모으면서 발표를 하던 중 그만 쓰러지고 맙니다.

눈을 떠 보니 환한 병실에 10년 째 동거 중인 스페인 남자 '호아킨'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와 서로 사랑했지만, 더 이상 서로를 만날 수가 없는, 어쩌다 둘이 집에서 마주친다 해도 서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의사의 질문지를 다시 읽어봤다. 두통? 있지. 불면증? 있지. 성생활? 안 한지 오래야. 입맛? 거의 없지. 스트레스? 항상 그렇지. 피곤함? 더할 나위 없지. 하지만 우울할 순 없었어. 난 그런 사람이 아닌걸. 난 행복한 사람이었잖아. 안 그랴, 사라? 삶이 파티 같던 사람이었잖아. 난 몽상가에다 변치 않는 낙관주의자란 말이야. 아니면 나 변한 건가? - page 40 ~ 41


어쩌면 낼모레 마흔이기에 '중년의 위기'라는 걸 겪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저번에 보았던 고양이가 또다시 서 있습니다.

자꾸만 말을 거는 고양이를 보며 환상이라 여겼는데 어처구니 없는 말까지 합니다.


"미안하지만 상황은 네가 보는 바 그대로야. 난 널 입양했고, 거기에 대해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어쨌든 너한테 그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내가 뭐 여기 장난하러 온 줄 알아? 그런 생각은 버려. 장난칠 바에야 차라리 쥐 사냥을 하는 게 나아!" - page 51


덧붙여 고양이 시빌은 이야기합니다.


"있지, 우린 아직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이제 알겠어. 게다가 내가 보기에 넌 날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 내가 인간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고. 하지만 난 상당히 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우리 고양이 대가족들이 만난 사람들까지 따지자면 모든 인간을 다 만나봤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야. 그러니 어쨌든 난 네게 조언을 해줄 거야. 그걸 듣고 말고는 너한테 달렸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심이 될 땐 네 코로 냄새를 따라가봐."

"내...... 코로?"

이 상상 속의 고양이가 뭔가 더 심오한 조언을 해줄 줄 알았는데.

"그래. 사람들은 널 배신할 수 있지. 그들이 하는 말도 널 배신할 수 있고. 네가 스스로 하는 생각마저도 널 배신할 수 있어. 하지만 집중만 한다면 네 코는 널 배신하지 않아. 해봐." - page 56


시빌의 조언을 듣고나니 하나 둘 그녀 주변에 꼬였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남자 친구의 배신.

가족의 파산.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태까지.


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인지......

좌절과 고통 속에 빠진 그녀에게 조용히 다가와 꼬리를 등에 둥글게 감고 앞발은 무릎에 얹고서 머리를 배에 기대며 안아주는 고양이 시빌.

그리곤 속삭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내 온기를 네게 줄게. 내 사랑을 네게 줄게.' - page 164


​그렇게 고양이 시빌은 사라에게 매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자신의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시빌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히려 생각에 꼬리를 물고 무는 인간이야말로 진정으로 보아야할 것을, 느껴야할 것을 느끼지 못하는 바보라는 것을.

그걸 깨닫게 된 사라에게 전한 시빌의 이야기 역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니 좋네. 그 상태를 하루 종일 유지하도록 해봐. 또렷한 감각으로 네 주변의 모든 것을 인식해봐.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도록 해. 네가 사는 매 순간이 바로 너의 순간, 너의 시간, 너의 인생이니까. 네 인생은 회사의 것이 아니야. 네 인생은 네 거라고. 다른 사람한테 네 인생을 뺏기지 마." - page 239


아침에 눈 뜨면 어느새 휴대폰으로 세상의 일들을 보고 있는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어 행동하는 나.

앞만 보고 가기에도 벅차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나.

과연 이게 진정 내 삶인가라는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 삶에 '내'가 없는 이 순간.

텅 빈 내게 다가온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책이 잃어버린 '나'를, '행복'을 찾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잠시 앉아서 눈을 감아보았습니다.

이제야 주변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나 다양한 냄새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엔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왜 미처 몰랐을까!

모든 걸 닫고 있었기에 내 삶은 우울하고 재미없다고만 느꼈습니다.

이제 삶을 즐길 수 있을 듯한 작은 희망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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