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피스트
헬레네 플루드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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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책 표지.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심리학자가 쓴 심리스릴러!


왠지모르게 전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테라피스트

 


잠에서 깨니 나는 침대에 혼자 누워 있다. 블라인드와 창문턱 사이로 들어온 약한 햇빛 줄기에 눈이 부셔 몸을 뒤척인다. 오전 7시 반 - 그만 일어나도 되겠다. - page 8


금요일. 환자 세 명.

그녀는 미완성 상태인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맞으며 잠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새벽에 남편 시구르는 그녀에게 "나 갈게."라고 속삭이며 일요일까지 친구들과 누레피엘에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환자와 상담하는 동안 음성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잠시 점심을 먹으며 메시지를 들어봅니다.


"헤이, 러브."


시구르의 따뜻하고 선육적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린 토마스네 산장에 도착했어. 여기, 아, 여기 좋네, 난......"

전화기가 지지직거리고, 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어리는 것과 쾌활하고 더듬는 듯한 두어 마디의 말이 들린다.

"얀 에리크야, 얀이 지금 땔나무로 장난을 치고 있거든, 완전 천치 같아. 난...... 그만 끊어야겠어. 그냥 도착했다고 말하려고 걸었고, 어, 응, 나중에 전화할게. 몸조심해. 그래. 안녕." - page 37


일이 끝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액정을 보니 '얀 에리크'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네, 우리는 그냥...... 토마스랑 나는 궁금해서요. 혹시 시구르한테 연락 왔나요?" - page 45


관자놀이가 지끈거립니다.

시구르는 자신에게 아침 9시 반쯤 친구들과 다 같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얀 씨가 불을 피울 장작을 갖고 장난을 치고 있다고 말했는데, 얀 에리크는 토마스와 오슬로에서 출발한 게 10시라고 합니다.

워낙 얀 에리크는 짓궂은 장난을 잘 치기에 별 의심없이 넘겨보려 하지만......


얀 에리크나 시구르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설명 말고는 불가능하다. 얀 에리크는 뒤틀린 유머 감각의 소유자지만 그래도 이건 지나친 것 같다. 시구르는 착한 사람이다. 내 남편이다 - 그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얀 에리크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보자. 시구르가 어떤 이유로, 혹은 다른 이해할 만한 이유로 - 예를 들어 깜짝 선물이라든가, 모르겠다 -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그냥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째서 시구르는 아직도 산장에 도착하지 않은거지?

그제야 나는 배 속에서 차갑고 딱딱해지는 두려움을 느낀다. 시구르는 지금 어디 있지? 진정하려고 노력한다. 바보 같은 생각 마, 사라.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 page 49 ~ 50


결국 남편과 24시간이 지난 뒤 실종신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구르는 실종이 아닌 시체로, 등에 총을 두 발 맞고 진창에 엎어진 채로 발견됩니다.

그야말로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군데르센 씨?" 내가 부르는 그 이름은 잘못된 것처럼, 멍청하게 들리지만 어쨌거나 그는 돌아본다. "그게, 그러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 그 시신이 시구르라고 확신하세요?"

문손잡이를 놓고 돌아서는 군데르센의 눈빛은 다정할 정도다.

"감식반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조언을 드린다면, 사라 씨, 그런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발견한 남자는 시구르 씨입니다. 저는 규정상 이렇게 확실하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만, 남편 분의 시신이 맞습니다." - page 144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남편 시구르가 거짓말을 했다고?

왜 거짓말을 한 것인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군데르센은 나를 믿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를 믿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하고......

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은......


소설 속 그녀의 직업은 '심리학자'였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 전까지 신경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의 차이를 잘 몰랐습니다.

최근에 정신과 의사가 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 소설 속에서도 심리학자에 대해 일러주었습니다.


베라는 심리학자와 신경정신과 의사의 차이를 물었고 나는 내가 의사가 아니라 심리학자라고 - 병리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전문으로 한다 - 말했지만 아이는 내 대답을 물고 늘어졌다. "그럼 진짜 의사는 아닌 거네요?" 나는 좀 짜증이 났고 그 말에 괴로워했던 것 같다. 나한테 있는지도 몰랐던 열등의식이 자극받은 것도 같다. 왜냐하면 나는 - 약간 방어적으로 - 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여느 의사만큼 잘 안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 page 24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소설 속 인물들에게,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 밖의 것은 전부 본인이 이끌어낸 결론입니다. - page 102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 해석으로 그것이 진실이라며 믿고 있었다면......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진실 앞에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라가 그랬던 것 처럼......


여느 스릴러 소설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세세히 그렸기에 마치 '새빨간 장미'처럼 매혹적으로 다가왔지만 그 가시마저 들여다보지 못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읽고난 뒤 내 손에 난 가시 상처들이 참으로 쓰라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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