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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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땅 뿐만아니라 요즘은 주식을 해서 대박을 쳐도 배가 아프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내 지인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머리는 잘 알지만......

속은 왜 그리도 쓰린지......


그런데 이 책을 보자마자!

아니, 제목을 보자마자!

'어멋! 이건 내 얘기잖아!'

바로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 고약한 심성(?)은 내 인성의 문제인지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우선 눈에 띈 단어가 있었습니다.

샤덴프로이데

처음 들어본 말인데......

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저에게 저자는 친절히 알려줍니다.


샤덴프로이데란?


* 교수님에게 "더욱 항문에 정진하도록"이라고 쓰인 단체 문자를 받았을 때.

* 슈퍼마켓의 치즈 코너에 있다가 들킨 채식주의자 연예인을 볼 때.

* 항상 큰 노력 없이도 인기를 끌던 친구가 애인에게 차였을 때. - page 7 ~ 8


예시문을 보니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남의 실수나 불행에 왠지모르게 느끼는 기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독일어에서 차용한 말로 '샤덴Schaden'은 피해나 손상을, '프로이데freude'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즉, '피해를 즐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남의 고통을 즐기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전에는 타인에 대한 조롱이 대개 사회적으로 부적절하게 여겨졌지만, 이제 그것을 큰 위험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도 분명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공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 분위기도 중요한 듯하다. 남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은 오늘날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 page 27


그래서 저자는 샤덴프로이데의 시대에 살면서 무엇보다 샤덴프로이데가 도덕적으로 고지식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유연하며,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생각과 감정을 동시에 품을 줄 아는 증거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샤덴프로이데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일러주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아무래도 우리 실생활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예시를 통해 샤덴프로이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인터넷상의 실수 동영상을 볼 때,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나쁜 인간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때, 잘난 척하는 사람의 콧대가 꺾일 때 등.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선한 샤덴프로이데'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애인에게 차이고 나면 더 강인해질 거라느니, 실직이 전화위복이 될 거라느니 면전에 대는 행위 같은 것이 오히려 오만함이 깃들 수 있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인간들의 구원을 기뻐한다는 적잖은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모욕을 줬던 인간들의 고통과 수치심을 상상하면서, '다음번엔 그렇게 건방지게 굴지 못하겠지'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려움이 밀려들면서 통쾌한 기분도 주춤할 것이다. 남의 인과응보에 잘난 척 고소해하는 심보야말로 인과응보를 초래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아니까. - page 121


마치 곰돌이 푸에서의 '래빗'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샤덴프로이데의 시대에 정치적 실수를 조롱하다가 큰 비난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샤덴프로이데로 인한 끊임없는 클릭과 공유 탓에 정작 중요한 뉴스가 주목받지 못한다고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샤덴프로이데는 우리가 싫증나면 스스로 지쳐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더 심각하게 집단주의적인 원한에 불을 지피든가. 예를 들어 영국에서 브렉시트 찬반 투표 후에 EU 잔류파들은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라는 구호를 들고 로터리에 서 있는 시위자들의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킬킬거렸다(구두점 하나 잘못 찍은 걸 지적하면서 느끼는 달콤한 우월감이라니!). 충격적인 패배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승리감을 느끼고 싶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반대편의 구두점 실수를 잘난 척 비웃는 건 그다지 건설적이지 못하다. - page 197 ~ 198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샤덴프로이데가 정치를 망쳐놓을 수도 있기에 우리는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문제에 과감히 덤벼들어, 우리가 '멈춰야 하는' 때를 알아차려야함을 일러주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샤덴프로이데를 '나쁜' 감정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가끔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대개는 무해한 즐거움을 주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 오히려 우리의 감정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내 안의 샤덴프로이데를 인정하고 이를 직시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를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잘나가는 친구가 망하면 기분이 좋다고?

사고 난 외제차를 보면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든다고?


당신의 질투는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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