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리스트 피아니스트의 탄생
우라히사 도시히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성안뮤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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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음악'이라 하면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운명 교향곡의 베토벤

등 대표적 인물들만 아는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유럽을 제패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섬세한 초상


프란츠 리스트 피아니스트의 탄생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아니스트를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전 유럽에선 그가 벗어 던진 장갑을 앞다투어 잡으려 했고, 무대 위에 꽃다발 대신 보석을 던지기도 했으며, 꽃다발을 전해 주기 위해 마을 곳곳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을 정도로 그에게 열광을 하였고 심지어는 그와 그의 자손을 왕족으로 섬기고자 나라까지 만들려고 했었다는데......

왜......

이렇게나 대단한 인물을 잘 몰랐던 것일까......


그의 모습.

 

단정한 이목구비, 야무진 입매, 엄숙하고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 빨려들 것만 같은 그윽한 눈동자.

그를 보더라도 이 멋진 사내에게 여인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리스트는 19세기 음악의 축도이다'라는 말처럼 이제부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1811년 10월 22일.

혜성의 출현과 함께 그가 태어나게 됩니다.


어쩌면 혜성의 출현은 서유럽인의 권력을 상징하던 나폴레옹이 끝끝내 제패하지 못한 동유럽에서 리스트나 폴란드 출신의 쇼팽같은 음악가가 서양 음악사의 정식 무대에 등장하리란 것을 암시하는 징조가 아니었을까? - page 24 ~ 25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음악의 도시' 빈에서 인생에 둘도 없는 피아노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체르니'.

체르니는 고삐 풀린 망아지와도 같은 이 신동에게 기술을 철저히 단련하고 체계를 잡아줌으로써 탄탄히 쌓은 토대 위에 흔들리지 않는 피아노 제국을 세울 수 있게끔 지도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체르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고 리스트는 자신이 가진 모든 피아노 기법을 쏟아부었다고 할 수 있는 <초절기교 연습곡>을 스승에게 바칩니다.


어디서나 라이벌은 존재하기 마련.

리스트에게도 라이벌이 등장하게 됩니다.

당사자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시작되었지만 빈의 '리스트' 대 바르샤바의 '쇼팽'.

이 둘은 최고의 라이벌이었지만 경쟁 상대는 아니었고 오히려 그들은 서로의 진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쇼팽이 자신의 벗 페르난트 힐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리스트가 내 연습곡을 바로 옆에서 연주하고 있어. 내가 쓴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좋을지 그에게서 빼앗아 오고 싶네.' - page 205


라고 표현했으며 리스트가 쓴 『프레데리크 쇼팽』이라는 책에 소개된 쇼팽의 말에서도 두 사람이 연주가로서 어떻게 달랐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연주회 체질이 전혀 아니네. 청중이 앞에 있으면 겁이 나거든.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이 점점 차오르며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위축되고 말지. 그러나 자네(리스트)는 연주회와 어울리네. 청중을 매혹시키지 못할 때조차도 그들을 압도할 수 있으니 말일세.' - page 206


리스트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하진 않았습니다.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류 피아니스트라는 낙인을 찍었던 어린 시절.

낯선 땅에서 아버지라는 거대한 존재를 잃은 슬픔.

그의 유소년기부터 사춘기에 걸친 시기엔 평범한 인생의 몇 배가 되는 기쁨과 슬픔, 굴욕, 고통을 맛보아야했기에 기나긴 공백기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7월 혁명'처럼 그는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대포 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 page 53


혁명의 대포와 함께 그의 신호탄이 시작되면서 19세기 유럽을 제패한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의 과정이 책 속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의 천재적인 면모 뿐만아니라 그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 이유였습니다.


스캔들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리스트는 곧 음악계의 선구자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그가 스스로 이루어 낸 것이라기보다는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리스트를 기다린 새로운 시대는 바야흐로 스캔들이 음악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시대, 상업주의로서의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page 72 ~ 73

이 모든 게 갖추어져 있었기에 그는 '최고' 아니 '최강'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끝맺음은 참으로 씁쓸하였습니다.

그렇게 유럽을 종횡무진하면서도 평생 자신의 '집'도 자신의 '마을'도 존재하지 않았던......

조국은커녕 모국어조차 없었던 방랑자인 그.

​그가 1874년 자인 비트겐슈타인 후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말이 진한 여운으로 남겨졌습니다.


 


그의 음악 중 우리에게 알려진 음악이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등장하는 <순례의 해>.

화려한 그의 외모 뒤에 감춰진 고독과 사색이, 그의 '방랑자' 같은 삶이 엿보이는 듯 해 가슴이 아련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를 알고 그의 음악을 듣게 되니 조금은 그가 전하고자 했던 음악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듯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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