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가 있습니다.

75세에 처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101세까지 작품에 열정을 불태우신 그녀.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큰 위안을, 행복을 선사한 국민 화가.

그녀의 이름은 '모지스 할머니'.

그녀가 전한 이 말은 여전히 제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그럼 그냥 하시면 돼요.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명의 '국민 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케아의 모든 디자인은 칼 라르손에서 시작된다!"

스웨덴 국민 화가의 일상 속 작은 행복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첫 장을 펼치니 이 책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일러주었습니다.


칼 라르손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는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공예 운동가이며, 부인 카린 베르구와 함께 8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스웨덴 팔룬에 있는 집 '릴라 히트나스'를 손수 가꾸는 행복한 삶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단란한 가정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입가엔 미소가, 마음엔 잔잔한 행복이 묻어나게 하는 그의 작품들.


카린과 함께 꾸민 집,

내 가족에 대한 추억,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그림들이

내 인생 최대의 작품이다.

- 칼 라르손 자서전 《나》 중에서


2853년 5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빈민가.

한 남자아이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아버지는 술에 흠뻑 빠져 살아가곤 사촌에게 돈을 빌린 뒤 사라지고 어머니와 둘이 남아 힘겹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 아이가 바로 칼 라르손.


절망 속에서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긍정의 힘을 알려준 외할머니와 이 모든 상황을 견디며 가정을 지킨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겐 10대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이 엿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신 선생님 야콥센은 미술로 진로를 택하라고 추천했고, 그의 친구인 코보랄 아트만이 오래된 연핀과 노트를 구해주며 칼을 응원한 덕분에 스웨덴 왕립예술아카데미의 기초 과정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칼은 책, 잡지, 신문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어머니를 돕게 되고 마침내 어머니 대신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청년이 되지만......


자신을 버리고 사라졌던 그의 아버지가 돌아오게 됩니다.

어린 칼에게 늘 심술궂은 목소리로


"네가 태어난 날이 가장 거지 같은 날이야." - page 51


라고 외치는 아버지에게 나라면 연을 끊을테지만 그는 아버지를 받아들입니다.


칼은 아버지로 인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라야 했다. 그래서 이런 아버지를 사랑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피해야 하는 무서운 존재였다. 아버지의 말에 복종해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칼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훗날 칼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돼서야 그를 용서했다고 고백했다. 어찌 보면 용서는 늘 받아야 할 사람이 먼저 한다. - page 61

 


이 그림은 내게 '모든 일은 흘러갔고, 우리는 괜찮다. 그러니 너도 용서하고 잘 지내렴'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 page 55


그래서 잠시 이 그림에 손이, 눈이, 마음이 머물곤 하였습니다.


칼 라르손은 파리와 스웨덴을 오가며 생계와 창작을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다 평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인 한 여성 화가를 만나게 됩니다.

'카린 베르구'

하지만 스웨덴에서 큰 사업을 하던 카린의 부모가 가난한 칼을 바로 마음에 들어할 리 없자 카린은 부모님께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제 인생을 이렇게 명확하게 느껴본 적이 없으며 그와 같은 의지를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칼은 성자아 과정에서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고, 어느 시점에는 자신이 처한 불행에 굴복당했지만 결국 자신을 믿는 힘으로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자신의 힘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에서 제 인생을 맡기는 것보다 더 좋은 미래가 있을까요?" - page 77 ~ 78



칼과 카린 사이에는 8명의 자녀가 태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아들의 삶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둘째였던 울프 그림과 함께 적힌 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칼 라르손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작품.


 


그가 국민 화가가 될 수밖에 없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칼이 그린 가족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추상적인 문장들로 그림을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그 누구보다 정교하고, 정확하며, 아름답게 그려 나갔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일상만으로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보다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둘러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느낀다. - page 143


그의 그림보다 아름다운 집 '릴라 히트나스'가 소개되었습니다.

다른 집과 특별히 다르지 않지만 아주 작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누군가의 따뜻한 손으로 그려지고 만들어진 창조물들이 가득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집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이 차이가 결국 '휘게', '라곰', '피카'와 연결됨을 보여주었습니다.

 


<부록>에는 그의 아내이자 역시 화가였던 '카린 라르손'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나마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카린은 명성과 예술보다는 사랑과 가족을 원했기에 작품 활동을 포기하고 직물 디자인과 태피스트리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의 집안 곳곳에 자신이 디자인한 직조물과 자수로 장식하고 작은 소품부터 비교적 큰 가구까지 직접 만들고 칠하므로써 과거의 스웨덴이 오늘날의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할 수 있도록 방식을 제안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행복한 이유가 특별히 없었습니다.

나의 가족.

그리고 그 가족과 함께하는 공간.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었기에 진정으로 행복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칼 라르손의 그림을 인정하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칼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대신 행복해주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칼의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즉 칼 라르손 개인의 삶은 끝났지만, 그의 그림의 미래는 끝이 없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칼 라르손의 그림을 보고 가정의 행복을 느낀다. 지금 내 가정이 불행하면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을 꿈꾸고, 지금 내 가정이 행복하면 이 행복을 유지하고 싶어서 또 행복을 꿈꾼다.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지만, 칼 라르손의 그림을 보면 행복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하고 찾는 것이다. - page 36


이 행복이 많은 이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누군가의 '인생 화가'이자 이케아의 '정신적 모토'가 된 칼 라르손의 삶과 그림 이야기.

다들 귀를 기울이며 그를 통해 자신의 행복 형태를 그려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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